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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어느 자전거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 따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저마다 좋은 자전거를 적당한 값에 사기위해 분주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주고객인 그 경매장 맨 앞자리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고, 소년의 손에는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소년은 아침 일찍 나온 듯 초조한 얼굴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경매가 시작되었고, 소년은 볼 것도 없다는 듯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고 "5달러요!"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곧 옆에서 누군가 "20달러!" 하고 외쳤고, 그  20달러를 부른 사람에게 첫번째 자전거는 낙찰되었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달러는 어림도 없이 15달러나 20달러,  어떤 것은 그 이상의 가격에 팔려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경매사는 안타까운 마음에 슬쩍 말을 건넸습니다.

"꼬마야, 자전거를 사고 싶거든 20달러나 30달러쯤 값을 부르거라."

"하지만 아저씨, 제가 가진 돈이라곤 전부 이것 뿐이에요."

"그 돈으론 절대로 자전거를 살 수 없단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돈을 더 달라고 하려무나."

"안돼요. 우리 아빤 실직당했고, 엄만 아파서 돈을 보태 주실 수가 없어요.

하나밖에 없는 동생한테 꼭 자전거를 사가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소년은 아쉬운 듯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경매는 계속되었고 소년은 자전거를 사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제일 먼저 5달러를 외쳤고,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소년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 날의 마지막 자전거. 이 자전거는 그 날 나온 상품 중 가장 좋은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경매를 고대했었습니다.

"자, 최종 경매에 들어갑니다. 이 제품을 사실 분은 값을 불러 주십시오."



경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소년은 풀죽은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역시 손을 들고 5달러를 외쳤습니다.

아주 힘없고 작은 목소리였습니다.

순간 경매가 모두 끝난 듯 경매장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다른 값을 부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5달러요. 더 없습니까?

다섯을 셀 동안 아무도 없으면 이 자전거는 어린 신사의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팔짱을 낀 채 경매사와 소년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5… 4… 3… 2… 1." "와 ~ ~ 아!!"


마침내 소년에게 자전거가 낙찰되었다는 경매사의 말이 떨어졌고, 소년은 손에 쥔 꼬깃꼬깃한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경매사 앞에 내 놓았습니다.

순간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소년을 향해 일제히 박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이 자전거를 받게 된 동생은 형의 마음을 알았었는지 비가 오나 눈이오나 매일 자전거를 탔다고 합니다.

이 동생이 바로 사이클을 타고 알프스산맥과 피레네산맥을 넘으면서 프랑스 도로를 일주하는  투르 드 프랑스대회에서 최초로 6연패를 달성한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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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言)과 일(事)을 엮어내는 ‘경연(經筵)’

회의(會議)는 길어지면 회의(懷疑)가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런데 세종은 그 회의(會議)를 창조회의로 승화시킨다. 그 특별한 무대가 경연(經筵)이다. 이곳에서 국정토론을 이끌었다.

경연은 고전(經)을 놓고 공부하며 현안을 풀어가는 독특한 회의(筵)
였다.
국왕은 현명한 신하들에게 배우고 왕은 신하들에게 현안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바로 이곳에서 말과 일이 엮인다.
공부만 하면 이론으로 끝나고 일에 대한 회의만 하면 근본에 대한 성찰이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말과 일이 엮이는 회의방식은 바로 이 두가지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세종은 말하는 것에 대해 ‘절실(切實)하고 강직(强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절실함은 반드시 필요한 말을 가려 하는 것이고 강직한 말은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신하들은 분위기에 편승하여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때 명확한 입장정리는 왕의 판단을 돕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이런 절실 강직함이 경연을 통해 경전(經典)의 이론과 융합(融合)하여 창조(創造)적 일을 추진하는 바탕이 된다.

“어떻게 하면 선비로 하여금 들뜨고 화려한 것(浮華)만 좋아하는 버릇을 버리게 할 수 있을까?”


2. 세종의 통치교과서 ‘대학연의’

맹자의 대학(大學)과 관련한 책은 총 5권이라 한다.

본책 대학(大學), 대학연의(演義), 대한연의부, 대학혹문(惑問), 대학강어(講語)로 알려져 있다.
이중 대학연의는 송나라 진덕수가 대학의 체제에 맞추어 역사적 사례를 덧붙여 살을 입힌 책으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는 치세서(治世書)라 할 수 있다. 너무 유명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말의 원전이 대학이다. 대학연의가 세종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경연에서 3번이나 교재로 활용하며 강독하게 했다.


대학연의는 세종의 정치철학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중심에 있다.
시인발정(施仁發政)이 출발이었다면 그 궁극에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있는 것이다.


동시에 국가경영의 요체가 압축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라고 태조에게 조준이 건의했다.

그 가운데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국왕의 9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수신(修身) 2. 존현(尊賢) 3. 친친(親親) 4. 경대신(敬大臣) 5. 체군신(體君臣)
6. 자서민(子庶民) 7. 래백공(來百工) 8. 회원인(懷遠人) 9. 회제후(懷諸侯)


또한 세종의 언중유골(言中有骨)은 대학에서 인용하기도 했다.
 
‘들짐승이 아무리 빠져 달아나도 사냥꾼은 반드시 잡고 만다. 그 짐승이 험한 곳으로만 내달리며 넘어져 죽게 될것은 생각지 않으니 지극히 어리석다 이를 수 밖에 없다’ 상왕 태종에게 아부하며 장인인 심온일파를 제거하려는 박은등을 겨냥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초장에서는 의(疑)와 의(義)로 경학에 대한 깊고 옅음을 보고 종장에서는 대책(對策)으로 그 사람의 포부를 본다”-
변계량의 과거시험 방식의 기준

 

3. 그리고 지식경영을 통한 사례들

말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왕의 말이 처음 나올때는 실(絲) 같으나 그 말이 외부에 나가면 거문고줄과 같고
임금의 말이 거문고줄과 같으나 그말이 외부에 시행되면 상여줄과 같다.



하나 덧붙인다면

백지보다 나을때 글을 쓰고 침묵보다 나을때 말을 하라.

살벌한 말이로다. ㅎㅎ


여조묘장의(予助苗長矣) - 벼이삭이 빨리자라도록 뽑아주다.

지금 이시대 모든분야에서 조장의 처세가 득세하고 있다. 즉시 즉각 바로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 같다. 그 중에도 백년대계라 할 교육의 조장(助長)을 염려한다. 현대의 ‘조장교육(助長敎育)’의 염려와 대안에 대해 의논(議論)이 필요하다.


현명한 군주와 신하의 관계에서 아첨과 칭찬, 직언과 조언을 듣는 방법은 있다.

1.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면책특권(license)을 주라
2. 오직 군주가 하문하는 국정사안에 대해서만 말하라.
3. 군주는 호 불호의 모든사안에 대해 끝까지 인내를 가지고 경청(敬聽)하라.
4. 최종판단은 군주가 내려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것을 세종은 실천에 옮겼다.


세종의 순행속 이야기

경남 울주군의 선비와 우연히 만나 응구첩대(應口輒對)한 후 과거에서 낸 답안이 장원을 했다는데 다음과 같다.
내용이 야시시 하다. 이 내용이 진짜로 과거답안인지는 확인불가다.

抱兒私娼弄未休(포아사창농미휴)
半含嬌態半含羞(반함교태반함수)
低聲暗聞相思否(저상암문상사부)
手正金簪小點頭(수정금잠소점두)

님 끌어안고 사창에서 밤새워 즐기는데
부끄러워 고개 떨구며 교태를 부리네
낮은소리 속삭임 서로 주고 받으니
머리끝 금비녀 만지며 미소짓네


임금노릇을 어렵게 여기다.

‘대개 일을 쉽게 여기고 하면 성공하지 못하나 그 일을 어렵게 여겨서 하는 이는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니 너는 그것에 힘쓰라’ 


즉 다스리는 것을 어렵게 여겨 신중하게 하면 성공한다는 말이다.

 然非知之艱 行之惟艱(연비지지간 행지유간)

이를 아는것이 어려움이 아니라 이를 실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한상경의 직언이 임금태종에게 고맙게 들린다.
결국 세종은 어렵게 하는 정치를 실천했다.


반드시 읽고 외워 마음과 몸에 가두어 두어야 할 어록이 있다.

凡事專治 則無不成(범사전치 즉무불성)

범사에 온 마음을 다해 다스리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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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 제목이다.
여성은 본래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어있다.
그것은 본능적이랄 만큼 원초적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넘어서란다. 아름다움, 그곳이 목적지가 아님을 깨달으란다.
맞다. 남성이 영역확보의 투쟁을 넘어서야 하듯이 여성은 아름다움을 넘어서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평행 아닌 평행선이다.
알 것 같다가도 모르겠고 모르지만 너무 끌리는 그런 양성간의 반복된 만남과 뒤돌아섬은 불가사의다.
그런데 요즘은 여성의 역할이 무척 강화됐다.


백년전만해도 소비는 악덕이었다. 이제는 소비가 사회경제를 지탱하는 미덕이자 핵심활동이 되었다.
이 소비를 주도하는 이들이 여성이다. 사실 가정을 가진 사람들 중 가정경제의 80% 이상은 여성의 결정하에 소비가 이루어진다. 이 수치도 아주 최소치로 잡았다. 거의 90%를 넘는다. 집도, 차도, 적금도, 외식도 모두 여성의 주문대로 움직인다. 처음에는 나만 그런가 했지만 알고 보니 남들도 거의 대부분 그런다고 고백한다.


남녀평등? 그거 이미 오래전에 물 건너간 얘기다. 지금은 누가 뭐래도 여성상위 시대다.
지금 남성들이 조금이라도 미래를 보장받으려면 단박에 여성편에 붙어야 한다.
여성의 주장에 옳다고 박수쳐야 한다. 고달프지 않으려면 말이다.


여성은 미래사회의 주도성(性)이다. 무엇보다 중심이 되는 각종 현안들이 여성들에 가깝다.
교육, 건강, 환경, 가족, 소비, 재테크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과 통찰력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여성특유의 보살핌과 조화, 그리고 네트워킹능력까지 갖추었다. 웹2.0은 그 인프라가 될 것이다.
이제 아름다움을 넘어서라고 한다. 그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3가지 리더십을 제시하며 아름다움(본연의 에고) 너머의 세상을 준비하라고 한다.


먼저 묻혀있어 발휘되지 않은 여성성의 리더십을 꺼내 무장하라 하고 남성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라 한다. 결국은 여성의 특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적극적 장점경영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그 여성성에 기초한 리더십은 남자들의 전유물인 정복하고 뛰어넘고자 하는 세상이 더 이상 없는 이때에 다듬고 보살피며 회복시키는 과제로 꽃피게 됨이 명백하다. 황폐해진 세상에 단비가 되고 먼지 나는 흙에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되라는 말이다. 지금 절실한 문제이다.


그리고 게으르지 말고, 열등감 갖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고 계발해서 전문성을 갖추라고 조언한다. 네트워킹의 폭과 질을 넓혀서 시너지를 만들라는 말을 곁들인다. 이제 더 이상 산사에서 고시공부 하듯 파대는 시대는 지났다. 조금씩 거들어서 결국 완성을 만드는 협업의 시대가 오는 이때 여성의 소통능력은 분명 엄청난 시너지의 창구가 될 것이다. 소통능력은 시너지의 핵심이고 이 핵심을 여성이 쥐고 있다. 참고로 남자는 하루 700단어가 한계용량이지만 여성은 2000단어를 사용해야 암 안 걸린단다. 누가 소통에 유리할지는 뻔한데 이것을 생산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남자들은 시어(詩語)들에 익숙해야 필적할 수 있다. 한 단어에 수많은 은유를 담아야 하니 말이다.


또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을 강화해서 미다스의 손이 아닌 마음을 갖추라고 한다. 무서운 주문이다. 세상의 절반은 여자라지만 아직은 세상의 절반 이상의 파워를 남자가 쥐고 있는데 이 사람들의 마음을 쥐고 흔들라는 주문이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미 이불아래 송사에 영향 받은 역사가 이제는 백주에도 미다스의 마음들에 부딪게 되었으니 게임 끝이다. 남자의 알량한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다만 기대함은 크다.


그동안 정복이란 파괴적 언어와 환상에 길들여진 우리는 파먹고, 깍아 내며, 베어내 왔다. 그러나 그 자리에 상생의 나무, 희망의 새싹을 여성들의 손으로 심기를 기대한다. 나는 밭 갈고, 물 나르고, 움막 치는 힘든 일을 해야 할 테니!


남자! 정복한 뒤에 여성을 초대하라. 다만 아름다움을 뛰어넘은 여자를!




Writer Profile
김태균  집단지성 네트워크 '더포티라운드 The 40 Round'

사람답게 사는것과 행복한 성공을 위해 자신을 찿아가는 여정을 고민함. 내일을 위해 오늘을 성실히 경영해야할 경영자로서 1인기업과 브랜드를 만들 자기경영플래너!
주니어리더십센터 및 미래형커리큘럼연구소 소장, 에너지큐브 이사
저서:지혜의 숲에서 길을 찾다,굿바이 딜레마. http://dreamerchan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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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역사소설을 읽듯 했다. 동시에 사실에 충실하여 더욱 실감나는 현장에 다녀온 느낌이다. 당대와 후대의 인물이 현장에서 그리고 기록을 통해 바라본 세종은 분명 실록밖으로 행차하여 지금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듯 하다. 덧붙여 ‘내가 바라본 세종과 명신들’을 한편 이어 쓰는 심정으로 후기를 적어본다.


세종은 주어진 소명(숙명)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최선을 다한 왕이다. 소명이 주어진다는 것은 한편으로 축복이다.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찾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죽은 범부들이 부지기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세종은 주어진 사명을 분명히 인식했다. 권력의 정점에서 휘두르고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역사적 소임을 분명히 인식한 왕이었다. 이에 반해 양녕은 그 ‘주어진’소명‘의 본분을 이해하지도 충실하지도 못한이의 표상이다.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스스로 그 소명을 회피한 것일까? 나에게 주어진 소명의 절실함이 과연 어떠한지를 되물어 볼 일이다.


태종은 ‘정권만 있고 국가는 없던’ 상황에서 아버지의 건국을 돕고 이를 이어받았다. 아니 쟁취해 냈다. 그리고 그는 국가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정리했다. 방법은 2순위였다. 그것이 폭력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 내는 것을 국가창업기의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사명은 시간의 굴레속에서 새로운 역할로 창조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한 것이리라. 그가 있던 시대의 사명과 오늘날 국가지도자의 사명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된 것은 시대적 소명을 명확히 인지해 내는 것이 최고 지도자의 첫 번째 필요조건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 이시대의 지도자의 사명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내가 해야 할 역사속의 소임은 무엇인가를 궁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황희는 ‘선왕이 그에게 넘기신 과업’을 ‘말이 두려워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정리했다. 그는 태종의 생각과 함께 세종의 생각을 분명히 읽었고 그 생각에 충실하고자 했던 명신(名臣)임을 자처했다. 많은 흠결속에서도 훗날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거듭나게 된 그에게 세종은 은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은혜를 갚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모든 재능을 쏟아 부었다. 조지 버나드쇼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써버리고 가지 못할까 두렵다고 했던 그 두려움을 느끼기나 했을까! 그는 한고조를 세종보다 아래에 두며 그 스스로 세종을 섬김에 깊은 자부심을 가졌다. 그런 류의 자부심을 갖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그는 행복했음에 틀림 없다.


섬김에 있어 최고의 주군을 모신다는 행복감은 특별한 자부심을 가져다 준다. 자신을 알아주고 덮어주는 주군에 대한 보답은 그 스스로 누가 되지 않으며 결국 성공하는 것이다. 자부심 어린 섬김과 역사적 성취를 일구어 낸 행복했던 재상 황희가 오늘 우리시대에는 어떤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궁금하다.



백성을 믿지 않았던 허조. 백성의 억울함을 듣는것과 유능한 관리를 보호하는 것 사이에서 대부분 후자를 선택한 명신.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넓힌다(人能弘道)’고 믿었던 사람. 그 때문에 세종치세에는 유능한 인재가 풍부했다. 그는 깐깐하고 원칙주의자였지만 그 때문에 세종의 치세가 가능하도록 주추(풍부한 인재풀)를 놓은 사람이었다. 세상의 평판보다는 본인의 처신을 엄격히 유지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를 바르게 세우는 일(修身)에 철저했기 때문이다. 기본에 충실한 것의 가치를 몸소 실천한 사람으로 결국 ‘선배들의 극기의 공력(克己之功)이 이와 같았다’는 조광조의 평을 듣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넘쳐나는 언로의 홍수속에서 수많은 평판의 회오리속에 살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 회오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어지러움을 경험하고 있다. 능력있는 사람이 사소한 잘못으로 옷을 벗어야 하고 마녀사냥의 제물이 되기도 한다. 우리시대에 허조가 있다면 이런 세간의 언로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까?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라 여겼던 그는 국가를 위해 아껴야 할 관료를 등 뒤에 두고 ‘차라리 나를 먼저 죽여라’고 외치며 유능한 관료들의 바람막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국가의 기둥과 서까래들을 지켜온 수문장이다.


세종은 박연에게 말했다. ‘너는 내가 아니었으면 음악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고 나도 네가 아니면 역시 음악을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인가! 완벽한 인간은 없음을, 그래서 서로를 격려하고 담금질하며 결국(結局)을 만들어 내는 관계는 상생을 위한 인간관계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서로의 필요를 알았고 그 필요에 충실했으며 자신을 불태우며 황종음(궁극의 도)을 찾아 냈다.

‘네가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너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있는가를 자문해 본다. 누구인가를 물어보아도 시원한 답변이 솟아나질 않는다. 지금부터 자문하기를 계속하여 이런 만남을 꿈꾼다. 내 인생의 행로 속에서 이런 만남을 꿈 꿀 것이다. 모두에게 특별한 희망을 품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지성, 요즘말로 하면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긴 정인지는 학자이자 외교관이었다. 학자이기에 독자적 지성의 중요성에 절실했고 외교관이기에 그런 세종의 뜻을 간명하게 파악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흐른 후 따로 모아 이루어 내고 싶은 독립의 생태웅덩이(국가)를 이해한 사람이다. 스스로를 존귀히 여기지 않는 것의 폐해를 분명히 알았기에 훈민정음 창제를 가장 헌신적으로 지원하며 세종정치의 중요한 학문적, 외교적 업적을 뒷받침한다.

국제적 힘의 현실(事大)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으려는(自主) 교묘한 균형감각은 근대 우리외교의 전범(典範)이 될 만한 사례이다. 이는 동시에 학문하는 자의 자세를 보여준다. 수많은 외국의 문물이 넘치는 때에 우리 것에 대한 억지스러운 존중으로 체면치레하려는 세태에 학문의 멋들어진 자기(自己)화를 보여준 선비이다.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優), 하늘이 나에게 맡긴 소명을 알고 즐기기에 근심이 없다는 것은 비단 국가중책을 맡은 자들만의 변은 아니다. 민주주의란 개인의 삶에 어느 누구도 예외없는 개별적 중요성을 부여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조건이 있다. 먼저 지명하는 것이다. 지명(知命)해야 낙천(樂天)이 된다.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깊은 이해를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종을 섬기며 함께 치세를 열어간 수많은 명신(名臣)과 재신(才臣)들은 이웃한 동료들과 군주로 인해 지명(知命)했고 결국 낙천(樂天)으로 마감했다. 이것은 백락과 천리마의 만남과 같은 것이다. 천리마는 이시대의 백락을 만나 맘껏 달리고 싶고 백락은 천리마를 만나 그를 뛰게 하는것이 최고의 보람일 것이다.


백락 세종은 600년을 뛰어넘어 이시대의 천리마를 깨워주시길 바란다.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을 현신한 백락의 상징이라 믿고 싶다. 그 앞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제각각의 분야에서 천리마로 변신시키는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하는 그런 실존의 백락으로 믿고 싶다.



Writer Profile
김태균  집단지성 네트워크 '더포티라운드 The 40 Round'

사람답게 사는것과 행복한 성공을 위해 자신을 찿아가는 여정을 고민함. 내일을 위해 오늘을 성실히 경영해야할 경영자로서 1인기업과 브랜드를 만들 자기경영플래너!
주니어리더십센터 및 미래형커리큘럼연구소 소장, 에너지큐브 이사
저서:지혜의 숲에서 길을 찾다,굿바이 딜레마. http://dreamerchan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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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도자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다.(不知)

먼저 지도자의 옹졸함을 꼽고 싶다. 간장종지는 대접의 크기를 가늠할 수도 없고 대접인지도 모른다. 그저 넉넉한 둥근 벽이 있을 뿐이다. 5척의 신장으로는 5척 이상의 키를 잴 수 없다. 지도자의 도량이 얼마나 넓은가에 따라 대사를 실행하는 인사들의 그릇과 역량이 결정된다.


둘째는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 것이다. 어느 곳에 누가 어떤 방면의 현자가 있는지를 찾는 노력을 지극히 하지 않으면 우연히 걸려드는 인재를 만나기를 기다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많은 그물을 던져 성과가 없더라도 한 두 번의 만선으로 빈 그물을 모두 감당하는 것이다. 권세의 정점에서는 세상과의 소통이 만만치 않다. 특별하고 지극한 노력이 없이는 인의 장막, 말의 커튼에 둘려있을 뿐이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통찰력의 부재를 들고 싶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익과 이해에 우선한다. 다만 그 이해의 우선순위가 각기 다를 뿐이다. 명예, 재물, 지식, 권력 등 각각의 우선하는 이해속에서 모자이크를 맞추듯,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듯 사람에 대한 통찰력으로 큰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단순히 청렴하다거나 전문성이 있다거나 하는 기계적 척도뿐만 아니라 완성된 인격의 됨됨이를 가늠하고 그것을 업무의 전문성과 합치하게 되는지의 여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는 단편만 보기보다 입체적 사고를 해야한다.


2. 인재를 절실히 찾지 않으며 활용하지 못한다.(不切)


첫째 이유는 사람의 장점을 먼저 보는 긍정의 태도가 부족한 경우다. 거꾸로 단점을 먼저 취하고 그래서 안 된다는 사고로 본다면 세종시대에도 써먹을 인재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단점이란 누구에게나 있고 또 엄밀히 따지만 단점이 아니라 다른 특성일 뿐인 경우가 많다. 자신과 다른 특성을 자신은 옳고 타인은 그르다고 주장하는 것으로는 인재를 모을 수 없다.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일컫는 것일까?


둘째는 전문업무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다. 지도자는 직접 수행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해당 업무의 성격과 목적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해야 한다. 예술기관이니 예술가가 수장이 되어야 하고 체육기관이니 체육인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관점에서는 일견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문제는 수장이 해야하는 것이 예술이나 체육은 아니지 않은가! 경영은 경영의 몫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처럼 특별한 분야에 특별한 직능을 위주로 편협하게 적용하는 것은 전문역량을 발휘 할 수 없게 만드는 일반적 사례이다.


셋째는 지도자의 그릇이다. 작은 그릇 일수록 큰 그릇을 못 본다. 아니 본다 하더라도 곁에 두고 함께 일할 수 없다. 남들의 시선이 두렵고 자기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는 경우인데 사실 이런 문제가 많지만 역으로 독선도 마찬가지다. 포용하지 못하면서 나는 옳고 그는 그르다고 주장한다. 강직하고 원칙분명하다는 것과 내 그릇이 그보다 작다는 변명과는 종이 한장 차이에 불과한 것 아닌가!


3. 인재가 지도자와 화합하지 못한다(不合)

첫째는 목표가 동일하지 않은 경우이다. 추구하는 바와 가치가 다른 경우 사실 함께 하기 어렵다. 지도자와 현신의 결합은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적 유대보다 목적의식의 공유가 중요하다. 그곳에 함께 가야할 필요를 같이 가져야 한다. 한사람은 가고 싶고 가야 하는데 또 한 사람은 가면 좋지만 안가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전력을 다한 자기 헌신이 나올 수 없다. 그곳에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함께 계속 길을 가겠는가? 혹 소통의 문제라면 설득하고 대화하고 이해시키며 가치를 새로 설정하고 목적을 공유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방향이 다른 경우라면 극복하기 어렵다.


둘째는 방법론의 차이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그 표현방식과 과정의 방법론에서는 많은 경우의 수가 있기 때문에 의견을 모으기가 힘들다. 그러나 목적이 같다면 이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고도의 정치활동으로 2인3각 할 수 있다고 본다. 비록 속도는 느리더라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협력하면 방법론의 차이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법의 차이를 인정하고 극복하는 것과 함께 서로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목적지에 함께 다다르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과정에 성실할 것을 신뢰해야 한다. 내 것을 양보하고 내 놓았는데 그것만 똑 따먹고 뒤 돌아 선다면 앞으로는 투쟁만 있고 비난만이 난무하지 않겠는가!


셋째는 조화를 이끌어 내는 지도자의 도량부족이다. 다른 것과 그른것의 차이를 모르는 것이다. 세종은 법가적인 허조, 도가적인 맹사성, 유가의 황희, 불가적인 변계량 등을 모두 함께 끌고 갔다고 한다. 인위(人爲)는 무위(無爲)를 헐뜯고 유가(儒家)는 석가를 공격하면서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三人行 必有我師라 했다. 분명 배울것이 있고 서로를 세울 수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결국 지도자의 조화로운 인재운용은 지도자의 품의 크기이다.


부지(不知), 부절(不切), 불합(不合) 이 3가지 인재를 모으지 못하는 문제의 공통점은 지도자의 자질문제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제도인 직접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경우 그의 도덕성도 검증해야 하지만 그 품의 넉넉한 수준을 판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평가 기준은 그 주위에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 오래 머물고 많이 모여드는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수시로 사람들이 바뀌고 물갈이가 되는 것은 그럴 듯 한데 겪어보니 아니라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국가의 장래는 개인의 장래보다 중요하다. 다수의 문제이고 자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백년대계의 지도자상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를 짊어지고 나갈 세계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청소년시절부터 인문학을 깊이 있게 접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강화해야 한다. 시카고 대학이 3류 대학에서 1류 대학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인문학의 강제적 도입이고 강화였다. 우리는 근래들어 점점 인문학을 약화시키고 응용학문만 성공을 위한 전가의 보도인양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 않았는가!

인문학은 그 자체로 인간에 대한 통찰의 크기와 개인의 도량을 넓혀주는 학문이다. 세종의 어린 시절 지독한 독서의 내용은 대부분 경(經)과 사(史)였을 것이다. 이 경사(經史)는 기본과 응용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아우르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사색하는 기초가 된다. 이 이해를 토대로 법학, 교육학, 의학, 신문방송학 등의 응용학문이 세워지는 것이 올바른 학문의 순서라고 생각한다.

청소년기에 권하고 싶은 방법이 있다면 독만권서(讀萬券書) 행만리로(行萬里路)의 방법이다. 독서력은 모든 배움에 우선하는 방법이다. 교과서를 외우게 하지 말고 독서력을 강화해야 한다. 정독, 숙독, 지독, 속독 등의 독서 방법과 체계적인 책의 공급등을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귀로하는 독서인 경청의 필요와 방법 또한 배워야 한다. 이런 기초방법을 숙달 한 뒤에 문사철-정경사-수물화생-기예악의 기초를 닦아나간다면 중고등학교 시절 능히 1천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사색하고 토론한다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남달라 질것이다.

이에 더해 기회를 자주 만들어 여행을 하게하고 봉사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예술을 접할 기회를 자꾸 만들어야 한다. 점수 따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식의 예술 활동이 아니라 클래식위주의 예술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다. 클래식은 세월의 풍파를 건너뛰어 살아남은 인류공통의 유산이자 자산이다. 이것은 시공간을 넘어서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감대를 쌓아온 것이다. 유행가와는 다르다. 동시에 가족의 가치를 재발견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가족은 언제나 내 편이다. 내가 실수하고 잘못해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 그 가족마저도 어려워진 배우자와 부모를 내버리고 떠나는 세태가 되었다. 지극히 염려스러운 사실이다. 이제는 믿고 의지하며 돌볼 가족마저도 별 볼일 없는 사건 때문에 갈라서는 평범한 관계로 하향 평준화 된 것이다. 위기의 시대이다.

백년대계를 세울 지도자를 위해 오래된 커리큘럼의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 세종께서 그 전형을 보여주셨다.




Writer Profile
김태균  집단지성 네트워크 '더포티라운드 The 40 Round'

사람답게 사는것과 행복한 성공을 위해 자신을 찿아가는 여정을 고민함. 내일을 위해 오늘을 성실히 경영해야할 경영자로서 1인기업과 브랜드를 만들 자기경영플래너!
주니어리더십센터 및 미래형커리큘럼연구소 소장, 에너지큐브 이사
저서:지혜의 숲에서 길을 찾다,굿바이 딜레마. http://dreamerchan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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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조찬모임에는 만년 개근이셨던 조연심 대표님과 백승휴 작가님이 빠지셨지만, 오랜만에 안계환 대표님, 신철식 대표님 2분이 오랜만에 참석하여서 그 자리를 채워주셔서 역시나 멋진 모임이 된 것 같습니다.

역시나 명쾌하게 회의를 리딩해 주신 김태균 실장님, 뛰어난 정리와 해설 능력을 보여주신 김태진 대표님, 맛있는 아침 식사를 챙겨주시는 등 여전히 큰 누님처럼 큰 폭으로 저희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시는 방미영 대표님, 그리고 오늘 갑자기 회의록 공지를 맡은 저(?)까지 모두 6명이 참석했습니다.

조찬 모임에서 논의되었고, 정리된 사항들

1. 공동 저작 관련
    1) 목차 등은 다음주 모임(목)까지 정리 (김태진, 김태균)
    2) 책의 앞 뒤에 들어갈 책 발간 취지 및 모임 성격 등에 대한 원고 정리 (김태진, 김태균) 
    3) 개인별로 원고 정리 (15장 분량(A4 기준, 글자 크기 10pt)하여 초안을 10월31일까지 완성
        (방미영, 조연심 대표가 정리할 것이며, 원고 체크는 안계환 대표)
    4) 책의 초안 완성 : 발기인 대회(11월20일 금요일 저녁 7시, 장소 미정)까지 

2. 워크숍 관련
    1) 준비물 : 간단한 과자, 음료, 노트북 등 (김찬), 빔프로젝터(김태균)
    2) 차량 배차 : 김태진 교수(김찬), 신철식 대표(방미영 대표 등), 김태균 실장, 조연심 대표 등 다수
    3) 기념품 : 선인장 (김태균), : 장소(비전 빌리지) 및 아침 식사 협찬에 따른 가벼운 선물 포함
    4) 개인별 라이프 플랜 발표 ppt로 준비 (개인당 20분 분량)

  이상입니다. 내일 모두 비전빌리지에서 뵙겠습니다. 

  의문있으시거나 보충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관리자로 들어가셔서 수정해 주시거나, 
  댓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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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친정기(親政期)의 시험대  - 기근(饑饉)구제를 통한 위기의 리더십


세종시대에도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다.

'이 임금 때문에 흉년이 들어 살기가 심히 어렵다. 내가 만약 임금이 된다면 반드시 풍년이 들 것이다(세종 5년)’ 강원도 고성의 이각(伊覺)이란 자의 말이다.


흔히 역사속의 태평시대에는 모두 평온했고 전쟁도 없었을 거란 일반의 인식을 뒤엎는 참변이다. 유언비어가 유포되면 곧 정권이 넘어가는 위기의 시대였다. 이러한 위기에서 세종은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하며 치세의 리더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는지가 자못 흥미롭다.


세종 친정기 초반에 굵직한 위기 2가지는 강원도의 기근과 도성의 대화재사건이다.


먼저 기근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강원도 인구의 27%인 2600여 호가 유리하여 사라지고 토지가 황폐화되었다. 종자가 썩고, 뿌린 씨앗을 다시 파내 주워 먹어야 했다.  흙을 파서 떡과 죽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처자식을 버리고 떠나거나 소리치고 울며 따라오는 자식을 나무에 묶어놓고 가기도 하는 비참한 지경에 내 몰렸다. 타 지역으로 먹을 것을 찾아 떠났지만 어느 지역인들 넉넉했을까!


세종은 다음과 같은 대책들을 지시한다.


 첫째는 현지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었다.

‘흉년을 구제하는 것은 결코 완만히 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정무의 제 1순위에 기근구제의 대책을 강구하는 일에 매달렸다. 이 가운데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실태파악을 괴롭히는 현지 수령방백들의 거짓보고를 엄벌하는 것이다. ‘백성을 위해 창고를 임의로 풀었거나 거둬야 할 곡식을 다 수납하지 못한 것은 지역수령의 관할에서 할 수 있는 일이나 그 형편을 사실대로 전계(보고)하지 아니한 것만큼은 죄를 주어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정리이다. 결국 문제에 대한 상황파악을 1순위로 둔 것은 현상에만 매달리지 않는 장기적인 계획과 대처를 가능하게 하는 첫 관문이라는 인식이 그의 리더십의 출발이다.


둘째는 기민(飢民)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했다.

‘기민들이 대규모로 이동하면 타 지역의 그나마 무사한 지역까지 함께 굶주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 됐지만 ‘한가한 관원의 불필요한 말’로 강행했다. 하지만 실은 이러한 문제가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떠도는 사람은 많았으나 굶주려 죽는 사람은 적었다’  응급처방과 십시일반의 정신까지 갖춘 방법이다.


셋째는 구휼방식의 변경을 꾀했다.

어디서 왔는지를 묻지 않았고, 구휼(救恤)하는 사람들을 관원에서 승려로 바꾸고 숙소를 마련해 주며 역질에 걸린 사람들을 별도 격리 하는 등의 과감한 조치들을 단행하면서 기근문제를 현장에서 처리하게 했다. 그리고 거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즉 자존감을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여 ‘많은 사람들이 와서 살아나게’되었다. 당시의 시대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혁신적인 구제방식의 변경은 강력한 왕의 의지와 충직한 신하들의 협조가 없이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통해 세종은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밥은 백성의 하늘이니(食爲民天) 농사는 늦출 수 없는 것(農事不可緩也)’이라


민생안정을 위해 세제개혁을 단행하여 국가재정을 만회했다. 신세제 도입, 불교종파의 통합과 노비혁파 등의 개혁 외에 국왕가족의 재산을 축소한 일은 특별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당시 선대왕으로부터 이루어진 가계의 인원수만 해도 대략 80명이 넘는 왕족이 정승(150결)보다 많은 300결의 토지를 분배받았는데 이를 각 50결씩 줄이는 방안을 실행했다. 요즘말로 하면 국왕의 재산헌납이다. 비록 신료들의 반대가 있다 하더라도 왕이 스스로 왕가의 재산을 줄이는 마당에 어찌 저항할 수 있겠는가? 리더의 솔선수범의 전형이다.


이후 간척지 개간 등 농지를 대폭 확대했다. ‘전라도에 황무지가 많더니...호수와 인구가 매우 번성하고 산림과 초목이 우거진 늪이 모두 개간 경작되었다’라는 보고가 올라올 정도로 간척개간의 진척을 많은 효과를 보았다. 특히 함경도 지역의 효과가 커서 국방강화와 함께 많은 유리민들이 모여 정착하게 했다.


조선의 기후 및 토양조건에 맞는 농법개량과 보급 등의 사업에 중점을 두었다.

‘하늘의 재변은 인력으로 어찌 할수 없으나 사람의 힘이 미치는 데까지는 심력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과 수전농법의 발전, 파종시기의 선택을 통해 논농사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 바람에 강한 볍씨의 보급, 구황작물의 식량대용화, 한해 두 번익는 올기장(早麥)의 보급등이 그것이다.


이런 정책의 꾸준한 추진으로 2배의 농지가 늘어나고 2배의 생산성증대를 가져왔다. 결국 4배의 농업생산력을 키운것이다. 밥은 백성의 하늘인데 그 하늘을 편하게 해 준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관리들이 국가시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한 일이다.

기민을 죽게 한자는 비록 공신의 자손이라도 모두 곤장을 쳤으며 돈을 내고 벌을 면제받는 것을 허락지 않는’ 왕의 의지를 표명하는 강제의 방법도 동원했지만 내가 하는 일이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라는 신념을 갖게 해준 세종의 통치리더십이 더욱 큰 빛을 내게 한 것이다.

이디오피아에서 한 어머니가 굶어죽은 아이를 묻으러 가고있다.
우린 너무 풍족하지 않은가!


세종은 자신의 본분에 대해 분명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달성하기 위한 세부목표와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론도 숙지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남다른 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능력이 탁월하다 할 것이다.


세종의 명연설 1 - 왕가의 재산헌납을 제안하며

하늘의 재앙(天災)과 땅의 이변(地異)의 있고 없는 것은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마는 배포조치(配布措置)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다 할수 있는 것이다. 내가 덕이 없는 사람으로 큰 기업을 이어받아 능히 치평(治平)을 하지 못해 아래 백성들이 굶어 죽게 되었으니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장차 깊은 못에 떨어질 것만 같다.

자손이 번성하고 많은 것이 경사라고는 하지만 한갓 국록(國祿)을 허비하고 건물이 또한 많아 그 때문에 재앙이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내가 심히 부끄럽다. 그 나머지 종성(宗姓)들의 과전은 갑자기 감할 수 없으므로 친아들 친손자의 과전(科田)을 감하려고 하는데 여러 사람의 뜻은 어떠 한가‘(세종실록 1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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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집단지성 네트워크 '더포티라운드 The 40 Round'

사람답게 사는것과 행복한 성공을 위해 자신을 찿아가는 여정을 고민함. 내일을 위해 오늘을 성실히 경영해야할 경영자로서 1인기업과 브랜드를 만들 자기경영플래너!
주니어리더십센터 및 미래형커리큘럼연구소 소장, 유엔젤문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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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才觀에 대한 비유로 백락과 천리마의 비유이다.


한때 伯樂(백락;말을 잘 알아보기로 유명한 신화의 인물)이 길을 가다가 앞길에서 소금가마를 끌고 오는 말을 보았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말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는 것이다. 백락이 보니 그 말은 천하의 명마인 천리마였다. 그말은 자신이 천리마임을 알지만 주인을 잘못만나 소금가마나 끄는 신세인것을 한탄하며 백락에게 구원의 도움을 원하지만 백락이 어찌할 수 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천리마라 하더라도 그 말을 알아보는 자가 있어야 제대로 천부적기량을 뽐낼수 있는것이다. 다음은 백락과 천리마의 관계에 대한 한유의 글이다.


世有伯樂한 然後에 有千里馬하니 千里馬는 常有로되 而伯樂은 不常有라. 故로 雖有名馬나 祗辱於奴隸人之手하여 騈死於槽櫪之間이요 不以千里稱也라.

馬之千里者는 一食에 或盡粟一石이어늘 食馬者가 不知其能千里而食也하니 是馬가 雖有千里之能이나 食不飽하면 力不足하여 才美 不外見이라. 且欲與常馬로 等이라도 不可得이니 安求其能千里也리오.

策之不以其道하며 食之不能盡其材하며 鳴之不能通其意하고 執策而臨之曰 天下에 無良馬라 하니 嗚呼라 其眞無馬耶아 其盡不識馬耶아.



세상엔 백락이 있은 후에 천리마가 있으니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비록 천리마가 있으나,

다만 노예(백락과 반대되는 의미로 말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의 손에서 욕을 당하며

보통말들 사이에서 죽으니 결국 천리마라 불리워지지 않는다.

천리를 가는 말은 한번 먹을때 혹 곡식 한섬을 다 먹지만

말을 먹이는 자가 그 천리마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먹이니

천리마가 비록 천리를 가는 능력이 있으나, 먹는 것이 배부르지 못하여 힘이 부족해서

그 천리를 가는 재주를 밖으로 나타내지 못한다.

또 보통의 말들과 같아 지려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어찌 천리를 가는 능력을 구할수 있으리오.

채찍질을 하여도 천리마에 합당한 도로서 하지 못하고 먹여도

그 재주를 다할수 없게 먹이며 울어도 그 뜻을 알아주지 못하고

다만 채찍을 대면서 말하기를 아~ 천하에 좋은 말이 없구나 하니

오호라,..

참으로 천리마가 없는것인가 아니면 말을 알아보는 자가 없는 것인가.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천리마를 알아볼 수 있을까?
모두가 무엇을 배우고 어딘가에서 누구를 만나면 천리마가 되는 것일까?
지금 청소년들은 무엇을 배워야 각자의 분야에서 천리마가 될까?

지금의 고민이고 대안이고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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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집단지성 네트워크 '더포티라운드 The 40 Round'

사람답게 사는것과 행복한 성공을 위해 자신을 찿아가는 여정을 고민함. 내일을 위해 오늘을 성실히 경영해야할 경영자로서 1인기업과 브랜드를 만들 자기경영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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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지혜의 숲에서 길을 찾다,굿바이 딜레마. http://dreamerchan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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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아카데미 3- 세종의 정치비전과 민생경영



지난시간 요약


1. 세종이 개인적 취향과 가정관계등에 대한 개요


2. 세종시대가 가능하도록 만든 태종의 길닦기


태종은 2번의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정리하며 조선의 3대 왕에 올랐다. 이후 정치적 개혁과 민생개혁을 위해 온 힘을 쏟아 부으며 신생국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그 와중에 정적의 숙청과 친인척의 피를 부르는 정리를 하며 오명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세종이 있었던 것은 태종의 교통정리가 핵심이었다. 양녕에서 충녕(세종)으로 세자변경, 왕권강화를 위한 개국공신 중심의 신권견제와 숙청, 외척세력에 대한 불온가능성 엄단등은 모두 세종치세의 초석이 된 것이다.


몇가지를 요약해 본다.


1. 수성의 시기를 전환하기 위한 왕위계승의 정당성 확립


정종으로 이어지는 世弟(세제)가 아닌 태조로부터 이어지는 世子(세자)로서 왕위를 계승하게 된 점이 그렇다.


2. 국왕재량권의 확보와 국가관의 정립


국가란 여러가문들 중의 하나이거나 나라의 으뜸가문의 차원이 아니라 몇 개의 가문을 희생해서라도 지킬 가치가 있고 때로 왕 자신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다.


사실 고려시대만 해도 국가보다는 부족사회의 연합이란 성격이 강했고 치세의 역량은 무력이었다. 이제 조선에 들어와서 문치와 법치가 바로서는 근대국가의 개념이 정립되게 된다.


不忠(불충)과 不睦(불목)의 차이를 기억하라!


3. 대외적 불안정 요소를 최소화


정치적 정당성을 위한 명나라에 대한 至誠事大(지성사대)이다. 북방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강대국동맹노선을 취한다. 자진한 말1만마리 무역과 조선처녀 공헌, 명나라 사신의 온갖행패등도 모두 신생국가의 안정을 위해 인내력을 발휘한다.


4. 고려의 충신을 襃彰(포창)-아름다운 뜻을 기리고 선행을 드러냄-하여 체제를 공고히 함


고려말 고려충신으로 죽기를 자처했던 길재, 정몽주등을 복권시킨것은 신생국에 대한 절개와 충성을 요구하는 정치적 포석이다.


‘만일 이씨의 신하에 이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아름다운 일’이라 했다.







세종의 정치비전과 민생경영


1. 세종의 즉위와 정치비전 : 施仁發政(시인발정)- 어짐을 베풀어 정치를 일으킨다.


본디 시인발정이란 맹자와 제선왕의 대화에서 나오는 ‘發政施仁(발정시인)’에서 유래되었다. 세종은 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어짐 베품을 먼저로 본 것이다.


첫째, 선왕의 業(업)을 계승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정치보복 없을것을 천명

둘째, 사면령을 내려 화합을 도모

셋째, 모든 것의 위치를 바로잡고 시작을 조심해서 하겠다는 仁君(인군)정치로의 선언



2. 세종의 제 일성 : 서로 議論(의논)하자


‘내가 인물을 잘 알지 못하니 좌의정, 우의정과 이조 병조의 당상관과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제수하려 한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소통을 우선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들은 일제히 환영한다. 즉위 후 최초의 말이 의논하자라는 말은 모든 지혜를 수렴해 결정하는 매우 민주적인 운영방식이며 良才用賢(양재용현)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정조의 측위 후 첫마디는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했다. 두사람의 정치적 상황을 극명히 보여준다.


결국 세종의 정치적 일성은 신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동참을 촉구하는 말이자 정치란 혼자할 수 없음을 강조한 말이다.


우리시대 통합을 논하지만 정작 진실된 대화(의논)가 부족한 것은 바로 이런 정치철학의 부재가 불러온 것이 아닐까?



3. 세종의 효행과 태종의 행복


有錢難買子孫賢 억만금으로도 어진 후계자를 살 수 없다’ - 중국사신의 감화발언


‘자식이 왕이되어 지극한 정성으로 봉양하니 이와같은 일은 고금에 드문일이다’


‘주상이 현명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뛰어난 줄은 몰랐다. 현명하고 원숙함이 周文王(주문왕)과 같은 사람이다’


‘내가 나라를 부탁해 맡김에 사람을 잘 얻었으니 산수간에 한가로이 노니기를 이처럼 걱정없이 하는 자는 천하에 나 한 사람 뿐이다. 고금을 통틀어 나 한사람 뿐일 것이다’


태종의 세종에 대한 말이다.


지금시대 전임 대통령이 후임대통령에게 이와같은 심사를 표현할 수 있다면 온 국민이 행복하지 않겠는가?


周易(주역)에 樂天知命(낙천지명)이란 말이 있다. 하늘에 감사하고 즐기며 자신의 나아갈 바를 안다는 뜻이다. (원문은  樂天知命故不憂 - 하늘을 즐기고 명을 아니 근심이 없다)


주어진 조건, 상황 등에 감사하며 족한줄을 알고 기뻐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하늘의 命(명)을 안다는 것은 진실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다. 스스로 나아갈 바를 깨닫는일, 천직이라 하는 것, 자신의 직분을 최고로 여기는 자세, 그리고 그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역사고금을 통틀어 인간의 최고의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 자신의 달란트(재능)를 알고 이를 최선을 다해 기여(남김)하여 복을 받는일과 너무도 같지 않은가!



樂天하고 知命하라.

세종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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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박 워크샵 일정과 장소
일자: 9월 25-26일(저녁에 도착해서 다음날 오후 3-4시쯤 해산)
장소: 경기도 이천 비전빌리지(별도공지 했음)
준비물 : 1박할 수 있는 간단한 복장 및 세면도구 + 와인류의 주류 + 간식류
(위 사항은 24일 조찬에서 다시 논의하여 챙길것)

진짜 준비사항 - 다른건 몰라도 이건 준비해야!
1. 회원규약부분에 대해 좀더 숙지하고 생각을 다듬어 오실것
2. 추천회원 명단(1인당 4명이상)
3. 개인의 라이프플랜 프레젠테이션(PPT파일로 가지고 오시면 됨)

2. 집단지성 출판건
집단지성네트워크에 대한 원리와 개요 비전 전망등을 책의 그릇(기본취지)으로!
내부에는 각자의 컨텐츠(현재 사용하는 브랜드네임)의 내용을 출판
본 컨텐츠의 기본골격(소제목과 SCHEME)을 9월 말까지 작성제출하기로 함

본 과정을 논의하는 중 우리의 모임원리와 이념에 대한 집중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동의, 다음과 같은 작업을 하기로 함.
1. 왜 모였는가?(Why)
2. 무엇을 얻고 싶은가?(What)
3. 어떻게 할 것인가?(How)

를 제목으로 40라운드에 참여하는 종합적정리를 문서화하여 22일(화)까지
블로그에 비공개로 올리고 이를 각자 검토한후 24일 조찬에 참석하기를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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