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터넷 뉴스 매니아이다. 일반 기사도 많이 보지만 특히 스포츠 기사를 좋아하는데 야구기사에 대해서는 거의 다 읽어보는 편이다. 12월 들어서 자주 눈에 띄는 기사가 있다. 프로야구단의 마무리 훈련에 관한 기사다. 프로야구는 3월 말부터 시즌이 시작되어 포스트 시즌이 9월말에서 10월까지 진행된다. 포스트 시즌에 올라가지 못한 구단은 시즌을 마치고 짧은 휴식을 한 후에 마무리 훈련에 들어간다. 포스트시즌에 올라간 팀도 경기가 종료 되는대로 마무리 훈련을 시작한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이것이 과열되고 있는 현상을 보인다. 우승팀인 SK는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대만과의 경기, 일본에서의 경기도 해야 했는데 그 이후 마무리 훈련을 하고 있다.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로 마무리 훈련을 하는데 대부분 해외 전지 훈련이다.
비즈니스의 일종인 프로팀에서 내년도를 위해 잘해보겠다고 훈련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마는 이상한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프로야구는 12월에 각 부문별 최고 선수를 뽑는 골든 글러브 시상식을 하는데 정작 주인공들이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팀들이 골든 글러브 시상식인 11일이 지나서까지 해외에서 시즌 마무리 훈련을 하는 까닭이다. 또 12월 5일 결혼하는 기아의 홈런타자 최희섭은 신혼여행을 포기하고 훈련지로 떠나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야구를 취재하는 한 기자는 일년 내내 시즌을 치르느라 가족을 소홀히 하며 지냈던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휴식기간인 11월과 12월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며, 만약 프로야구 선수들의 아내들이 이혼요구를 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라는 우려 섞인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다. 2008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마해영 선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로 우려를 제기했다.
“시즌 내내 경기에 투입됐던 선수들을 12월부터 훈련시킨다는 것은 겉치레식 전시행정에 불과하다. 구단은 물론 선수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일년간의 프로야구를 결산하는 축제 같은 성격을 지닌다. 각 부문별 최고의 선수를 뽑고 그에 대해 칭찬하는 날이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골든글러브에 뽑힌다는 것은 평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한 영광이다. 이러한 자신들의 잔치를 내 팽개칠 만큼 훈련을 해야 하는가? 어차피 훈련은 1월부터 동계캠프가 해외로 떠나는 것이 예정되어 있다. 가장 흔한 말로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어야 한다고 한다. 쉬지도 않고 훈련하는 것이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 또 근본적으로 야구는 왜 하는지? 에 대한 회의감도 가질 수 있다. 또 비시즌은 선수들에게 다른 환경에 있도록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사람도 만나고 독서도 하고 여행도 해야 한다. 그래야 야구선수 이후의 삶도 계획해 볼 수 있다. 코치들은 또 무슨 죄인가? 일주일에 6일이 넘는 근무를 하는 코치의 역할은 직장 중에서도 가장 힘든 직장일 듯싶다. 최근 은퇴하고 호주로 떠난 구대성 선수를 보면 가정을 우선시하는 그의 삶의 모습에서 한국 프로야구의 어려운 환경을 떠올리게 한다.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이 바로 SK구단의 김성근 감독이다. 프로야구 감독 중 나이가 가장 많다. 그는 SK감독에 부임하여 강도높은 훈련을 하기로 유명하다. 덕분에 스타플레이어가 많지 않은 팀을 가지고 네 번이나 우승한 성과를 냈다. 따라서 다른 팀의 감독들은 김성근 감독보다 훈련을 적게 한다는 데 대해서 큰 부담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나이가 가장 많은 감독이 가장 열심히 하고 가장 훈련을 많이 시킨다. 심지어 모 구단의 감독은 “우승팀보다 훈련을 적게 해서야 우승팀을 이길 수 있겠는가” 라는 말로 훈련의 당위성을 말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감독의 지시를 받는 선수들의 훈련이 과연 효과적인 훈련이 될 수 있을까? 추신수 선수는 아시안 게임을 마치고 함께 돌아온 정근우 선수가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마무리 훈련중인 일본으로 떠나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결과를 냈으면 내년을 위해서 재충전을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성과를 내기 위해 훈련을 한다는 데 대해서 무어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승을 하고 성과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SK구단은 최근 명문 구단으로 이름이 높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인기가 높지는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결론은 성과지상주의를 주장하는 운영방식에 있다. 성과를 내더라도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행복해야 한다. 단기간의 성과를 지향하는 것도 좋지만 구성원 전체가 행복하고 직업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인터뷰에 보니 김성근 감독은 일년 동안 집에 들어간 날짜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같은 팀에 있는 박경완 선수도 마찬가지다. 이 선수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일년을 고생했으면서도 가족들의 위로도 받지 못하며 야구장에서 힘들게 경기를 했다.
우리 프로야구도 이제 30년이 되어간다. 관중 600만을 돌파했고 스타플레이어도 많이 생겼다. 7관왕을 달성한 이대호나 류현진도 있다. 실력이 미미하여 이름을 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많은 선수들도 있다. 미국에서 성공한 박찬호나 추신수도 있고 일본에서 성공한 임창용, 김태균도 있다. 그들의 성공이 그들만의 성공이 되어서는 안된다. 연봉을 많이 받는 것도 좋고 스타가 되는 것도 좋지만 감독,코치,선수와 그들의 가족들 모두가 행복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최근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우리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이런 모습들이 띈다. 메달을 걸지 못했어도 참여한다는데 큰 의미를 둔 많은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왜 그들이 운동을 열심히 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이제 프로야구도 변해야 한다. 성적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김성근 감독이 변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