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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포토테라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경*라고 합니다.

 

포토테라피란 게 있을까?란 생각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 포토테라피 연구소 관련 글을 보고 메일 드립니다.

 

포토테라피 연구소에서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지 궁금합니다.

 

주로 주위 분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으시는 건지요.

 

사진을 통한 치유가 적절한 방식으로 접근 가능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포토테라피스트가 되기 위해선 단순히 사진기술만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갖추어야 할 자질이나 국내외에서 포토테라피를 구체적인 학문으로써 교육하는 대학이나 기타 기관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는 포토테라피에 대해서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제가 너무 정보를 알아보지 않고, 두서없이 메일을 드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답장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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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멜을 받아 본 적은 처음입니다.
하하하. 이렇게 포티라운드에서 이런 일들을 하셨기에
반가운 마음에 글을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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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이란 무엇인가? 마구 흔들어대는 것인가?  내 기억의 처음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춤하면 디스코가 생각난다. 고교시절 녹음기를 들고 친구들과 뒷산으로 올라가 묘 마당에서
흔들었던 기억이 난다. 막걸리에 취해 몽롱한 환영속에 휘영청거렸던 나의 젊음날.
그것이 나의 춤에 대한 기억의 시발점이다.


그날은 와인에 취해
나의 카메라까지 흔들거리고 있다. 문화다. 문화속에 댄스는 자리잡았다. 동우회, 샤리권댄스스쿨 수강생들이 
내가 호텔로 들어서자마자 정신없이 파트너와 호흡하느라 바빴다. 나이 50전후의 댄서들.
나늘 이들의 화려한 의상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무대체질인가?
아무튼 춤은 안되어도 멜랑꼴리하게 생긴 의상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때 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춤을 상당히 잘 추는 줄 알았다.
샤리권선생의 몸무림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한밤중에
제철도 아닌 나비가 훨 훨 날아다니는 그 광경이야말로 넒은 스테이지가
두 세 발짝 뛰면 양쪽 구석에서 구석으로 와닿았다.
춤을 춰라 춤을 춰! '나 춤 추러간다."란 샤리권님의 책속 그 제목의 깊은 뜻을 익히 알고도 남음이었다. 세계 참피온의 어깨에 기댄 샤리권샘은 하염없는 여인이었다. 기뻐 뛰노는 그 모습은 백조가 날개짓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파트너의 환대를 받으며 내려오는
댄서의 발걸음은 둥둥 떠오르고 있다. 어쩔거나 어쩔거나 이리도 좋은 것을 어찌할거나... 어와둥둥 내사랑아.
사랑 사랑 내사랑아!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리는데 옆에서 나를 보고 웃는 듯하다. 소심한 A형인 나는 들킨듯 가슴이 덜렁 덜렁....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것이 행복이고
 큰 입을 하고 가식없이 웃는 그 자태는 마를린 먼로의 매력적이 자태이상의 그것이었다.
항상 이렇게 웃고 살게만 해주소서....


서구 문화와 동양의 만남이다. 지리산의 청학동에서 오신 어르신들이다. 훈장님도 계셨다.  동행했던 분 중 한분의
말씀이 있었다.  "아따! 저거 빡스춤을 춰버리니께 내가 슬 자리가 없네." 여기서 박스춤이라는 것은 춤의 틀을 가지고
파트너와 짜고 춘다는 뜻으로 막춤과는 다르기에 춤추는 필드로 못나가겠다는 이야기다. 와인을 맥주잔 들이키든
드시던 그분의 어색한 미소와 같이 어울리지 못하는 씁쓸한 몸짓이 지금도 선하다. 그러나 청학동의 긴 수염의 어르신과 동석하니  나의 수염이 어색하지 않아서 좋았다.


내가 2009년도 미국 PPA에 출품하여 입선한 작품이다. 물론 모델은 샤리권선생님이시다.
제목은 The highest worship이다. 최고이 경배.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춤속에서 그 메세지가 영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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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코드에 맞춰
블렉에 레드, 빨강색 나비넥타이가 당일 주최자들의
통일감과 열정을 대변하고 있다. 좌측으로 부터 4번째 신대표님은
접시를 들고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의상이 잘 어울린다고 본다.

작가는 구도에서 앞 부분에 꽃을 넣어 둠으로써 그날의 화기애애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사회를 보고 있는 김태균 실장님.
2-3천명이 안되면 마이크를 안 잡는다는 그분이 이렇게
사회를 보고 있다.
중간 중간 뒷편에서 땀닦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불러서는
"나 잘하고 있어요? " 하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 모습은
진정 아름답기 까지 했다.


많은 청중들 앞에서
위원장으로서의 자태를 뽐내고 계신 반경남 위원장님.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간 듯 하다.
윗에서 바라보니 앉아 있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순서지의 더포티라운드 마크가
튄다. 김정기대표께 감사를 드린다. 둥근해가 떠오르듯이 잘 될 것이다.


방미영 부 위원장님은
남편께서 더포티라운드 부위원장으로 당선되던 날
빨강 구두를 당선 축하기념으로 사줬다고 자랑했다.
그래서 굳이 드레스 코드에 레드를 고집했는지도 모른다.
이쁜 얼굴보다 빨강 구두에 시선이 가는 것이 아쉽다. 구두보다는 얼굴이 단연 아름다운데 말이다.
나이에 비해 이정도면 몸매가 좋은 편이다. (난 지금 모델학과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기때문에 잘 안다.)

 
정리의 달인으로 통한다.
얘기를 하면 그걸 정리하지 않으면 입안에 까시가 돋힌다고 한다.
반경남 위원장님의 살인미소를 소개한 것을 의식했던지
중간에 살인미소를 한방 날리며
내적 여유로움을 표하고 있다.
아마도 차기 주자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피아노를 치는 그녀의 손이 아름답다.
떨리는 듯 섬세하게 흐르는 음율은 청중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젊다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


당당하게 그리고 자신감 있는 입담으로
청중을 사로 잡고 있다. 

그런데....


말하는 와중에 스텝이 꼬이고 있다.
이렇게 한번 꼬이면, 걷다가 넘어지는 것처럼
부자연 스러울텐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썰을  풀고 있다.
대단한 강좌였다.


스타 원장답게 보디 랭귀지가 뛰어나다.
준비해온 강의를 뒤로하고 그날의 분위기에 맞는 돌변강좌를 진행했다는 후설이다.
교수에, 크리닉원장까지 갖은 것이 많지만
한자 좀 쓰는 것을 보니 삶을 고뇌했음직한 어투였다.
많은 공감을 얻은 특강이었다고 나는 평가한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어찌하면 좀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할까 고민중이다.
그날의 흐름을 매만졌던 디렉터 김태균이 아니었더라면
더포티라운드의 발대식이 훌륭한 완성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은 그 순간을 포착한다.
글과 사진이 어우러진 포토에세이는 보는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길 바라면서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은 특이한 동물인 것이 틀림없으나 계속 바라보면 정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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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이유는 스튜디오로 가족을 대동하여 가족사진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족은 더 이상의 비교가치는 없다. 물론 본질이자 기본인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지만 말이다. 그 만큼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남과 동시에 함께하는 것이며, 가족을 떠난 삶은 생각할 가치조차도 없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가족의 개념은 많은 연구와 논의가 있어 왔으며 사회전반적인 연결고리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나에게 가족은 삶의 발자취 속에서 많은 시간 함께 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대변되는 단어이다. 사진이 그들에게 있어서 공동의 추억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이자 상상의 날개를 펴는 도구인 것이다. 거울에 비춰지는 허상의 그림자는 점점 과거 속으로 사라져가지만 사진영상이 주는 사실성과 정지성은 그 내면을 똑 바로 바라볼 수 있는 이야기의 매체이다.


여기 가슴 저린 이야기가 있다.

막내딸의 어리광과 아들의 배려가 엄마에게는 고통속의 한줄기 빛이다.

5년간의 이부자리 속 투병을 하던 엄마를 모시고 온 과년한 딸이 부둥켜안고 젖가슴을 만지는 막내 어리광을 보여준다. 병약한 아들을 향한 엄마의 애린 속은 그 누가 공감해 줄 것인가?

명의를 찾아다니다 차 안에서 멀미가 나서 사진 촬영에 힘겹게 앉아 있던 그 엄마. 시간이 지나 그 엄마를 기억할 매개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의 느낌과 훗날 엄마에 대한 기억을 찾아낼 그 사진의 진정성. 진정! 사진이 갖는 의미가 이리도 막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사랑한다.


이런 기회가 다시 올지언정 오늘의 이 기억들은 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엄마! 엄마를 외쳐봐도 들릴 듯, 들릴 듯 애처러운 모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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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희는 아름답다.


중년여성에게는 향기가 난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고뇌하고 아파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몸 전체에서 흐른다. 고뇌의 삯이 예술로 승화되듯, 그들은 곰삭은 젓갈의 담백함처럼 깊은 맛을 발산하기도 한다.

마음속에 가두었던 자신의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한 몸짓들이 나타난다. 벨리댄스를 추는 김정희는 우울한 감정과 기분전환인 행위로 내면의 끼를 발동한다.

김정희에게 자기표현은 처음 학교에 가던 날의 흥분과 불안, 긴장, 두려움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보여준다는 것에 대한 설렘, 나의 부족함이 고스란히 들어날 것에 대한 초조, 이런 것들은 과도섹시를 표현하는 벨리댄스의 움직임 속에서 희열감으로 묻어났을 것이다.

사진은 과감하다.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나를 적극적으로 자극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한다는 것은 거짓된 행위이다. 공주병에 걸린 여인이 하루에 수 백 번의 거울을 들여다본다 한들 그것은 좌우가 뒤 바뀐 날조된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작가의 눈으로 껍데기가 아닌 영혼이 들어있는 내면을 포착하는 일이야말로 숨어있던 것을 끄집어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뇌는 소리 내어 웃는 것만으로도 진정성에 관계없이 엔돌핀을 생성시킨다는 것이다. 자극물이 자화상을 자극하며 쏟아낼 엔돌핀의 양을 생각하면 나 스스로에게 감동이 온다. 중세시대의 백작부인들이 그렸던 초상화는 권위의 상징이자 자기위안적인 것이었다면 김정희의 시도는 자기를 위안하며 스스로에게 당당한 미소를 흘리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관심을 쏟고 싶은 강렬한 갈망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중년의 시기는 상실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도전 혹은 통합과 성취의 시기이기도 하다. 한 여성이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욕구와 욕망 그리고 발달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시기라는 자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껏 무시되고 억압되었던 자아가 고개를 내밀면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까’등의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벨리댄서 김정희에게 자기표현적인 사진촬영은 인생의 5가지 대사건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어머니와 아내로서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 자기정체성을 잃어버렸던 과거에서 여성으로, 매력적인 여성으로 탄생하기를 발 돋음 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제 나를 괴롭혔던 외형적인 콤플렉스나 소심한 일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당당한 여인으로 새로운 발걸음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

여성의 우울은 상실에서 오기도 하지만 한가함에서도 온다. 그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 춤을 통해서 자기를 찾아나서는 이가 있다. 그녀가 김정희다.

그녀에게 말하고 싶다. 춤을 춰라. 춤을 춰!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말’로 세상을 창조하신 신도 인간만큼은 흙으로 손수 빚어 만드셨고 , 당신의 작품에 이름을 붙이셨다. 그 이름을 빛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사진작가 백 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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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리베라 호텔에 있는 백승휴스튜디오의 갤러리이다.
이곳이 나를 은근히 괴롭힌다. 즐겁게...
한 달에 한번은 작품을 교체해야하는 의무감에 시달리게 하니 말이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나는 항상 정체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이놈들이 임무교대 해달라고 애원한다.


신기하기도 한다.
작품은 큼지막하게 걸어 놓으면 주마간산식으로 지나친다.

그런데 이곳에는 여러가지 사진들을 모아놨다.
자세히 하나 하나  바라보는 이가 많다.
말하자면 이 공간은 나에게 나지막한 음성과도 같다.
속삭임이다. 멀리서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하는 것이다. 
 
강의에서 시종일관 큰소리로 말하는 나와는 달리 명강사들은 조용 조용 이야기해도
청중은 귀를 쫑끗 세우고 듣는다. 이런식이다.


인물사진에서 인물은 여러번 변신한다.
인물을 작가가 의도하는 대로 찍는다.
그 다음은
좀 더 작품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후작업을 한다.
그 다음에 한번의 변신을 하는 것이 프레임으로 미화하는 작업을 한다.
그런데  자동카메라로 한번 더 촬영한 이 이미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여러번 생각이 투사된  작품은 다양성이 보인다. 아마도 생각한대로 보인다고 하면 맞을까.....
 

프레임까지 보여진 사진과
그 안의 것을 삐딱한 방향에서 바라본 느낌은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몽롱한 기억속에 흐느낌은 항상 보는 이를 상상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것이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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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업을 하면서 바라보는 시각은 이렇다.
풍경에 사람이 들어가지 않으면 흥미를 느끼지 않거나 촬영을 하지 않는다. 물론 사물을 촬영할때는 죽은 것이 아닌 생명체를 갖은 것으로 착각하고 찍는다. 그것이 나의 매력이다.

현란한 색깔들이 샤머니즘을 말한다.  칼라젤광에 묻어나는 머리결은 무당을 연상하나 그년의 로망은 순수


 본 작품은 샤머니즘을 말하고자 한다.
만든 작가의 생각이다.
거기에 나는 더욱더 임팩있는 느낌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보다는 어떤 흥미를 찾아낼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녀의 내면을 바라본다. 풍만한 가슴을 가졌다. 그러나 여성성이 눈매에 녹아 있다. 작품과 합하면 무당이요, 신들린 여성이다. 그러나 그 내면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소녀이다. 인간이 가진 양면성이라 본다. 아니 양면성이다.

 아이디어를 창안하고 만든 작가는 무당을 만들고,
이걸보고 미소지으며 생각하는 사진가는 샤머니즘의 치유를 말하고 있다.
이 여인의 삶속에 헝클어진 내면을 무당이 만져주길 바라는 것이다.

 "여인아! 무당의 마음도 아픈 가슴이거른 의지하지 말고 그대의 사랑하는   자에게 가슴을 묻고 행운스러운 삶으로 돌아가라."



탄생은 아침이다. 그대는 새벽빛의 냄새를 맡아보았는가? 여린 가슴의  그대의 볼에는 배려의 향기가 난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지향점을 향해서 묵묵히 걸어가다보면 목적지에 다달았음을 느낀다.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뒤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초심은 항상 우리를 비호하며 삶을 함께 살아간다. 그것이 없음은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작품은 탄생을 말하고자 한다.
나는 여기에 이른 아침의 빛을 사용했다. 시작, 초심, 탄생, 걸음마와 같이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그것을 표현했다. 가녀린 그녀의 허리는 섬세한 선의 쾌락에 도취되어 타인이 만질 수 없는 순수성을 그렸다. 첼리스트의 음악은 그의 마음을 들려준다. 아마도 그녀는 첼리스트의 얇은 손가락에서 번지는 아름다운 소리를 통하여 세상에 새로이 탄생되는 인간의 시작을 알리고자 했을 것이다. 수줍은 그녀는 내색하지 않은 꼭 다문 입술에서 여성의 순결성을 바라볼 수 있었다.

 여자는 여자로서 그 향기가 아름답다. 그녀의 아름다운 선이 작품에서 보여줬 듯, 그녀의 보여지는 이미지에서 나는 그녀의 내면과 작품에 대한 끈질지고 예리한 열정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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