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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10월16일 기사]

 
행복의 비결

 여름의 막바지에 나는 대학병원으로 문병을 갔다.
초로의 환 형님은 언제나처럼 병상에서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충청도 시골에서 관광농원을 경영하다 실패하고 근자에 중국을 오가며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던 그는 보기 드문 휴머니스트였다.
 
오래전에 친형님을 여의였던 나는 그의 인간미에 이끌렸다. 또래도 아닌 손 위 남자에게 형제 같고 친구 같은 정을 느낌은 내게도 복이었다.

전시 야전병원처럼 붐비는 응급실에서 나는 그의 손을 꼭 쥐고 “형님, 희망을 잃지 마세요”라고 위로했다.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그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밥 한 끼를 속 편하게 먹어 봤으면 좋을 텐데 그게 안 되네…”라고 말했다.
 
희망은 그가 아니라 내가 가졌던 것일까? 짧았던 대화가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부활의 희망을 안고 향리에서  영면하는 환 형님을 추석 직전에 찾아 명복을 빌었다.

문병을 갈 때마다 나는 “무엇이 행복일까”를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교도소로 면회를 갈 때에도, 지하철역에서 구걸하는 걸인을 볼 때에도 든다.
 등산로에서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 시비하는 중년의 부부들을 볼 때에도 같은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행복할 때 정작 그 행복을 잘 모른다.
행복은 깨닫지도 못하는 가운데 지나가 버리거나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된다.

경쟁의 일상에서 우리가 삶의 목표로 내걸고 쫓아다니는 것은 대체적으로 합격, 취직, 결혼, 승진, 멋진 승용차와 아름다운 집과 같이 대단한 것들이다. 또 사랑과 돈, 그리고 권력과 명예는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러한 목표들은 일단 이루고 나면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하는 고단함의 연속이다.
반면 건강과 생명, 그리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라 별로 귀한 줄 모르지만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다.

우리네 삶의 궤적들을 반추해 보면, 행복은 그렇게 거창하거나 대단하지 않고 사소하고 진부한 일상 속에 존재한다.
병고로 주야장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 힘으로 걷고 바깥 바람을 쏘이는 일이 행복이다.
장기 수감자에게는 석방 자체가 행복이다.
 
 춥고 배고픈 걸인에게는 등 따뜻하고 배부른 것이 행복이다.
그리 보면 행복이란 완전무결함보다 지루하고 따분하거나 무료한 삶 속에 숨어 있다.

“나는 심심해서 죽노라”는 유서를 남기고 죽은 일본인 작가는 행복하게 죽었을 것이다.
행복은 결실이라기보다 평상심과 같은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수많은 행복을 스치듯 지나 보내면서 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단순히 욕심이 많아서 그럴까,
아니면 행복을 느끼는 심금이 없어서 그럴까?

우수의 실존주의 철학자가 남긴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남과 비교하면서 살기 때문에 불행에 빠진다.
무소유의 가르침대로 세속적인 욕망과 물질적인 욕심을 버릴 수는 있다.
 
그러나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살기란 의외로 어렵다.
우리는 흔히 남의 눈을 의식해 체면을 차리면서 산다지만 남과 비교하는 눈은 실은 내 마음속에 있다.
 
그 눈을 감으면 될 텐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행복의 비결을 알지만 실천하지 못한다.


(출처 : 중앙일보 '삶'의향기/전재경 자연환경국민신탁 대표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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