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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의 톡톡톡 7월의 손님은 박월선 님입니다.

지난 6월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3가지를 동영상에 담는 것이었는데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해주신 박월선 님을 모셨습니다.

원래 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시리라 기대했었는데요. 아무래도 자신의 이야기를 동영상에 담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지요. 그러다 보니 총감독, 메인PD, 제작PD를 제외하고 두 분이 완주를 해내셨습니다. 바로 박월선 님과 김언화 님인데요. 먼저 두분의 노고에 박수를 드리겠습니다.

- 동영상 프로젝트, 먼저 고생 많으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요.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도전하게 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마음은 40라운드에 가입할 때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앞으로 저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데 다시 없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아무래도 고생 많이 되셨죠? 총 3번 모임을 갖고 촬영까지 마쳤는데요. 어떠셨습니까?

네 힘들었습니다. 3번 모임마다 어려웠지만 마지막에 촬영은 정신 없이 지나가는 통에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구요. 힘들었던 건 처음 두번의 시간이었습니다.

첫 번째 때는 테마를 잡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마인드맵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요. 마인드맵으로 생각을 정리해 보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묶여지는 중요한 포인트들을 3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때는 연습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는 숙제가 있었는데요. 이때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영상으로 자기 모습을 보는 게 본래 어려운 일이지만 숙제다 보니 봐야 했는데요. 생각만큼 자연스럽게 되지 않아서 처음엔 좌절했습니다. 그래도 여러번 반복을 하면서 나도 모르고 있던 여러가지 않좋은 습관들을 발견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두 번째 모임 이후에도 매일같이 연습을 했지만 사실 동영상 촬영 직전까지도 만족스럽지가 않았습니다. 원래 이런 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보여주기가 더 어색한 법인데요. 어려워 하자 남편이 도와주기로 하고는 하는 말이, "교수법 가르치는 선생 맞냐" 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조금 욱해서 나름 변명 성격의 말을 열심히 했는데요. 그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갑자기 그러는 겁니다. "지금 말하는 것처럼 해. 아주 좋은 걸?" 그 때 자연스럽다는 게 뭔지 감을 잡았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실전 촬영에서는 조금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영상에 담아내신 내용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합니다. 동영상에 담아내신 지난 삶의 이야기를 보면서 교사가 되신 이후의 삶이 두 부분으로 나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니요?

네,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어린시절 제 삶은 제가 원하는 삶을 살았다기 보다는 주변에 저를 맞춰간 측면이 많았습니다. 교사의 꿈을 갖게 된 이유 중에도 저 먼저 집안 형편을 고려했던 측면도 있었으니까요. 교사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사실 즐거움은 방학 때 훌쩍 떠난 여행에서 찾았던 것 같습니다. 방학만 되면 세계 곳곳을 다녔구요. 기간은 짧아졌지만 그건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 혹시 다니신 여행 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인도 여행 중에 눈병이 걸렸습니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붓는 전염병이었습니다. 렌즈를 꼈었는데 렌즈를 잠깐 벗어둔 곳에서 오염이 된 것입니다. 일행에게 옮기지 않으려고 주의하면서 다 나아가던 중에 네팔로 건너가게 되었는데 운 없게도 일행 중 한 명이 제가 쓰던 포크를 만져서 옮게 되었고 그 사람을 통해 네팔의 한 마을 전체에 눈병이 걸려서 신문에도 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일화들도 많지만 함께 여행을 하는 이들과의 즐거운 추억들이 정말 많습니다.

- 교사가 되신 후 전반 최고의 낙으로는 여행을 꼽아야 겠네요. 그러다 어떤 변화의 계기가 있었던 거죠?

그러던 제가 교사로서의 삶을 다시 돌이켜보고 새로운 방향을 잡게 된 계기는 2008년 4학년 담임을 맡을 때였습니다. 그 때까지 부족한 교사였지만 절대 체벌만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키며 교사생활을 해왔었는데, 도저히 그 다짐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학급 아이들 중에 통제가 불가능한 아이들이 여럿 있었고, 절도, 기물파손, 학교폭력까지 사건이 커졌습니다.  그 때 담임교사로서 저의 한계를 많이 느꼈구요. 그 이후론 담임보다는 한두 과목만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과전담 교사가 되어 수업 중심의 교사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교과전담 교사로서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지에 좀더 집중해서 연구하고 실천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교수법이라는 분야에 전문성을 쌓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계획이나 동영상 프로젝트 이후에 하고 계신 생각을 듣겠습니다.

저의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앞서 교수법에 대한 생각도 말씀드렸지만 아직 제 미래의 분야를 확정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구요. 여전히 치열한 모색중이라고 말씀드려야 할 듯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40라운드에 합류한 건 참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3월 브랜드 컨셉을 잡는 프로젝트나 이번 동영상 프로젝트 모두 제 생각을 진전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니까요.

- 혹시 질문 있으시면 질문을 받아보겠습니다.

- (백 작가) 교사는 이 시대 최고의 직업으로 손꼽히고 있고 너도나도 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박월선 님은 그 생활에 안주하거나 편안한 삶을 누리려는 것 보다는 늘 도전하고 변화하려는 생각을 하시는 듯 합니다. 그건 본인의 성향인가요?

- 아무래도 그런 면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동기와 관련한 심리검사를 했었는데요. 자아성찰 동기가 매우 강하게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씀해 주신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 네, 어려운 자리인데도 이번 40라운드 프로젝트에 참여하시면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진솔하고 재미있게 풀어주신 박월선 님께 박수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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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반항 청소녀였다.
인생을 바꾼 3가지 사건을 이야기하는 첫 스타트는 그녀의 학창시절이었다.
"중학교 때 공부를 엄청 안했어요. 선생님이 시키면 무조건 반대로 하고 샘하고 싸우는 그런애였죠. 숙제 안해서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고등하교 때 지각해서 손바닥 한 번 맞은 것이 학창시절 최대의 수치로 기억하는 나는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안맞기 위해서라도 대충 해가면 안댔나? 일단 맞으면 아프자나."
"몰라요 그냥 싫었어요. 선생님이 먼가를 하지마, 하면 저는 왜냐고 물었거든요. 근데 무조건 하지말래요. 그럼 하는거에요. 저는."
오, 그녀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좀더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그러다 그녀도 고교에 진학해야 했다. 공부를 안 한 그녀 실업계를 가느냐의 기로. 과감히 우겨서 인문계로 진학했다. 
고교로 진학해 첫날 반장선거를 하는데 성적순대로 예닐곱명이 후보로 선출됐고, 
가나다 순으로 지정되는 출석부 상 'ㄱ'이 제일 먼저 나온바 1번으로 서기를 맡게 되었다. 교실 앞으로 나온 반장 후보들과 정은양. 
"얜 아냐." 
담임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이 아이는 반장 후보 즉 순위 안에 든 성적 좋은 모범생 이 아니라는것을 지적했고,
이 말 한마디가 그녀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더구나 1학년 담임 선생은 매우 솔직한 자로 이른바 마방진 전략을 적절히 펼칠줄 아는 고도의 심리술사였다.
30여명의 정원에서 9명의 순위를 뽑아 한가운데 앉혀놓고 특별한 관심과 예쁨을 주는 거였다.
좀 유치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 마방진에 그녀도 걸려들었다.

 



 

 

 

얜 아냐 사건 이후 공부를 조금 하고 첫 중간고사에 저 핑크빛 자리에 앉고 부터는 공부를 잘하면 좋은거구나 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 공부와는 전혀 관계없이 사느라 저런 좋은 점은 느낄수조차 없었다니 굉장한 극적변화라 할수 있겠다.

그때부터 참으로 재밌는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회상한다. 
독거노인을 위한 밑반찬 만들기, 질서 지키기 캠페인 등등 다양한 봉사활동과 선도부 활동까지. 
무척 바쁘고 즐겁게 살았단다. 내신으로 수시까지 입학했다니 진정 모범생다운 학창시절이다.

그러다 대학 1학년  캘리포니아 오리곤 대학에서 대학 문화 교류 3주 과정을 마치고 나머지 2주동안 캘리포니아 곳곳을 여행했다.
세계가 넓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 다음해 휴학을 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를 떠났다.
향수병, 공부, 방황을 다 거쳐 돈벌고 여행가고 하기를 일년. 주키니 , 바질, 사과. 딸기. 포도농장 등 안가본 농장 없다는 그녀. 
막판에는 농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친구들과 친해서 매일 저녁 맛있는 밥먹고 지내느라 돌아올때는 오히려 10kg 찔 정도였다. 
혼자서 내 선택에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을 깨닫고 어렴풋하게 홀로서기의 맛을 본다.
지금도 후배들을 만나면 대학에서 스펙만 쌓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며 휴학하며 적극적으로 권한다.  

그 후 대학 특강으로 지금의 멘토 조연심 대표를 만났다.
공대생으로 컴퓨터와 씨름만 하며 살아온 그녀에게 이런 소프트한 멘토강좌는 큰 충격이 아닐수 없었다. 
자기 이름으로 산다는 것에 큰 자극을 받고 취업만이 능사는 아니란것을 다시금 절감.
열심히 조대표를 쫒아다니다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그 후의 그녀의 생활은 우리가 지켜보는 대로 온라인브랜딩디렉터 강정은으로서의 삶이다.

누구나 한번씩 일생의 사건들이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작은 말 한마디일 수 있고 정말 크나큰 충격일 수도 있다.  
어느날 듣게 된 말 한마디로부터 시작된 그녀의 변화.
17살 이후로 양껏 욕심부려가며 알차게 살아온 그녀의 이야기가 즐거웠다. 
오늘의 그녀를 있게한 키워드 3가지는 무엇일까?
이정도 힌트라면 다들 예감했을거라 믿는다. 그럼 5월 16일 오후 7시에 모여서 들어보기로 하자.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PS. 앞으로 남은 박현진의 쇼쇼쇼를 통해 허심탄회한 과거를 꺼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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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을 해봤어요. 내 인생의 이벤트 세가지. 오늘 새벽에...
특유의 코믹스러운 말투로 던진 첫마디다. 
오늘따라 더 꼬들하게 웨이브진 퍼머머리가 새벽의 고뇌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쇼를 맡았다. 나는 PD역할을 한다.  
쇼의 형식은 인생의 3가지 사건과 그로 인한 변화. 교훈, 그리고 현재의 영향이 미치기까지다.
생방송 쇼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사전에 무대에 설 배우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그 쇼를 펼치기 전 백승휴 작가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해서 찾았다.
미팅 전에 세가지 이야기를 생각해 오시라 했다. 
가볍게 만나는 자리여도 세가지 사건을 꼽기까지는 그간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필요했을것이다.  




▲ 토킹하면서 떠오르고 정리되는 생각들을 메모하랴, 와중에 걸려오는 전화 받으랴 바쁘다 바빠.



그의 전공은 놀랍게도 전자공학

사진을 매개로 활동하는 그의 전공은 의외로 전자공학!!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더니 4년간 벽을 보고 살았다고 한다. 하하. 
왜 적성도 안맞는 과를 갔냐고 했더니 취직 잘된다고 해서였단다. 
그때 깨달은 진리가 그 당시 잘되는 것은 선택하지 말자는 것이었단다. 
그러다 고모부가 운영하는 사진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접했고 즐거웠다는 그. 
알음알음 결혼식 사진 등의 부업을 했는데 졸업무렵 통장에 무려 2천만원이 쌓여있었다고.



즐거운 일을 찾아 즐기고 공부하자 

인생 별거 없다. 한 순간에 훅간다. 그러니 내가 좋은 일을 하자. 가치를 높이면 돈은 한방에 또 올 수 있다.  
내가 일을 선택하는 기준은 돈이 아닌 가치다. 즐거움에 가치를 둔다. 소모적인 일이면 안한다. 
공부가 가치가 부여된다면. 나만이 느낄수 있다는거.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프로이트의 심리학, 수집미학 이라는 책이다.

취미삼아 결혼식, 명함 사진을 찍던 사진가가 지금은
중년 여성들의 자신감을 깨우기도 하고
사춘기 소년의 인성를 키우는 전천후 선생이기도 하고
잃어버린 장년의 꿈을 끄집어 내기도 한다. 
사진을 매개로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 하고 있다. 



해보자 스스로 왕따
나도 왕따를 당해봤지만, 자아가 강한 사람들은 한번쯤 스스로 왕따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왕따로 외로우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아의 탐구가 이루어진다. 
자아를 깊게 탐구하면서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분야를 찾아 연구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바로 분산투자가 되겠다. 
한 분야를 넘어 다른 여러 분야를 접촉하게 되면 각분야의 사람들이 동시에 나를 왕따 시킬 수는 없으니까.
인생의 지혜란 결국 혼자이며 외롭다는걸 아는거다. 왕따 경험은 그래서 소중하다. 외로움에 대해 미리 예방주사를 맞는 셈이니까. 


 
사춘기의 자아찾기와 현재의 공간으로 이동하여 살아낸 삶, 그리고 미래의 시간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쇼의 제목을 정했다.
 

돈키호테의 서울유랑기 

그가 풀어낼 세가지 인생의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4월 18일 7시 30분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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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격월간 [여성(7,8월호)]지에  이숙자 대통령 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 위원장님과의 인터뷰를 옮겨 놓은 것이다.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숙자 위원장님께 집단지성네트워크 더포티라운드 블로그를 통해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감성의 리더십으로 이끄는 지방분권화시대


지난해 12월 2일, 대통령 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새롭게 발족되면서 전 성신여대 이숙자 총장이 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이숙자 위원장은 정치학을 전공한 학계의 실력파로, 전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과 자매사이로 알려지면서 한
때 자매총장으로 주목 받기도 했다. 부드러움 속에 담긴 강한 카리스마로 지방분권촉진위원회를 이끌어가는 이숙자 위원장을 만나
지방분권을 통한
국가경쟁력을 높여 나갈 소신을 들어보았다.    - 대담 : 방미영(작가. 드림엔터기획 대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출판공보위원)  -  




1. 안녕하십니까? 작년 12월, 지방분권촉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한지 여러 달이 지났는데 처음 취임할 때와 지금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는지요?


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벌써 9개월이 지났습니다. 조금은 낯선 업무였지만 위원회에 대한 각계의 깊은 관심과 요구를 알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12차례의 본위원회, 38차례의 실무위, 15차례의 TF 활동 등을 통해 중앙권한의 지방이양, 기관위임사무 정비 등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지방이 자생력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기반을 갖추어 나감으로써, 지방의 발전이 곧 국가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위원장 임기가 약 1년 3개월 남았습니다. 현장을 방문해 보니 지방분권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확실해 졌다고 할까요. 여러 가지 도전과 난제도 많지만 이를 잘 극복하여 남은 임기 동안 지방분권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나갈 생각입니다. 많이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지방분권촉진위원회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신다면?


지방분권촉진위원회는 「지방분권촉진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 지방분권의 방향과 비전, 전략과 과제를 설정하고 그 추진을 총괄 ∙ 조정 ∙ 심의해나가는 대통령소속 자문기구입니다. 작년 12월 2일 위원회 출범 이후 분야별로 4개 실무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방분권 종합실행계획> 수립 등 기본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설립 취지에 부합할 수 있도록 맡은 바 책임을 다 해 나갈 계획입니다.

 

                                                              

 

3. 행정안전부가 최근 지방자치제도를 제약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1,128개의 기관위임사무를 전면 폐지한다는 발표를 한 것으로 아는데 지방분권촉진위원회의 현안 과제는 무엇입니까?


 

기관위임사무는 지방자치단체장이 국가에서 위임받아 처리하는 사무로서 중앙의 포괄적 감독을 받고 자치입법권이 제약됨으로 지방의 자주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위원회에서는 행정안전부와 긴밀히 협조하여 1,128개 기관위임사무를 폐지한 뒤 국가와 자치사무로 이분화 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이러한 이분화 과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사무 영역(가칭 법정수임사무)을 신설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 중입니다. 이 외에도 중앙행정권한 지방이양, 특별지방행정기관 정비, 지방재정 확충 방안 마련 등 주요 분권과제의 성과 창출을 위해 노력 중입니다.

 

4.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과는 자매지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두 분이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두 분이 외모도 많이 닮았는데요...


저희 자매가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사고와 인생관까지 공유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를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눌 뿐만 아니라, 사회현상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면서 밤새는 줄 모를 때가 많았으니까요. 대범함과 섬세함 그리고 동시에 탁월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언니가 단순한 언니가 아니라 저에겐 롤∙모델이자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포용력과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언니가 좋아 무척 따랐습니다.

 

5.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의 각오는 어떠했습니까? 어떤 비전을 가지고 출국했으며, 지금 그 꿈을 이루었는지요?


제가 학창시절을 보낸 1960년대 말은, 남북한 분단으로 인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념대결, 제 3세계의 등장, 냉전체제가 해빙무드로 가는 등, 국내외적으로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재학 중, 총학생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소용돌이치는 정치현장도 목격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정치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여 국내외 정세를 이해하고 나라에 기여도 하고 싶었습니다. 국제정치이론을 공부하면서 지역으로는 당시 북한, 동유럽 등 공산권 국가를 선택했습니다. 귀국 후, 불모지나 다름없던 동유럽 분야에 대해 정책 과제, 보고서 등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공산권 붕괴 시까지 정책제언을 했습니다. 후학도 양성하면서 제 나름대로 나라를 위해 작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꿈의 절반 정도는 이루었다고 할까요?(웃음)


 

6. 일생에 가장 영향을 준 책, 그리고 사람은 누구입니까?


『성경』
입니다. 성경속의 인물 중, 이방인으로 이집트 총리를 지냈던 요셉을 통해 혹독한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품고 극복해 나가는 지혜와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일찍이 제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정하는 데 나침반의 역할을 해 준 고전이고, 스티븐 코비의 『효율적인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존 맥스웰의 『긍정의 힘』은 제 자신을 성찰하고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다시 읽는 책들입니다.

 

7. 여성 단체들은 아직도 여성이 사회 진출하는 걸림돌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며, 여성지도자의 리더십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변화와 혁신에는 장애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데이빗 브링클리 말처럼, ‘성공하는 사람은 남들이 자신에게 던지는 벽돌로 튼튼한 기초를 쌓는’ 심정으로 걸림돌을 점진적으로 치워나가야 합니다. 21세기 여성리더십의 모델은 부드러움, 친화력, 세심한 배려와 헌신 등 여성적 특성을 근간으로 하는 ‘섬김 리더십’입니다. 섬기는 리더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요소는 청지기 의식, 비전 제시, 동기 부여, 열정, 솔선수범과 책임감, 경청하는 자세, 인간적인 배려, 임파워먼트 및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입니다. 섬기는 리더는 구성원을 먼저 배려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열린 사고와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합니다. 봉사와 헌신으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권위를 통해 영향력이 형성될 때 진정한 리더십이 발휘됩니다.

아울러 칭찬과 격려는 구성원들의 자신감과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기폭제가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습니다. 구성원을 존중하고 높여주면, 일할 때에 훨씬 더 잘하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사실도 경험으로 터득하여 자주 실천하고 있습니다.

 




8. 정치학을 공부하고 한국정치학회 부회장과 외무부 정책자문 위원, 통일부 통일정책평가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21세기 북한』,『동유럽·소련관계와 개혁정치』,『헝가리·유고슬라비아』,『공산주의 이론과 실제』등의 저서들을 펴내셨으며, 현재는 성신여대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국정에 참여하고 계신데, 그 바쁜 일정을 어떻게 소화하시며 건강관리는 어떤 방법으로 하고 있으신지요?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효율적인 시간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닷 새정도는 매일 한 시간씩 걷지요. 걸으면서 사색도 하게 되니 심신이 함께 건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9. 미래사회의 국가 경쟁력은 무엇이며,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미래 국가경쟁력은 행정부분에서 보면 불필요한 규제 철폐 및 행정 효율성 제고, 산업부분의 상생적인 노사 간 상생협력, 경제부문에서 적극적인 시장개방과 투자 유치 확대 등일 것입니다. 특히, 21C 지식정보화, 글로벌 시대에 있어 행정환경이 변화되면서 국가 간 관계뿐만 아니라 지역 간 경쟁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부가 모든 역할을 도맡아 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주민들의 참여와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국가브랜드는 해외에서 우리 국가와 국민을 대하는 태도나 우리 제품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가브랜드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Anholt 국가브랜드 지수(NBI)순위는 33위(‘08, 50개국 중)로 매우 취약한 상황입니다. 한국의 브랜드로는 김치, 불고기와 같은 음식과 한복, 한글을 들 수 있으며, 또한 금속활자 등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전통 문화재 등을 우리의 자랑거리로 내 세울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정보통신, 과학기술 분야는 한국 이미지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반면, 정치 환경, 노사갈등 등은 부정적 이미지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10. 마지막으로 21세기 여성의 역할과 여성단체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21세기는 지식정보화 사회로 창의적인 의사결정과 유연한 사고가 요구되는 사회입니다. 섬세한 감성과 창의성을 지닌 여성인력의 활용이 가장 강력한 경쟁력입니다. 우리나라도 여성의 고학력화와 전문 경력 추구 경향이 강화되면서 여성지도층으로 진입하는 여성의 수가 급격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고급여성인력의 활용은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한 필수 요건입니다. 여성들 스스로 섬기는 리더로서의 성품과 역량을 갖추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여 우리나라의 블루오션 시대를 열어 가는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회 각계 각층의 뒷받침도 필요합니다.

 아울러 지방분권의 강화도 우리나라가 선진일류국가로 가는 관문입니다. 지방분권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관계기관, 학계, 시민단체 등과의 폭넓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합니다. 위원회에서는 보다 많은 대외활동과 홍보를 통해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알려 나갈 계획입니다. 우리 여성분들과 여성단체에서도 지방분권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부탁드리며 앞으로 많은 협력을 당부드립니다. <끝>



* 참고로 위의 사진은 이숙자 대통령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 위원장님께서 제공해주신 사진이다.


Writer Profile
방미영  집단지성 네트워크 '더포티라운드 The 40 Round'

작가, 드림엔터기획 대표,  한국방송예술진흥원 겸임교수입니다. 
기자, KBS 구성작가 등 풍부한 현장 경험과 문화예술행정경영 박사 과정의 이론적 토대로 문화예술콘텐츠를 기획, 개발하고 있으며, 이명박대통령을 비롯한 명사들의 자서전 집필로 개인 브랜드를 구축해드리고 있습니다. 특히 집단지성네트워크 40Round와 함께 선진화사회의 주축을 이루고자 합니다. http://artb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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