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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에 올린 글인데 한 번 웃으시라고 올려봅니다.

제목. 퀴즈 아카데미와 고구마 사건

대학교 3학년 때 군대 갈까를 고민하던 시절 TV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퀴즈 아카데미라는 대학생 퀴즈 프로그램이 인기였는데 마음도 싱숭생숭하던 차에 어쩌다 보니 거기에 나가게 되었다.

같은 과 동기 두 녀석이 자신들의 이름을 팔아 '현이와 오기'라는 팀명으로 나간 적이 있었고 그때 처음으로 MBC방송국을 구경했었다. 한 시간 분량을 녹화하기 위해 4시간 이상을 방청석에서 앉아 있어야 했었는데 막상 진행과정을 낱낱이 보고나니 '별것 아니다'라는 생각과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현이와 오기'는 예선은 통과했지만 본선에서 물을 먹었다. 방청석 출연료 등을 모아서 뒷풀이를 할 때 낙방한 친구들 기분 풀어준다고 한마디 날렸는데 그것이 씨가 되고 말았다. "짜식들, 내가 담에 1승해서 상품 다주께."

군대가려고 마음 먹었던 즈음 추억거리를 찾아 헤매다 동기 한 녀석과 의기투합이 되어 방송국에 가서 퀴즈 아카데미 예비시험을 치렀다.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바로 다음주 녹화가 잡혔다. 상식책 공부도 하고 신문도 보고... 해야 했는데 사실 마음이 들떠 제대로 공부하지는 못했다. 워낙 풀어져 지내던 시절이기도 했고...

녹화날. 친구들 다 방청석에 앉혀두고 팀이름 '낮선 시간속으로'가 카메라 앞에 섰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결선에서 떨어졌다. 당시 커플로 나와 1승하고 유명해졌던 '천사와 악마'와 붙었는데 결국 실력부족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들의 2승 제물이 되었고 '현이와 오기'에게 약속했던 선물은 결국 주지 못했다.

재미는 본선에서 있었다. 예선은 생각보다 쉽게 통과했고 본선에서 경상도 사나이들을 상대팀으로 맞았다. 먼저 스피드 퀴즈를 하게 되었는데 팀에서 한 명이 문제를 설명하면 다른 한 명이 답을 맞추는 게임이었다. 상황별로 몇 가지 약속 - 예를 들어 글자수 등 - 을 준비해간 '낯선 시간속으로'는 나름 선전해서 많은 문제를 맞췄다. 상대가 긴장할 정도로 괜찮은 점수였다. 

경상도 사나이들은 스피드 퀴즈를 시작할 때부터 마음이 약간 조급해진 상태였는데, 서로 손발이 한두 번 어긋나자 마음이 한층 조급해졌고 점점 심한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 한 문제라도 더 맞추기 위해 문제 설명하는 친구가 단어를 설명했다.

- 감자와 비슷하게 생깄는데 겨울에 구황작물로 많이 먹는 것은?

설명이 완벽했다. 답은 3글자 고구마. 그런데 답으로 이런 단어가 튀어나왔다.

- 고메!

사회자도 약간 당황했다.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죠."

너무나 당연한 대답을 다시 요구하자. 경상도 사나이는 다급한 목소리로 두번을 연달아 외쳤다.

- 고메! 고메!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오면서 경상도 사나이는 한층 더 당황하고... 사회자와 PD가 사인을 주고 받는데 아마도 답을 맞다고 할 것인가를 상의하는 중인 것 같았다. "아, 아쉽네요.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번엔 문제를 설명한 경상도 사나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힌트를 주기 위해 외쳤다.

- 세자로, 세자로!

그러자 그 사나이 고개를 갸웃하며 이번엔 약간 자신감을 잃은 채 답을 했는데 시간 종료 공소리와 함께 나온 그 대답이 모두를 스러지게 만들었다.

...

- 물고메?! (물고구마)

그날 뒷풀이에서 모인 친구들은 내가 출연했던 자체는 잊은 듯 그 경상도 사나이 이야기 뿐이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 때 TV에 나간 것 자체가 참 즐거웠던 추억인데 강렬한 악센트까지 주었던 그 경상도 사나이...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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