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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새로운 세상이 존재하는 걸까? 이러한 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흥미롭기고, 따분하기도 할 것이다. 대답은 그때 그때 달라요이다. 이유는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느냐에 따라서도 다르기때문이다. 충분한 공감을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흥미진진할 것이니 말이다. 우리에게 생각이란 생각이상으로 흥미롭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속에서 10여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선물을 받은 것 같은 영감들이 나를 흥겹게 한다. 그것의 근본은 생각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생각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현재 우리는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사진가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예전에 필름을 끼우고 사진을 찍고, 그리고 맡긴다음에 잘 나왔을까를 고민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찍은 다음에 마음에 들지 않은면 delete key 하나면 없애 버리고 다시 찍으면 된다. 물론 이것은 디지털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으로만 말하는 것이다. 필름값이 아까워서 한 컷 한 컷 떨면서 찍었던 시간들을 안타까웠던 시절로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푸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그 시절의 애뜻하면서 새로운 설렘같은 것은 긍정적이나 창조적인 차원에서, 나의 스타일상으로는 더욱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올림픽공원을 학생들과 같이 출사를 가서 찍었던 나의 생각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냥 나의 생각일 뿐이다. 



청색과 붉은 색의 대비, 샤머니즘을 상징이라도 하듯 현란하게 나를 유혹하고 있다. 언젠가 살다간 사람들의 형상이 그들의 삶을 기리기라도 하듯 한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물론 그것을 해석하는 이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나 그것이 예술의 시스템 아니던가?

항상 자연은 2차적 작업을 통하여 원작자의 생각을 본인의 마음대로 바꿔놓곤 한다. 그 주역은 바로 빛이다. 빛의 방향에 따라서, 빛의 색깔에 따라서 극명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상의 이치이다. 세상은 보고자 하는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꼴리는대로 봐라이다. 분홍과 붉은 빛이 야릇하게 섞여있는 모습들은 항상 4차원의 누군가와 만날 듯한 충동을 일으키곤 한다.


올림픽 공원 근처에 멋진 교회가 있다. 위풍당당함이 구세주와 겨루기라도 하듯 당당하게 서있다. 아마도 하늘의 뜻을 피뢰침처럼 받아 내고자 하는 의도를 건축가가 표현한 듯하다. 하늘 색과 어우러진 그 형상에다가 올림픽공원의 조각물을 조화롭게 만들었다. 

신기하기도 하지. 과거의 여인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백그라운드의 이미지에 따라 종교적인 색체를 띤다. 마치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사람의 시각이 연관고리를 가지고 생각해 내기 때문이리라.

왕따 나무이다. 그러나 이 광경은 결코 왕따 스럽지가 않다. 넓은 공간을 소유하고 다른 이에게 그 공간을 임대해주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인다. 하늘과 땅의 경계에서 유유자적한 나무의 여유를 표현하고자 했다.

왜 이들은 카메라를 들고 이곳에 왔는가? 무얼 찍으려는 것인가? 추운 날씨에 옷을 겹겹이 껴입고  앉아 두 눈을 부릎뜨고 세상의 적군과 마주하고 앉은 모습이다. 세상은 사람끼리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그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했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달리 보인다. 다르게 봐라.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이기도 하다. 남과 다른 세상을 바라보기와 그것을 행하기. 그것을 블루오션이라한다. 그것만이 세상이 나를 관심있게 바라보는 임팩이다. 


-칼바람 흉흉하던 어느 봄날 성북구 평생교육원 군사들을 이끌고 올림픽 공원 정벌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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