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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서 스타일을 찾아라.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사진과 그림을 자주 비교하곤 한다. 사진이 있기 전에 그림이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림은 내면의 것을 그려내는 반면, 사진은 찍힌 사진 속에 그가 있다. 이 둘은 표현 도구도 다르다. 사진은 카메라라는 도구를 사용하지만, 그림은 손으로 직접 그린다. 그림은 한 복판부터 그리는 반면 사진은 가장자리에 선을 그으며 찍어 낸다. 즉 사진은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 사진 찍기의 시작이다. 프레임이란 틀이다. 그 틀은 우리를 고민스럽게 만들곤 한다. 틀은 깨야 할 때도 있고, 사진 찍기처럼 틀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삼삼오오 짝을 짓는 사람들처럼  그 프레임도 끼리끼리 모여든다. 그 프레임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청하곤 한다. 그 안에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를 담아서 뻐꾸기를 날리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가르친다. 그러나 메커니즘에 중점을 두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열정이 생기면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찍는 이의 의도를 중요시 여긴다. 의도란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이며,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하고자하는 의지이다. 아이들에게 적성을 찾아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처럼 여겨지듯이, 선생인 나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스타일을 찾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의무감처럼 항상 달라붙어 있다. 가르치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과제를 주면 일주일동안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오면, 그 멋진 사진을 감상하는 일이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가치관이 여러 번 바뀌듯이 스타일 또한 바뀌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에 집중하여 사진을 찍는 것은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며 사진에 흥미를 느끼는 지름길이다.

 

류 웅렬 작.

몽환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익명적 표현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의 뒷모습에 그의 진성성이 담겨 있다. 앞모습은 상대편에게 비춰질 것을 미리 알고 있기에 방어적이나 뒷모습은 불가능하다. 구름이라는 이상향을 향해 걸어가는 익명, 서로 대화를 나누며 정겨워하는 익명이 또 다른 익명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표정을 읽지 않으나 뒷모습 속에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상대의 의미를 말로 하지 않고 사진의 음영을 통해 표현한다류 웅렬은 자신이 전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극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재현 작.

빛은 사진을 찍는 원천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태어나서 현재까지 보고 느끼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렌즈를 통해서 그것을 다루는 것은 저마다의 특권은 아니다. 빛이 춤을 추고 있고, 대화를 청하고 있다. 그것을 잡아내는 숙련된 마술사처럼, 멀리에서 희미하게 말을 걸어오는가 하며 프리즘을 통해서 새어나온 빛을 잡아내고 있다. 은은한 파스텔 톤의 음영이 가라앉은 마음을 술렁이게 하며, 속내를 드러내게 한다. 아마도 그는 명랑하고 사람들과 어우러져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빛은 항상 존재하나, 모두가 그것을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재현은 그것을 재현해 내는데 기발하다.

김 수영작.

뻔한 일상을 뻔하지 않게 말하려 하고 있다. 하늘 배경에 같은 색깔의 지붕을 과감하게 접근시켜 표현했다. 작가는 'different'에 익숙해야 한다. 사진 찍는 사람들은 대낮을 피한다. 그것의 익숙함 때문이다. 사진은 관심을 받기위한 어린 아이의 옹알거림이다. 대낮의 익숙함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미흡하다. 그러나 김 수영은 낯설게 하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골목길을 더욱 좁게 만들어 누구나 들어갈 수 없는, 그 길에 익숙한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자 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시인의 마음처럼 자신만의 시각으로 다시 프레임 해야 하는 것이다

김 성희 작.

물속에 하늘이 보인다. 물인지 하늘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잎이 반영되어 날개를 달아 놓았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를 그렸다. 물체가 만들어낸 그림자는 자신만의 영역에 대한 줄긋기이다. 땅바닥에 비춰진 그림자는 그것의 원형을 만들었고, 물속에 비춰진 현실처럼 보이는 환영은 그림자와 대조적이다. 김 성희는 섬세한 세상 보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철학적 논리를 삶 속에서 끌어내어 사람들의 공감을 유도하고 있는 수다쟁이이다.

신 민경작.

세상은 둘로 나뉜다.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그러나 신민경의 눈에는 안 보일 수 있는 세상을 찾아 나선다. 채도가 높은 물감을 절제하며 그레이 톤으로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먹으로 산수화를 그려낸 것처럼, 신 민경의 눈에 비친 세상은 심오하다. 얇게 보이는 이파리와 가지가 손짓한다. 길가에 고인 물속에서 찰나를 만나고 있다. 하루 이틀 내지는 몇 시간 밖에 머물 수 있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세상을 포착하는 눈썰미가 있다. 그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윤 경훈작.

노란 단풍이 병들어 있다. 항아리 속의 세상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라, 항아리 속의 세상이다. 세상을 품은 한정된 공간속에서 윤경훈만의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노랗게 물든 단풍이 처절하리라 만큼 병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색의 단풍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만들어내며 거친 여름을 지내온 단풍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자기만의 철학으로 단순한 사진 속의 이야기마저도 사람들의 공감을 받아내기에 충분하다.

 

사람이 눈이 자신의 얼굴을 못 보는 것처럼, 사진을 찍는 자신도 자신의 스타일을 찾기는 쉽지 않다. 바둑의 훈수처럼 옆에서 던진 한마디에 그의 사진인생에 방향을 제시해 줄 것으로 믿는다. 상상의 날개를 펴고 생각을 표현하는 카메라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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