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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비몽사몽간에 촬영한 사진인지라 안나온 분들도 좀 있습니다.
양해해주시구요. 그래도 이곳에서 다시 뵈오니 반갑습니다. 즐거운 감상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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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더포티라운드호의 2010년발 출항을 시작했다.

반위원장님을 필두로
인사말씀을 하시고 차기 연설주자의 대기하는 모습이 보인다.
엔진에 주유를 하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 놓은 듯 김태균실장님의 표정은 결의에 차 있다.
경청하는 포즈를 취한 김태진 교수님의 뒷테가 아름답다. 


다년간의 대학교육의 포스가 청중을 압도하고 있다.
나는 청중에게 뿌려되 듯 큰 소리의 강의를 한다면 김태진 교수님의 강의는 잔잔한 음악속에서 감동을 주는 듯하다.
이번 강의도 조용함 속에 강한 메세지를 주었다. 화이링!

김봉곤 훈장님.
사실 나의 증조부도 서당 훈장이셨다. 얼굴도 모르는 나의 조상이지만 훈장이란 말에 가슴 안쪽에서 공감하는 그 무엇을 느낄 수 있었다. 중간에 먼저 가신 이유를 나는 잘 안다. 턱수염에 대한 트렌드를 직시하시고 그것을 정리하러 가신듯 하다. 황인선님의 조용한 턱수염에, 책갈피가 아닌 최카피님의 중후한 몇가닥 흰 턱수염, 그리고 나의 절제된 턱수염을 보시고는 상대적인 어떤 느낌이 드셨으리라 본다. 믿거나 말거나...

 김경호 대표님의 발표는 이랬다.
고마운 손에 대한 고마움과 올레길 등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2010년이 무지 바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었다. 홍보 분과 부 위원장님이시지만 머지 않아 위원장자리를 거론 되지 않을 까 싶다. 그래도...

홍보분과 위원장감은 신영석 대표를 따를 자가 없다.
외모에서 풍기는 홍보위원장감으로서의 포스는 보는 이의 오금을 저리게 한다.


바디랭귀지에서 벌써 교차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와 더불어 더포티라운드가 2010년대에 가야할 길을 말하고 있다. 그 길은 결코 교차로는 아니지만 그런 교차로와 같이 갈 길을 걱정해야 하는 일도 생기지만 슬기롭게 우리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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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준비 중 제일 먼저 한것은
떡집에 주문을 해 놓는 일이었다. 송구영신 고사를 지내는 일.
아이들에게 하나의 이벤트로 진행한 것이다. 
 5가족이 만원씩 걷어서 대충 충당했다. 참 알쪘다.
 남은 것은 이세구박사님께 한 덩어리 드리고
고르게 나눠가지고 갔다.
 

아이들은 절하는 것이 어색한가 보다.
멀리서 어렴푸시 보이는 얼굴들이 재미난 표정들이다.
술렁이는 잔칫집의 분위기 그대로다. 이런 일들은 나중에
이날을 떠 올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아들을 비롯한 우리가족은
절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창문너머로 보이는 눈내린 풍광이 그럴싸하다.
어린시절 설날 새옷입고 동네 어른들에게 세배드리러 댕기던 생각이 난다.
애나 어른이나 눈을 보면 환장한다.
개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모임에서 떡은 화제였다.
절하고 기념촬영하고 먹고
이처럼 다양하게 활용해보기는 이번에 처음이다.
사실 평상시에 집에서 떡을 해 먹을 일이 별로 없는데
이렇게 모여 있을때 떡해 먹고
고사지내면 떡값은 빠진다. 가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날이면 모아놓고
떡해서 절을 시킬 작정이다.
그러면 떡값은 빠지니깐...

송구영신이여.
다사다난했던 2009년이 내곁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2009년은 더포티라운드의 살가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진정 의미가 있다.
2010년에도 한가하게 노닥거릴 여유는 애당초 물건너 간것으로 생각된다.
죽으면 흙이 될 몸둥아리 뭐든 하면서 거기서 즐거움을 찾아야 할 듯하다.

나는 고사에서 빌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과 사이 좋게 계속 지내게 해달라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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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춥던 날.
아들의 국기원 품띠 따러 가던길을 동행했다.
수영을 배우면서 태권도를 배우게 되었는데 재미가 쏠쏠한 듯 관심을 보였다.

관장이 말하기를 도복안에 내복입히지 말고 오라는 말에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아들은  
시험장으로 나갈때는 양말도 벗고 나갔다.
추울텐데 그럴 겨를도 없이 뛰어 나갔다.
사진의 표정으로 보아 무지 긴장한 듯 하다.

나는 어린 시절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어른들에게 말씀드렸더니
싸움꾼 된다고 안된다고,
주산학원 댕긴다고 했더니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쳐주는데 뭘 미리 배울려고 그러느냐고
아마도 돈이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시절 어른들에게 힘겨운 일이었을 것으로 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가르쳐줄려는 부모와 그만 배우겠다는 아이와의 난투극이 벌어질 정도다.

아래 동영상을 감상하길 바란다.
아들왈,
"아빠! 처음엔 내가 밀렸는데
마지막에 한방 먹였어." 라고

난 그냥 웃었다.
나의 어린시절과 지금의 아들의 생각들이 뒤엉켜서
감정의 정도는 약간의 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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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에게도 추억들이 많은 분이시다. 
30년먼저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혼자 사셨다.
올해로 90을 맞으셔서 가족들이 모여서 생일상도 받으셨다.
고독과 고뇌, 그리고 힘겨운 일들이 그녀 곁에서 떠나질 않았던
굴곡의 삶이었다.

사용하시던 절구를 함께 딸려 보냈다.
절구를 빻으면서 달랬던 설움이 가족들의 곡소리와 불타는 여운이 어울어져 한풀이를 했다.

할머니!
부디 이 절구를 하늘나라에 가지고 가셔서,
설움을 짜내던 상징물로 쓰지 마시고 달나라 토끼의 절구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절구로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고
즐거운 날들만 만들어 내시길 바랍니다.

사진작가 백승휴가 아닌 손녀사위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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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중년여성에게 관심이 많다. 수잔 보일이라는 여성의 처음 봤을 때의 이미지와 음반을 내면서 촬영한 사진에 대한 before & after 이미지가 나의 관심대상이었다. 수잔 보일이라는 여성의 숨겨 놓았던 꿈을 펼친 성공신화의 대변인으로 강의에서 활용했던 경험이 있다. 그 여인이 드디어 싱글앨범 Album | 수잔 보일 [I Dreamed A Dream]을 냈다.

 

                  앨범에 나온 대표사진이다. 외적자신감이 그녀의 목소리까지도 세련미 넘치게 바꿔 놨다.

 

1961년 스코틀랜드 남동부 웨스트로디언의 블랙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그녀에게 가수는 가슴속에 부여잡았던 열정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어 낸 것만큼은 사실이다. 어린 날부터 어설픈 자기의 꿈. 꿈은 반듯이 이루어진다는 오래된 명언이 그녀에게 다가간 것이다. "하고 싶지만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자신감 결여와 교회에서 노래하는 것으로 만족을 치부했던 그 젊은 날의 회상은 외적 자신감의 결여에서였을 것임을 확신한다.

그 시절, 그녀는 나를 만났어야 했다. 외적 자아인식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했더라면 50을 바라본 지금의 나이에 꿈을 이뤘던 것이 아닌, 좀 더 빠른 시기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영국의 작은 시골마을에 phototherapist가 없었던 것이 화근이 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수 등용 프로그램 '엑스팩터'의 출연을 권했고 그 결과 그녀는 떨어졌다. 스스로 패한 이유를 진단하기를, "나는 아름답지 않았다.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녀가 말한 외모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그녀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었던 자신감의 결여가 그녀의 추녀로 스스로를 만든 것이었다. 나이에 대한 콤플렉스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깨닫지 못함을, 더불어 중년의 매력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가지는 지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방송에 출연했던 당시의 시골출신이 틀림없어 보이는 스스로 자신감이 없었던 시절의 이미지.


앨범에 나와 있는 사랑스런, 귀여운, 세련된 여인의 이미지에

남성들의 관심의 대상이 될 섹시함으로 그를 표현하고 싶다. 아니 그녀 안에 잠자는 그 감춰놨던 섹시미를 끄집어 낼 것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 안에 내재한 자아인식이 그의 목소리마저도 감미롭게 돋보이게 한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나의 말이 설득력이 없으면 전에 출연했던 프로그램과 이번에 나온 음반을 번갈아 들어보면 누구나 알 것이다.


잃어 버렸던 과거의 꿈 그림자를 되찾은 지금의 자신감이 인생 마감하는 날까지 쭈욱 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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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사진을 흔들림으로
부산한 그날의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했다.

현장감은 사진의 정직함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은듯, 행동의 정점이 아닌 과정에서의 어설품, 이야기하는 도중의 컷들이
정신없이 서로를 이야기하는 정서와 걸 맞는다.

눈물 먹은 빵 맛을 회상하는 김태균부부의 울먹임,
오픈마인드가 아내에게는 행복이었으나 희끗거리는 김병수대표의 애환이 묻은 머리색깔,
철없다 바라보는 아내와  와인잔 들고 돌아다니는 김경호대표의 손놀림,
동안 남편 선보이고 안절부절 방미영의 희노애락,
끝까지 함께할 자의 자상한 미소 반 사모님의 촉촉한 눈길,
행복까지 닮아 버린 김태진과 그의 직장 선배,
음흉한 눈빛으로 그날밤을 예고하는 포토테라피스트의 몸부림.

흔들린 사진 사이로 살포시 들여다본
그날 밤의 속사정을 공개합니다.


마지막으로,
외갈매기 신철식대표와 인천앞바다 치맛자락 조연심대표의
짝없는 슬픔을 서로가 부둥켜 앉고  덮어 버리려 하고 있다.

이 날 만큼 분위기 좋은 저녁식사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서로의 짝꿍들에게 후한 점수를 딴 더포티라운드의 운영진들의 기세는 등등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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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은 백승휴스튜디오에서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포토테라피스트의 가족사진촬영에 이어
흥분된 가슴을 어루만지기도 전에
복화술사 안재우님의 시연이 있었다.


사진 촬영상의 모토는 즐거워야 한다는 것.
깔깔깔 거리는 웃음소리가
나중에 사진을 보면서 가슴속에서 울려 퍼지도록 한다는 생각이다.

이날 어머니의 칠순잔치를 기념하며
5남매가 결혼하여 낳은 아이들까지 22명이 모여서
화들짝하였다.
이 얼마나 기쁜 순간인가?
남편을 먼저 보내고 힘겨운 삶의 애로와 더불어 살아왔던
한 평생을 이 순간으로 보답 받을 수 있을까?

부족한 2%가 복화술사의 웃음으로
해결되었다.


안재우 복화술사와 그의 동업자 철없는 아주머니..
제주도 올래 말래?


짦고 굵은 시연으로
아이들과 더불어 주인공과 자식들이 다함께 감동을 먹은 듯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성으로 감사함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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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체 아티스트 박용우를  푸근한 미소와 파워풀한 카리스마로 표현하고 싶었다.

잔잔한 미소 속에서는 부드러움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부드러운 듯 강함을 내포한 그의 이미지는 소년의 순수함과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크게 웃자
. 세상을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자빠지도록

오랜지 색 넥타이가 어울리는 그는 검은 양복으로 젠틀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신사라기 보다는 꼬마신랑의 귀여움이 묻어난다. 사진보다도 현장에서는 더 그랬다.

비만에 대한 또 다른 신화를 만든 학문에 대한 애정 못지 않게 가족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눈으로 그를 바라보게 했다
. 




 

 주장함에 있어서는 강력하다. 고집스런 그의 눈매에서, 부드러운 듯 날카로운 그의

턱 선에서 뚝심
이 나타난다
.

그의 손놀림에서 읽을 수 있듯이 1 아니면 0이다.

디지털 마인드
, 그가 학자임을 몸으로 말하고 있다. 

본인의 비만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
. 막 먹으면서 살 빼기, 건강을 챙면서

몸 만들기
등 많은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뱉어낸다
.

그의 고집이 대한민국을 건강한 나라 만들기의 초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


1
아니면 0! 믿어가 말거나.

안 믿으면 후회.


나는 박용우 박사의 이미지를 만들면서

나는 박박사로 부르기로 했다. 여기서 박박사란 박사중의 박사라는 뜻이다.

이 말에 저작권은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에게 있음을 아울러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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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와 흑백의 차이,
사진의 빛바랜 정도,
비슷한 얼굴 골격으로 미루어 보아.
위의 사진이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고, 밑의 것이 노년의 아버지일 것으로 사료된다.

가족을 앞에 앉힌 아버지는
콧수염의 위엄과 푸근함, 그리고 가족부양에 대한 부담감이 얼굴에 만연하다.
잔칫상이 차려린 것을 보면 막내의 돌잔치나 아버지의 회갑 기타등등...
이것은 보는 이의 상상속에서 브레인 스토밍이 있으시길...


스튜디오에 회갑을 넘긴 분께서
빛바랜 사진을 가지고 들어오셨다.

 왜? 이제서야 이 사진을 들고 온 것일까?
정신없이 달려온 삶속에서 잃어 버렸을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
그 기억을 더듬다가 안방 중앙 벽에서 그 추억을 끄집어 내고자 그는 사진을 집어 들어던 것이다.
동병상련!
아버지의 사진을 불현듯 찾아내고는 그 시절 아버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픈
남자의 퍽퍽한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었을 게다.

아버지! 아버지!
위엄속에서 야속하기만 하던 아버지의 기억들이 오늘은 따스함으로 가슴속을 촉촉히 적신다.

이 얼마나 사진이 주는 사실성과 전달성 그리고 상징성이 강력한가?
아마도 초상화였다면, 그것이 사실화가 아니라 추상성이 강한 그림이었다면
오늘의 이 기억은 얼마나 복구될 것인가.

이 남자에게 아버지의 사진은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아버지가 있기 때문에 
힘겨운 마음을 잔잔한 테라피가 될 것으로 강력하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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