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 사막을 건너는 것과 더 닮았다
_ 스티브 도나휴

두 명의 제자가 오랜만에 인사를 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이 어려운 시기에 좋은 회사에 합격해서 잘 다니고 있는 고마운 친구들이다. 주말임에도 출장을 다녀올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안부로 시작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이런 저런 고민들로 이어졌다. 결혼 적령기가 되다 보니 연애나 결혼계획 등에 화제가 머물렀고 이어 회사 생활 이야기가 나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직장 내에서 역할을 찾아가는 문제와 향후 진로에 대한 고민이 상당했다. 이제 겨우 2, 3년 차에 불과했지만 이들은 직장인들의 딜레마를 이미 거의 완전하게 체험하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이들을 보내면서 어떤 예감 같은 것이 떠올랐다. 

앞으로 몇 년 후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들은 어떤 중대한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그 중 많은 이들이 몰려가는 편하고 큰 길이 있을 텐데 그 길이 거대한 사막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이들과 앞으로 직장인이 되려는 이들에게 주고 싶은 글이다.



사막을 낙타가 걷는다. 등에는 무거운 짐을 진 채, 그렇게 터덕터덕 걷는다. 넓은 지평선, 시선이 닿는 곳까지 온통 모래언덕뿐이다. 언제부터 사막을 걷고 있었던 것일까? 등을 짓누르는 짐. 하지만 내려놓을 수가 없다. 그저 걷고 또 걷는 것이다. 

직장인들은 왜 이 그림을 볼 때면 격하게 공감을 하는 것일까? 아마도 필자만의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낙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온다. 그것은 단 한번의 실수나 계기로 된 것이 아니다. 물살에 떠내려오듯, 시간과 시간이 모여 그리 된 것이다. 

필자도 샐러리맨으로서 나름 인정받으며 지내던 어느 날 낙타가 된 자신을 발견했다. 목표를 이루고 난 후 성공에 취해 그 후로는 현실을 지켜내는 것에만 골몰했던 것이다. 회사 일이라는 것이 조금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법이나 매일의 일과들에 부지런히 몸을 놀려 보아도 눈을 들어보면 여전히 변한 것이 없는 끝없는 모래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 장면이 변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느낀 순간 필자의 머리 속에 어떤 영상이 떠올랐다. 

누군가 이끄는 대로 그냥 걷고 또 걸어가는 것, 그러다 언젠가 기력이 다하면 뜨거운 모래 위에서 털썩 쓰러지는 것… 그 죽음 위로 모래와 바람과 포식자가 찾아와 덤덤히 엔트로피를 늘려가는 것… 그 가슴 속에 담고 있었던 이야기들만이 가볍게 날아올라 흩어지고… 

직장인으로서의 마지막을 그렇게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필자는 젊음이 끝나가던 무렵,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어렴풋한 정도였지만 가슴 속 담아둔 이야기를 꺼내야 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엔트로피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은 낡고 닳고 흩어진다. 이는 도도한 강물의 흐름과 같다. 오직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그 종착지는 가장 낮은 곳, 즉 아무 것도 없었던 출발점이다. 세상 만물이 이 물살에 실려 내려감에, 생명을 가진 것들 중에도 예외는 없다. 인간 역시 결국은 낡고 닳고 흩어진다. 

하지만 이는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인정하기 싫은 그런 것이다. 거친 물살을 거슬러 몇 번이고 날아오르는 연어들에서 왠지 모를 애틋함이 느껴지는 그런 것? 우린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삶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130년째 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사크라다 파밀리아(성가족교회)는 위대한 건축가 가우디가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낸 웅장한 이야기이다. 그가 설계한 건물들은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하나같이 괴상망측했다. 당연히 무수한 조롱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바르셀로나를 건축의 성지 자리에 오르게 한 것이 바로 그가 세운 일련의 작품들이었음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구엘성당, 구엘공원, 카사 밀라… 그 으뜸이 바로 사크라다 파밀리아이다. 

그의 여생은 모두 이 건물에 바쳐졌다.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가우디. 하지만 적어도 이것이 지어지는 동안 그는 엔트로피라는 잔인한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셈이리라. 머릿속에서 이미 세워본 이 경이로운 건물... 주위의 모든 것들이 낡고 닳고 흩어지는 가운데 수많은 이들의 손을 빌어 이 땅 위에 앞으로도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자기 본래의  모습을 찾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엔트로피가 점령할 수 없는 유일한 곳이 있다. 바로 우리의 의식이다. 신경세포들이 연결되면서 지식의 구조물이 끝없이 지어지는 그곳. 그러므로 깨어있는 의식은 엔트로피를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본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시들어가는 삶에 맞설 수 있다. 잠시 짐을 내려 놓자.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보자. 그리고 지평선 끝까지 가득 메운 모래언덕을 바라보자. 그리고 마음 속에 묻어두었던 한 마디를 꺼내 보자.

“나는 이 사막에 동의할 수 없다.” 

이미 우린 느끼고 있었다. 삶은 결코 사막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약간의 무기력함과 게으름, 약간의 망설임과 움츠러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이었을 것이다. 현실과 잠시 타협한다는 생각으로 몇 발자국 디딘 것 뿐이다. 그렇게 몇 번 더 이어지다가 시간이 흘렀고 결국 이렇게 거대한 사막의 한 가운데에까지 이르른 것이리라.  

다시 되돌릴 것이다. 지금 있는 곳부터 바꿔나갈 것이다. 더 이상 남들이 몰려가는 곳으로 낙타처럼 걸어가지 않을 것이다. 냉소를 내려놓고 새로운 활력으로 일할 것이다. 다른 각도로 문제에 접근하고 타성에 젖은 분위기를 바꿔나가는 변화의 중심이 되어볼 것이다. 만약 그래도 조직을 변화시킬 수 없고 스스로도 끝없는 사막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땐 미련 없이 지금의 자리를 떠나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엔트로피의 강물이 시계 초침의 속도로 흐른다. 그 물살을 느끼고 다시 한번 힘껏 차오를 것이다. 지느러미 끝까지 뻗어가는 팽팽한 기운을 다시 한번 느껴볼 것이다.

“나는 이 사막에 동의할 수 없다.”

이 한 마디로 삶은 다시 물살을 거슬러 오르게 되었다. 낡고 닳고 흩어지기만 했던 삶이 다시 무언가를 쌓아 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낙타의 삶에서 깨어난다.

글. 기업인재연구소 대표 김태진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