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자장면을 파는 중국집이 흔하듯, 일본에서는 걷다가 발에 걸릴 듯이 라멘집이 많다. 매우 상품화되어 있고 종류 또한 수 없다. 전철역사 안에서부터 동네 배달 라멘까지, 심지어 TV에 나온 모 라멘은 프와그라까지 넣어 고객의 시선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민 향수 음식으로 자장면이 등장하듯 라멘은 일본의 국민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자장면과 라멘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중국에서 넘어와 현지토착음식이 되었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은 라멘을 '스프국물에 중국식 면을 넣은 일본음식'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자장면이 중국음식으로부터 기원했지만 한국형 중국 면요리로, 오히려 중국본토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일본 라멘의 어원 중에 하나가 중국북부 면의 한 종류였다는 설이 있다. 라멘(拉面 ラーミェン)의 ‘라(拉)’는 ‘잡아당기다’라는 뜻으로 손으로 늘려서 가늘게 만드는 면의 기법에서 유래되었는데, 그렇다고 현재 일본 라멘이 이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1872년 명치유신 이래 개항이 되면서 항구 중심으로 중국인거리가 생기고 중국음식점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늘면서 일본 라멘이 생기는 기초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단독으로 라멘을 판매하는 것은 니어카라멘부터 시작하였고 1910년에는 최초의 라멘 전문 식당이 생긴 때이기도 하다. 우리도 자장면을 먹으러 중국집에 가서도 짬뽕을 먹을까, 탕수육도 주문할까 라며 여러 음식 중에서 고민을 하듯, 일본의 대중 중화요리집에서도 라멘 이외에 많은 중국음식들이 있다. 반면 전문점라멘은 국물이나 면발, 독특한 영업 방식, 다양한 응용라멘 등 많은 특색을 갖고 있다.
라멘이 중국에서 넘어온 것에 대한 흔적은 용어에도 나타나고 있다. 식당 간판에 종종 ‘시나소바(支那そば)’라고 써 있는 경우가 있다. 처음엔 이런 식당이 소바(메밀국수)를 파는 곳인 줄 알고 라멘이 먹고 싶은 데도 들어가질 못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시나’는 중국을 말하고 ‘소바’는 국수를 말하는 총칭이기에 ‘시나소바’는 중국국수, 즉 라멘을 뜻하는 것이었고 옛날에 흔히 사용되던 단어였다. 지금도 현대적으로 변형된 라멘이 아니라 옛날 방식의 서민 라멘은 ‘시나소바’라고 심심치 않게 불리어지곤 한다. 참고로 한국에서 말하는 일본소바는 엄밀하게 구분할 때는 ‘니혼소바(日本そ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재미 삼아 30-40대 일본남성들을 대상으로 죽기 전에 먹고 싶은 한가지 음식을 말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50%이상의 사람들이 다름 아닌 ‘라멘’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에게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으로 자장면을 손꼽는 사람은 무척 드물텐데 일본인은 라멘을 쉽게 말한 것으로 볼 때, 우리의 된장찌개만큼이나 서민의 삶 속에서 함께 하는 친근한 음식이구나 싶었다.
유명 라멘집에 가면 가볼수록 집집마다 특징이 기발한 경우를 볼 수 있다. 일본에서 라멘을 분류할 때, 면의 굵기, 라멘의 양, 국물의 기름진 정도, 국물의 농도, 이런 네 가지 구분으로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기준의 분류는 서점에 나와 있는 라멘전문서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라멘의 역사가 긴만큼 다양한 라멘을 먹는 것을 업으로 하는 ‘라멘미식가’가 등장했고 ‘라멘전문평론가’ 또는 ‘라멘푸드라이터’가 당당히 활동하는 것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만큼 라멘의 종류도 많다. 분류의 기준을 보면 첨가 조미료에 의해, 육수베이스에 의해, 지역에 따라 그리고 먹는 방식에 따라 나눌 수 있다. 첨가조미료에 의한 분류로는 간장 맛의 ‘소유(醤油)라멘’, 소금으로 맛을 내는 ‘시오(塩)라멘’, 일본 된장 맛의 ‘미소(味噌)라멘’으로 나뉘어진다. 육수베이스에 의한 분류는 백색의 혼탁하고 진한 국물로 돼지뼈를 사용한 돈코쯔(豚骨)라멘, 가쓰오부시와 같은 생선류베이스의 라멘과 우동국물 같은 일본풍 다시 국물에 기름을 가미한 스프로 구분하는데 마지막 일본풍 다시 국물은 대중식당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식이다. 지역에 따른 분류는 수도 없이 많고 미묘한 차이로 갈래가 나뉜다. 그 중에서 일본의 3대 지방 라멘으로 꼽히는 곳은 미소라멘으로 유명한 ‘삿뽀르(札幌)라멘’, 면이 굵고 진한 국물의 ‘키타카타(喜多方)라멘’, 돈코츠의 진한 국물에 꼬불거리지 않는 가는 면의 ‘하카다(博多)라멘’을 꼽는다. 특히 삿뽀르라멘은 많은 체인점이 생기고 인스턴트라멘의 이름으로까지 사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그 외 도쿄라멘은 독특한 간장맛의 라멘 맛으로 대표된다. 먹는 방식에 따라서는 일반적인 ‘국물 라멘’, 소바처럼 진한소스(쯔유)에 면을 적셔먹는 ‘쯔케멘(つけ麺)’, 한국에서도 중국집 문 앞에 ‘중국냉면출시’라는 글귀가 내걸리면 여름이 왔구나 하고 느끼듯 일본에서도 차갑게 먹는 라멘이 있다. 이게 바로 면도, 스프도 차갑고 얼음까지 동동 띄어먹는 ‘히야시(冷やし)라멘’이다.
단순해 보이는 라멘에 얹어지는 고명을 가지고도 많은 일본인들은 심각하게 논의하곤 한다. 지역에 따라 또는 라멘 종류에 따라 고명이 갈리는데, 일반적인 고명의 종류로는 ‘차슈(간장 간이 벤 삶은 돼지고기나 구운 돼지고기를 얇게 썬 것), 멘마(중국산죽순을 발효시킨 것), 삶은 달걀, 숙주, 파, 마늘 등이다. 특히 달걀에서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는다. 생달걀을 쓰는 경우도 있으나 스프의 혼탁함을 막기 위하여 대개 반숙달걀을 사용하는데, 점포마다 부드럽게 삶는 반숙실력에 깊은 인상을 받는 이가 많다.
라멘집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식당 입구의 티켓자판기, 일렬로 나란히 먹는 카운터좌석, 머리에 질끈 수건을 동여맨 기운 센 남자조리사, 많은 남성고객들 등이 연상될 것이다. 특히 라멘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늦은 밤 술 마신 뒤의 마무리 국물음식으로서 역할도 다하기에 주로 남성고객들이 많이 찾는 음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일본 여행시 사전 맛집 정보 없이 맛있는 라멘이 먹고 싶다면, 어느 지역에 가서라도 식사시간에 긴 줄이 늘어 서 있는 곳에 가서 기다렸다 먹는 것이 현명하다. 그런 경우 한국인의 입맛에도 근접하게 맞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초보자라면 소금 맛의 ‘시오라멘’을, 그리고 면발도 선택할 수 있는 곳이라면 ‘가는 면’을 주문하면 좋겠다. 간혹 진한 돈코쯔라멘을 처음 먹고 안맞는 경우에 일본 라멘은 모두 진하고 느글거린다는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있기에 약한 맛부터 라멘맛을 즐기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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