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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言)과 일(事)을 엮어내는 ‘경연(經筵)’

회의(會議)는 길어지면 회의(懷疑)가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런데 세종은 그 회의(會議)를 창조회의로 승화시킨다. 그 특별한 무대가 경연(經筵)이다. 이곳에서 국정토론을 이끌었다.

경연은 고전(經)을 놓고 공부하며 현안을 풀어가는 독특한 회의(筵)
였다.
국왕은 현명한 신하들에게 배우고 왕은 신하들에게 현안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바로 이곳에서 말과 일이 엮인다.
공부만 하면 이론으로 끝나고 일에 대한 회의만 하면 근본에 대한 성찰이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말과 일이 엮이는 회의방식은 바로 이 두가지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세종은 말하는 것에 대해 ‘절실(切實)하고 강직(强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절실함은 반드시 필요한 말을 가려 하는 것이고 강직한 말은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신하들은 분위기에 편승하여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때 명확한 입장정리는 왕의 판단을 돕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이런 절실 강직함이 경연을 통해 경전(經典)의 이론과 융합(融合)하여 창조(創造)적 일을 추진하는 바탕이 된다.

“어떻게 하면 선비로 하여금 들뜨고 화려한 것(浮華)만 좋아하는 버릇을 버리게 할 수 있을까?”


2. 세종의 통치교과서 ‘대학연의’

맹자의 대학(大學)과 관련한 책은 총 5권이라 한다.

본책 대학(大學), 대학연의(演義), 대한연의부, 대학혹문(惑問), 대학강어(講語)로 알려져 있다.
이중 대학연의는 송나라 진덕수가 대학의 체제에 맞추어 역사적 사례를 덧붙여 살을 입힌 책으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는 치세서(治世書)라 할 수 있다. 너무 유명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말의 원전이 대학이다. 대학연의가 세종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경연에서 3번이나 교재로 활용하며 강독하게 했다.


대학연의는 세종의 정치철학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중심에 있다.
시인발정(施仁發政)이 출발이었다면 그 궁극에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있는 것이다.


동시에 국가경영의 요체가 압축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라고 태조에게 조준이 건의했다.

그 가운데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국왕의 9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수신(修身) 2. 존현(尊賢) 3. 친친(親親) 4. 경대신(敬大臣) 5. 체군신(體君臣)
6. 자서민(子庶民) 7. 래백공(來百工) 8. 회원인(懷遠人) 9. 회제후(懷諸侯)


또한 세종의 언중유골(言中有骨)은 대학에서 인용하기도 했다.
 
‘들짐승이 아무리 빠져 달아나도 사냥꾼은 반드시 잡고 만다. 그 짐승이 험한 곳으로만 내달리며 넘어져 죽게 될것은 생각지 않으니 지극히 어리석다 이를 수 밖에 없다’ 상왕 태종에게 아부하며 장인인 심온일파를 제거하려는 박은등을 겨냥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초장에서는 의(疑)와 의(義)로 경학에 대한 깊고 옅음을 보고 종장에서는 대책(對策)으로 그 사람의 포부를 본다”-
변계량의 과거시험 방식의 기준

 

3. 그리고 지식경영을 통한 사례들

말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왕의 말이 처음 나올때는 실(絲) 같으나 그 말이 외부에 나가면 거문고줄과 같고
임금의 말이 거문고줄과 같으나 그말이 외부에 시행되면 상여줄과 같다.



하나 덧붙인다면

백지보다 나을때 글을 쓰고 침묵보다 나을때 말을 하라.

살벌한 말이로다. ㅎㅎ


여조묘장의(予助苗長矣) - 벼이삭이 빨리자라도록 뽑아주다.

지금 이시대 모든분야에서 조장의 처세가 득세하고 있다. 즉시 즉각 바로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 같다. 그 중에도 백년대계라 할 교육의 조장(助長)을 염려한다. 현대의 ‘조장교육(助長敎育)’의 염려와 대안에 대해 의논(議論)이 필요하다.


현명한 군주와 신하의 관계에서 아첨과 칭찬, 직언과 조언을 듣는 방법은 있다.

1.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면책특권(license)을 주라
2. 오직 군주가 하문하는 국정사안에 대해서만 말하라.
3. 군주는 호 불호의 모든사안에 대해 끝까지 인내를 가지고 경청(敬聽)하라.
4. 최종판단은 군주가 내려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것을 세종은 실천에 옮겼다.


세종의 순행속 이야기

경남 울주군의 선비와 우연히 만나 응구첩대(應口輒對)한 후 과거에서 낸 답안이 장원을 했다는데 다음과 같다.
내용이 야시시 하다. 이 내용이 진짜로 과거답안인지는 확인불가다.

抱兒私娼弄未休(포아사창농미휴)
半含嬌態半含羞(반함교태반함수)
低聲暗聞相思否(저상암문상사부)
手正金簪小點頭(수정금잠소점두)

님 끌어안고 사창에서 밤새워 즐기는데
부끄러워 고개 떨구며 교태를 부리네
낮은소리 속삭임 서로 주고 받으니
머리끝 금비녀 만지며 미소짓네


임금노릇을 어렵게 여기다.

‘대개 일을 쉽게 여기고 하면 성공하지 못하나 그 일을 어렵게 여겨서 하는 이는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니 너는 그것에 힘쓰라’ 


즉 다스리는 것을 어렵게 여겨 신중하게 하면 성공한다는 말이다.

 然非知之艱 行之惟艱(연비지지간 행지유간)

이를 아는것이 어려움이 아니라 이를 실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한상경의 직언이 임금태종에게 고맙게 들린다.
결국 세종은 어렵게 하는 정치를 실천했다.


반드시 읽고 외워 마음과 몸에 가두어 두어야 할 어록이 있다.

凡事專治 則無不成(범사전치 즉무불성)

범사에 온 마음을 다해 다스리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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