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2009 1 16일 라구아디아 공항에서 뉴욕으로 155명이 승객을 싣고 가던 US에어웨이 1549편 항공편에서는 갑작스런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 지금 이 비행기는 허드슨강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충격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 비행기는 뉴욕 맨해튼 상공의 캐나다 거위떼와 충돌했고 양쪽 엔진이 작동 불능상태에 빠졌다. 잠시 후 얼음이 언 허드슨강에 비행기가 불시착하게 되었는데 단 한 명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언론은 이 사고를 허드슨강의 기적이라고 일컬었다. 이 소식은 즉시 전 세계로 퍼져 2만 시간의 비행 경력을 지닌 전직 공군 조종사였던 57세의 기장 체슬리 슐렌버거는 영웅으로 묘사되었다.

긴박했던 순간에 조종사의 오랜 경험과 기지가 이 비행기를 사고 없이 불시착하게 되었으며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에 나오는 일만시간의 법칙에 해당하는 좋은 사례로 회자되기도 했다. 결국 한 개인의 뛰어난 경험과 능력이 이러한 결과를 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일의 당사자인 슐렌버거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누차 이렇게 말했다. “전 지금 당장 진실을 바로잡고 싶습니다. 이번 일은 팀원들이 이뤄낸 것입니다.” 이 놀라운 결과는 그의 개인적 역량뿐 아니라 뛰어난 팀워크와 이런 상황에서 해야 할 절차들을 철저하게 실행했기 때문에 얻은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와 함께한 부조종사와 승무원들은 철저하게 규칙대로 실행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인 이륙과정에서부터 그들은 정해진 절차대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이륙장치를 점검하고 승객들을 안내했다. 갑작스런 기러기와의 충돌로 양쪽 엔진이 정지하자 그동안 조종간을 잡고 있던 부기장은 기장에게 조종간을 넘기면서 정해진 멘트를 했다. 기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비행기에 대해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정해진 규칙 때문이었다.

이후 일어나는 일련의 기장과 부기장 그리고 승무원들의 침착한 행동은 정해진 규칙(이 책에서는 체크리스트라 표현되는)을 그대로 이행했을 뿐이었다. 급박한 사고에 대비하여 항공기 제작사와 항공사, 기타 비행과 관련한 사람들이 다양한 상황대처 방법을 정해 두었고 그것들을 수많은 훈련을 통해 익혔던 습관대로 시행했던 것이다.

의학계, 특히 수술실에서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수술이 진행된다고 한다. 수술을 직접 시행하는 외과의사가 모든 것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취의사와 여러 명의 간호사가 수술실에서 함께 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의 협업의 과정이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실수가 일어나며 감염을 통해서 환자들이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 각 지역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형병원에서는 조금 어려운 병을 가진 환자에게 대형병원에 가도록 유도한다. 자신이 가진 장비와 협력할 수 있는 인력을 가지고는 복잡하고 어려운 병의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발표된 내용에 의하면 2006년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서울대병원과 부산대병원등 전국 10개 국립대 병원에서 발생한 의료사고 건수는 185건에 달했다고 한다. 연도별로 의료사고 발생 건수를 보면 2006 71, 2007 60, 2008 54건 등으로 집계됐다. 최근 연도에 가까워 올수록 발생건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의료사고로 알려지지 않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만큼 복잡하고 까다로운 수술이나 치료해야 할 병이 많아서 의사의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료 부문의 개선에 사용될 수 있는 것이 체크리스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외과의사로 있으면서 체크리스트의 유용성을 연구해 왔다. 실제로 자신이 시행했던 외과수술에서 한번의 실수로 환자가 사망할 뻔한 경우를 겪으면서 어떻게 하면 보다 유용성 있는 체크리스트를 만들 수 있을지 점검했다. 자신이 만든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자신의 병원에서 실제로 시행해 보고,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병원들에게 사용해 보라고 권고하는 과정을 거쳐서 하나씩 완성시켜 왔다.

이러한 체크리스트의 개념이 적확히 정착된 업종은 항공업계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에 항공기가 발명된 이후 비행기술은 날로 발전해 왔다. 또한 비행기의 조종 장치도 점점 복잡해져서 조종사가 알고 있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아졌다. 슐렌버거 기장처럼 다년간 경력을 가진 비행사도 최신형 여객기를 몰기 위해서는 엄청난 훈련을 쌓아야 하며, 이번에 사고가 난 US에어웨이에 함께 탑승했던 부기장도 오랜 경력을 가진 747기장이었지만 최신형 A320에서는 부기장이었던 것이다.

항공업계뿐만 아니라 건설업계에서는 복잡하고 거대한 건축물들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고난이도의 설계가 이루어지고 공기를 맞추고 설계도에 의한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전체 프로세스에 대한 수시체크는 일상화 되어있다. 잘못된 시공을 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공기를 맞추기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업무 진행상황을 체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개선 방법론이라 하더라도 도입을 하려고 하면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특히 오랫동안 수련을 거쳐서 자격을 얻게 되는 의사들의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간섭 받는 것을 싫어하게 되어 있다. 베테랑 의사일수록 자신의 경험의 크기를 믿기 때문이다. 일을 잘 하는 전문가일수록 자신이 어떤 규칙에 매인다는 것을 싫어한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러한 저항의 과정을 거쳐서 많은 곳에 체크리스트의 방법론을 전파했다. 실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특히 수술실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고 자기역할이 분명해짐으로써 수술과정에서 놓치고 지나가는 일이 줄었기 때문에서 성과가 난 것이라는 결론을 이 책에서는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술실에서는 어떤 체크리스트를 쓰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공하고 있는 체크리스트의 기본 개념은 아주 좋다. 일이 복잡할수록 한번 잘못된 길을 가면 피해가 더 클수록 일해나가는 과정에서 하나씩 체크해 나가다 보면 피해를 최소화 하거나 제대로 된 일을 해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꼭 의학분야, 항공분야, 건설분야에만 적용된다고 볼 필요는 없을 듯 하다. 투자업계에서도 투자성과가 높은 사람들은 이러한 체크리스트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내 업무에 맞는 체크리스트를 한번 만들어 보자. 너무 쉽게 만들면 부실한 결과가 있을 것이고 너무 어렵게 하면 지켜지지 않을 것이니까, 여러 번의 고민을 통해서 만들게 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한번 잘 만든 체크리스트가 돈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싶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