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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을 나와 개원가에 뛰어 든 지 어언 2년 째 접어들었네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를 거쳐 대학병원 교수로 지낸 지 20년이 되던 해, 주위 사람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과감하게 대학을 박차고 나와 무림의 고수들이 포진하고 있는 강남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병의원 간판만 달면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에 지장이 없던 과거와 달리 무한경쟁시대에 들어선 개원가에 마치 온실 속 화초처럼 대학병원에서 해마다 꼬박꼬박 연봉이 올라가는 월급 잘 챙기면서 곱게(?) 자란 내가 아무런 준비 없이 비바람에 서리까지 맞을 수 있는 들판에 나서게 되었으니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이해 못했던 건 아닙니다.

물론 나라고 고민이 없었을까요? 명예는 물론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교수 자리를 포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90 인생의 딱 절반에 도달하면서 남은 반평생을 어떻게 준비할까 생각해보니 무언가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했습니다.

과거 61세에 환갑잔치를 하고 70이 넘으면 죽음을 준비하던 때와 달리 이제는 60대 청춘 얘기가 나오고 100세까지 사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65세에 정년퇴임하여 연금 받으면서 남은 30여년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우울하기 그지없더군요.

아직도 주민등록상 나이보다 10년은 젊다고 스스로 자부하면서 살아왔는데...노년기를 30년 보내는 것보다 중장년기를 80대까지 보내고 90세에 노년기를 맞아 죽음을 준비하는 쿨한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20대에 내게 투자했던 지식으로 지금까지 잘 버텨왔으니 이제 인생의 반환점에서 남은 반평생을 위한 새로운 투자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40대 중반에 개원가에 나선다는 것은 분명 모험입니다. 하지만 안정적이고 나이가 들수록 업무 부담이 적어지면서 편안히 안주하고 싶어지는 대학교수 자리는 내게 자극제가 되기 보단 새로운 도전을 막는 마취제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직도 젊은데, 아직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너무 쉽게 노년기에 접어드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이르자 무언가 새로운 환경의 변화가 필요했고 이것이 내가 개원가에 뛰어 들게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연구해왔던 비만과 체형치료는 실전을 쌓고 경험을 축적하기에 대학병원보다 개원가가 훨씬 유리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시스템의 왜곡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개원가에서도 이런 흐름에 편승하여 메디컬 스킨케어에 이어 노화방지클리닉, 비만클리닉, 모발클리닉 등이 앞다투어 개설되고 있고 더불어 경쟁도 치열합니다.

고생을 사서 한다는 주위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금 난 행복합니다. 새로운 경험과 매일매일의 긴장감과 자극은 내게 새로운 삶의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개원가에 익숙해지는 3-4년을 레지던트 밟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은 수련과정이라 조금 힘들긴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게 될 제2의 전문의가 되면 지금보다 더 여유롭게 삶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습니다.

내 결정에 영향을 준 또하나의 요인으로 마음의 여유와 풍요로움을 가지고 늘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인생관의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풍부한 감성이 없는 곳에 행복은 깃들지 않습니다. 새롭게 얻게된 삶의 즐거움과 행복은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감성을 깨우는 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서른아홉에 해외연수 길에 올라 뉴욕 맨해튼에서 1년간 혼자 지낼 기회를 얻으면서 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그동안 억눌려지내고 있던 '자아'를 되찾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넥타이에서 벗어나 뱃살나온 이후 입어본 적이 없었던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연구실에 출근해도 아무도 탓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움과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피는 편안한 복장 만큼이나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맨해튼 구석구석을 누비다 보니 3개월간의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체중도 뺄 수 있었습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을 섭렵하면서 노래과 춤을 아직까지 좋아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고, 딱딱하게 여겨졌던 오페라 공연도 여유있는 마음 속에서 쉽게 몰입이 되었습니다. 박물관을 자주 찾으면서 그림도 음악과 마찬가지로 감상할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숨가쁘게 살아왔던 30대의 끝자락에서 한 숨 돌리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생긴 마음의 여유는 젊은 시절의 꿈과 희망,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접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제2의 젊음을 구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이 나이에 젊은이들과 어울려 살사댄스를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춤과 노래, 공연관람을 통해서 노화의 진행과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열정들이 다시 생겨났고 그 열정의 에너지로 하루하루가 활기차고 행복했습니다.

내가 행복해지면 넘치는 행복은 상대방에게 전파되고 그 행복은 다시 내게 되돌아옵니다. 삶의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더욱 행복해지고 삶은 풍요로워집니다. 노화방지를 위해 보톡스나 태반주사를 맞는 것도 좋고, 몸짱이 되기 위해 헬스클럽을 열심히 다니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감성의 노화방지’를 위해서는 얼마나 투자하고 있습니까? 몸짱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듯 가꾸지 않은 감성도 하루이틀만에 저절로 나오지 않습니다. 나이들면 그저 골프치러 다니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외적인 아름다움 못지 않게 내면에서 솟아나오는 감성과 열정은 그 사람의 또다른 매력으로 발산됩니다.

몸은 대학에 있을 때보다 힘들고 지치지만 내 마음의 여유와 즐거움은 더 열려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장비나 시술을 대학에 있을 때보다 먼저 접해보면서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에게 적용하고 더 나은 결과를 위해 고민하고 보다 나은 치료 방법들을 모색해보는 즐거움은 내 삶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고 있습니다. 인생의 반환점에서 신발끈을 고쳐매고 다시 결승점을 향한 내 발걸음은 그래서 지금 한없이 가볍습니다.^^

                              <이시대 최고의 감성 사진작가 백작가님이 찍어주신 필자의 최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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