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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이 리더를 말하다


다산 정약용이 지은 목민심서
에는 지금의 지도자와 같은 목민관이 백성들의 신뢰를 얻어 권위를 갖게 하는 비법이 나온다.

馭衆之道  威信而已 (어중지도 위신이이) : 무리가 나를 따르게 하는 법은 권위와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威生於廉  信生於忠 (위생어렴 신생어충) : 권위는 청렴에서 생기고 신뢰는 성실에서 나온다.
忠而能廉  斯可以服衆矣 (충이능렴 사가이복중의) : 성실하며서 능히 청렴하면 그것이 바로 무리가 따르게 하는 비법이다.

한국지도자 아카데미에서 공부한지도 벌써 11달이 지나갔다. 이번 달에는 롯데쇼핑(주) 이철우 대표이사가 와서 [열린 가슴으로 소통하라]라는 주제를 가지고 리더십 강의를 해 주었다.  21세기 소통의 경영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열정적으로  칠판에 한자를 멋있게 써 주셨는데 그 내용이 바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모임이나 조직을 만들고 생명력이 길게 하기 위해 신뢰가 필요하다고 다들 말을 하는데 그것이 어디서 기인하는지를 마음에 와닿게 정의한 목민심서를 보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철우 대표님이 말하는 자신의 성공비결

1) 열정이고
2) 긍정적 마인드이고
3) 적극적이며
4) 낙관적인 성격이라고 하셨다.


강의 후 협력업체와의 상생정책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솔직한 답변을 하셨다.
"순수한 相生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순서의 차이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롯데쇼핑은 2000여개의 협력업체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으며 협력업체의 이득을 먼저 챙기고 그 후 롯데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고 하였다. 상생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서번트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

또다른 리더십의 모델인 GWP와 서번트리더십에 대해서는 엘테크리더십개발원 이관응 원장님이 강의를 해 주었다.

GWP(Great Work Place)를 만들고자 하는 포춘 100대기업 중 다반수 기업은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일하기 좋은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뢰형성이 필수적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데는 다음가 같은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

         Credibility / Respect / Fairnes / Pride / Fun

상사나 경영진과 구성원 간에는 신뢰가 밑바탕에 있어야 하고 업부/조직과  구성원간에는 자부심이 있어야 하며 동료와는 재미가 있어야 훌륭한 일터가 완성되는 것이다. 특히 상사와의 신뢰구축이 전제되지 않으면 다른 것이 갖춰지더라도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게 된다. 결국 좋은 일터를 만드는 가장 좋은 비법은 바로 상사가 서번트리더십으로 발휘해 직원과의 관계에 신회를 형성하는 것이다.

신뢰가 조직의 성과에 미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신뢰 -->  커뮤니케이션 -->  정보공유의 질 --> 협력의 질 --> High Performance

리더십은 둘 이상의 관계에서 업무를 추진할 때 발생하는 영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서번트리더라는 말은 [The Servant as Leader] 1970년 로버트 그린리프(1904~1990)가 주창하였다.

"가장 큰 물은 가장 아래로 흐른다. 가장 큰 지도자는 가장 밑에 있다. 즉 자세를 낮춰야 한다" 이는 서번트리더십의 본질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말이다.

인디언마을의 창조신화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디언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4개의 본질은 불, 물, 바람 그리고 신뢰다.
불을 잃어버리게 되면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을 보면 되찾을 수 있고
물을 잃어버렸을 때는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잔잔하게 흐르는 것을 들으면 찾을 수 있고
바람을 잃어버렸을 때는 나뭇잎이 흔들릴 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신뢰를 잃어버리면 영원히 찾을 수 없다.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가 선명하게 기억되는 말이다.

환경변화와 창조적 리더십에 대해 충남대 경영학과  송계충 박사님이 하신 강의내용을 정리해 본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역사는 언제나 도전과 응전이 있다"

환경은 변화하고 그에 대처하는 것이 바로 생존하는 법이다.  즉 변화와 혁신은 피할 수 없는 명제다.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들은 우리가 그 문제들을 발생시킨 그 당시에 갖고 있던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새로운 사고방식(패러다임)을 가져야만 해결된다.

혁신에는 기술적 혁신과 비지니스 혁신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최고의 기술만이 시장에서 먹힐 거라 믿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더 높은 기술, 더 좋은 기술력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시장은 언제나 냉정하다. 때론 최고의 기술이 아니라 적절한 기술이 통할 때가 있다.

김연아와 아사다마오의 예를 들어보자

아사다마오는 피겨의 최고기술인 트리플악셀을 구사할 줄 안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기술만을 고집한다. 그러다 실수를 하고 감점을 받는다.
김연아는 트리플악셀 기술을 포기하고 그 아래기술을 완벽하게 연습한다. 그 결과 가산점을 챙긴다. 거기다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자신만의 무기인 표정연기를 구사한다. 결국 시장은 적절한 기술을 구사하는 김연아 편이다.


이것이 바로 비지니스 혁신이다. 시장이 원하는 혁신을 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리더의 역할이다.

회사나 개인이나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시장이 요구하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장의 요구를 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뉴욕시에는 노숙자문제가 심각했다. 노숙자수용소에 잡아다놓으면 도망가고 또 잡아다 놓으면 또다시 도망가고 해서 그 비용이 노숙자 1인당 20만불정도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그래서 컨설팅을 받게 되었다. 컨설팅 팀은 직접 노숙자들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왜 도망가는 겁니까?"
그들의 요구는 명확했고 그 요구를 들어주면서 골칫거리였던 뉴욕시의 노숙자문제는 해결이 가능해졌다.

첫째, 우리는 노숙자이긴 하지만 잠자는 곳은 일정하다. 그러나 수용소에는 매번 잠자리가 바뀐다. 우리는 고정숙소를 원한다.
둘째, 우리에게도 개인 소유물이 있다. 그러나 수용소에는 개인의 사물을 중시하지 않는다. 사물함을 만들어주고 열쇄를 우리에게 달라.
셋째, 우리를 위해 해주는 6개월간의 꽃꽂이,제과제빵기술, 도배 교육등의 교육은 사실 6일이면 족하다. 우리가 왜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를 알수 있도록 하는 인문학(문학,역사, 철학) 공부를 가르쳐 달라.


이렇게 노숙자들이 요구하는 사항을 들어주자 더이상 그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이를 벤치마킹해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런 고급교육과정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노숙자들도 인문학을 배운다. 그 결과 인생이 바뀌어 사업가로 변신에 성공한 사람도 생겨났다. 

이런 것이 바로 기업가적 정부의 모습이고 수혜자인 고객의 요구대로 만들어진 창의적 결과다.

결국 리더와 관리자는 변화에 대응하는 모습에서 차이가 난다.
관리자는 기존의 것을 답습할 뿐이고 리더는 변화를 예측하고 창조하며 경쟁을 선도해 나간다.

램프를 만들어 낸 것은 어둠이었고
나침반을 만들어 낸 것은 안개였고
탐험을 하게 만든 것은 배고픔이었다.
그리고 일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의기소침한 나날들이 필요했다
                     -- 빅토르 위고 --



리더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대응하고 창조하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Writer Profile
조연심  집단지성 네트워크 '더포티라운드 The 40 Round'

프로가 되게하는 아주 특별한 방법 M리더십, "여자, 아름다움을 넘어 세상의 중심에 서라" 출간. 지식소통 전문가로서 개인브랜드 구축을 위해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영향력, 그 중심이고 픈 로비스트랍니다. 
 www.mu-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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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한 시대에 나서 태평한 시대에 죽으니 천지간에 굽어보고 쳐다보아도 호연히 홀로 부끄러운 것이 없다. 이것은 내 손자가 미칠 바가 아니다. 주상의 은총을 만나 간()하면 행하시고 말하면 들어주시었으니(諫行言聽), 죽어도 한이 없다(세종21년 재상 허조)

 

무엇이 이토록 기쁜 마무리를 할 수 있게 했을까?
신하로서 섬기는 주군에게 죽음을 앞두고 이와 같이 말 할 수 있다는 것은 군신 모두에게 복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결과는 군주와 신하간의 소통(
疏通) 방식이 어떠했는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세종이 재위에 오르고 나서 회의시간에 다음과 같은 불만을 내비친다.


아직 과감한 말로 면전에서 쟁간(爭諫)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으며

또 말하는 것이 매우 절실, 강직하지 않다….

중론을 반대하여 논란(論難)하는 자가 없다

 

결국 직언하지 않으며 민감한 사안들을 회피하고 대세추종의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는 의미이다.
선대왕인 태종시대의 엄중함을 겪은 신하들로서는 당연한 분위기일지 몰라도 세종의 이러한 지적은 남다르지 않은가! 편안함을 버리고 올바름을 추구한 것이다.

 


세종은 새로운 회의풍토를 만들기 시작한다.

 

첫째, 자주 불러서 묻고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의논하자’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잘 의논하여 아뢰라라는 말을 세종은 즐겨 사용했다. 때로는 백성을 직접 찾아가서 묻기도 했다. 당시의 군주로서는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하들이 ,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만 읊을 수 없는 상황 아니겠는가! 당연히 자신의 주관과 의견을 지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분명한 입장정리를 할 만한 공부와 상황파악이 선결되어야 함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것이 더 적극적이고 활발한 토론의 장으로 발전하게 된 배경이다.

 

둘째는 먼저 수긍하고 경청하되 이어서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그 뜻이 좋다’ ‘네 말이 아름답다’ ‘경의 말이 매우 좋다(卿言甚嘉)’와 같이 말한다. 그리고 의견이 다를 때 그러나로 이어지며 자신의 의견을 내 놓는다. 고약해의 강무비판에 대해서도 경의 말이 매우 좋도다. 그러나 강무는 유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세종은 좋은 말을 듣고도 거절하는 것은 임금의 도리가 아닐 듯 하다. 하지만 큰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말 한마디만으로도 신하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신뢰의 토대를 놓은 것이다.

 

셋째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며 평정심을 유지했다.

사실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왕이 신하들의 면전에서 수시로 화를 내는 것은 매우 큰 약점이 될 수 있다. 역사속에는 가까운 측근들의 배반이 몇 마디 말로 상처를 입어 모반을 키운 예가 얼마든지 있다. 세종은 군신간의 회의 및 토론상황을 유지하고 발전하는 것을 개인의 감정표현보다 우위에 둔 것이 분명하다. ()하는 신하 입장에서 수시로 화를 내며 언로를 막는 군주에게 계속 간언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넷째, 실사구시(實事求是)형 회의를 주도했다.

토론을 위한 토론, 현학의 경쟁으로 흐르기 쉬운 회의를 실행을 위한 결론을 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고전의 인용으로 의논을 만들기도 하고, 이념논쟁을 원천차단하기도 했다. 군신간에 대결국면이 만들어지면 왕에게 세 번 간해서 듣지 않으면 벼슬을 버리고 떠난다(三諫不聽則去)’라는 논어의 구절을 인용해 국면전환을 꾀하거나 무릇 배우는 자들이 스스로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대들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혐의쩍게 여기지 말라라는 위로의 말을 던지기도 했다.

 


이러한 회의를 주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이러한 문제들에 노출되는데 당시의 세종도 마찬가지였던 듯 하다. 형식적인 절차로서의 회의, 너무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으며 현학적인 표현만 일삼으며 발언을 독차지 하는 사람, 최고결정권자의 의견에 무조건 동조하려는 태도, 참석자들간의 의견차이로 인한 감정적인 대립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군주의 노력과 지혜는 특별히 중요한 사안이다.

쟁간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적절한 언어를 사용하며 사안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신하들을 독려하고 또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 가는 신하의 말에 힘을 실어주며 반대의견을 경청하는 일관된 모습 등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회의분위기를 통해 조선시대 최고의 회의장면으로 기록된 파저강토벌 대논쟁은 그 결정판이다.


세종즉위 원년의 대마도정벌의 실패사례를 일깨우며 세종 14년 여연지역의 여진족 침범소식에 파저강 토벌 대논쟁은 시작된다.

3단계로 이루어진 토론은 먼저 중국에 보고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재위 14 12 9일부터 21일까지 12일간 이루어지고 결국 중국황제에게 보고할 것를 결정한다.


이후 두번째 논의는 토벌을 실제로 감행할 것인가 란 주제로 재위 151 11일부터 19일까지 9일간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실질수행자일 수 밖에 없는 최윤덕 장군의 반대를 찬성으로 변화시키고 직접 토벌작전을 주도하도록 힘을 실어 준다.

반대하던 신하가 찬성으로, 그것도 진심으로 돌아서게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에게 모든 임무와 책임을 맡기는 일 또한 특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벌의 시기와 방법에 대한 토론이 재위 15(1433) 2 15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진다. 이때는 지속적인 반대론자인 허조의 입장을 존중하며 집단적 사고의 위험에 빠지지 않는 점검과 검토의 세밀한 전략을 다루게 된다. 이러한 결과로 파저강 토벌작전은 대승을 거두게 된다. 혹자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조선판 갈리아 전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세종식 회의에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있었다.


1
원칙 : 충분한 토론(숙의:熟議)과 전적인 일임(전장:專掌)

2원칙 : 토론 중 좋은 의견이 나오면 바로 힘 실어주기(:황희 말대로 하라)

3원칙 : 집단사고로 인한 착각의 함정 피하기(:허조의 비판에 귀 기울여라)

 

참고로 집단사고 또는 집단적 착각이 발생하면 지도자로서 치명적인 결단을 내리게 한다.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는 이유는 집단의 단결력이 강할 경우, 정책결정과정에 소외된 인원이 많을 경우, 사안에 대한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의지가 강할 경우 집단환상에 사로잡히기 쉽다. 미국의 베트남참전이 좋은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위험을 경계한 인물이 허조이다. ‘말라깽이 송골매 재상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정책의 음지, 예상 문제점, 최악의 경우 등을 조목조목 짚으며 정책의 일괄타결이 가져오는 위험을 방지한 인물이다. 이러한 사람이 끼어있는 회의는 진행하기가 어려워진다. 세종은 허조는 고집불통이야라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중용하며 경청했고 그에게 깊은 신뢰를 보였다. ‘보수와 대쪽의 상징인 허조는 세종시대를 이끄는데 없어서는 안될 명재상이었다. 그 임금에 그 신하라고 할 만한 관계이다.

 

오늘날 세종식 회의를 다음과 같이 구성해본다면 어떨까?

 

의제결정 : 최고결정권자(세종)

아이디어 제공자 3(김종서, 조말생, 최윤덕)

비판자 2(논리적 비판-허조, 감정적 비판-고약해)

요약정리 : 황희

회의내용기록 : 우사관

회의 분위기 등 관찰기록: 좌사관

 

 

 

千歲之致  始於一刻不差  庶績之熙  由於寸陰之無曠

(천세지치 시어일각부차 서적지희 유어촌음지무광)

 

천 년의 긴 세월도 일각의 어긋남 없음에서 비롯되고

모든 공적의 빛남은 촌음을 헛되게 하지 않음에서 말미암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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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어느 자전거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 따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저마다 좋은 자전거를 적당한 값에 사기위해 분주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주고객인 그 경매장 맨 앞자리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고, 소년의 손에는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소년은 아침 일찍 나온 듯 초조한 얼굴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경매가 시작되었고, 소년은 볼 것도 없다는 듯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고 "5달러요!"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곧 옆에서 누군가 "20달러!" 하고 외쳤고, 그  20달러를 부른 사람에게 첫번째 자전거는 낙찰되었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달러는 어림도 없이 15달러나 20달러,  어떤 것은 그 이상의 가격에 팔려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경매사는 안타까운 마음에 슬쩍 말을 건넸습니다.

"꼬마야, 자전거를 사고 싶거든 20달러나 30달러쯤 값을 부르거라."

"하지만 아저씨, 제가 가진 돈이라곤 전부 이것 뿐이에요."

"그 돈으론 절대로 자전거를 살 수 없단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돈을 더 달라고 하려무나."

"안돼요. 우리 아빤 실직당했고, 엄만 아파서 돈을 보태 주실 수가 없어요.

하나밖에 없는 동생한테 꼭 자전거를 사가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소년은 아쉬운 듯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경매는 계속되었고 소년은 자전거를 사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제일 먼저 5달러를 외쳤고,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소년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 날의 마지막 자전거. 이 자전거는 그 날 나온 상품 중 가장 좋은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경매를 고대했었습니다.

"자, 최종 경매에 들어갑니다. 이 제품을 사실 분은 값을 불러 주십시오."



경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소년은 풀죽은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역시 손을 들고 5달러를 외쳤습니다.

아주 힘없고 작은 목소리였습니다.

순간 경매가 모두 끝난 듯 경매장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다른 값을 부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5달러요. 더 없습니까?

다섯을 셀 동안 아무도 없으면 이 자전거는 어린 신사의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팔짱을 낀 채 경매사와 소년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5… 4… 3… 2… 1." "와 ~ ~ 아!!"


마침내 소년에게 자전거가 낙찰되었다는 경매사의 말이 떨어졌고, 소년은 손에 쥔 꼬깃꼬깃한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경매사 앞에 내 놓았습니다.

순간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소년을 향해 일제히 박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이 자전거를 받게 된 동생은 형의 마음을 알았었는지 비가 오나 눈이오나 매일 자전거를 탔다고 합니다.

이 동생이 바로 사이클을 타고 알프스산맥과 피레네산맥을 넘으면서 프랑스 도로를 일주하는  투르 드 프랑스대회에서 최초로 6연패를 달성한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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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言)과 일(事)을 엮어내는 ‘경연(經筵)’

회의(會議)는 길어지면 회의(懷疑)가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런데 세종은 그 회의(會議)를 창조회의로 승화시킨다. 그 특별한 무대가 경연(經筵)이다. 이곳에서 국정토론을 이끌었다.

경연은 고전(經)을 놓고 공부하며 현안을 풀어가는 독특한 회의(筵)
였다.
국왕은 현명한 신하들에게 배우고 왕은 신하들에게 현안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바로 이곳에서 말과 일이 엮인다.
공부만 하면 이론으로 끝나고 일에 대한 회의만 하면 근본에 대한 성찰이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말과 일이 엮이는 회의방식은 바로 이 두가지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세종은 말하는 것에 대해 ‘절실(切實)하고 강직(强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절실함은 반드시 필요한 말을 가려 하는 것이고 강직한 말은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신하들은 분위기에 편승하여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때 명확한 입장정리는 왕의 판단을 돕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이런 절실 강직함이 경연을 통해 경전(經典)의 이론과 융합(融合)하여 창조(創造)적 일을 추진하는 바탕이 된다.

“어떻게 하면 선비로 하여금 들뜨고 화려한 것(浮華)만 좋아하는 버릇을 버리게 할 수 있을까?”


2. 세종의 통치교과서 ‘대학연의’

맹자의 대학(大學)과 관련한 책은 총 5권이라 한다.

본책 대학(大學), 대학연의(演義), 대한연의부, 대학혹문(惑問), 대학강어(講語)로 알려져 있다.
이중 대학연의는 송나라 진덕수가 대학의 체제에 맞추어 역사적 사례를 덧붙여 살을 입힌 책으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는 치세서(治世書)라 할 수 있다. 너무 유명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말의 원전이 대학이다. 대학연의가 세종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경연에서 3번이나 교재로 활용하며 강독하게 했다.


대학연의는 세종의 정치철학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중심에 있다.
시인발정(施仁發政)이 출발이었다면 그 궁극에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있는 것이다.


동시에 국가경영의 요체가 압축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라고 태조에게 조준이 건의했다.

그 가운데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국왕의 9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수신(修身) 2. 존현(尊賢) 3. 친친(親親) 4. 경대신(敬大臣) 5. 체군신(體君臣)
6. 자서민(子庶民) 7. 래백공(來百工) 8. 회원인(懷遠人) 9. 회제후(懷諸侯)


또한 세종의 언중유골(言中有骨)은 대학에서 인용하기도 했다.
 
‘들짐승이 아무리 빠져 달아나도 사냥꾼은 반드시 잡고 만다. 그 짐승이 험한 곳으로만 내달리며 넘어져 죽게 될것은 생각지 않으니 지극히 어리석다 이를 수 밖에 없다’ 상왕 태종에게 아부하며 장인인 심온일파를 제거하려는 박은등을 겨냥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초장에서는 의(疑)와 의(義)로 경학에 대한 깊고 옅음을 보고 종장에서는 대책(對策)으로 그 사람의 포부를 본다”-
변계량의 과거시험 방식의 기준

 

3. 그리고 지식경영을 통한 사례들

말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왕의 말이 처음 나올때는 실(絲) 같으나 그 말이 외부에 나가면 거문고줄과 같고
임금의 말이 거문고줄과 같으나 그말이 외부에 시행되면 상여줄과 같다.



하나 덧붙인다면

백지보다 나을때 글을 쓰고 침묵보다 나을때 말을 하라.

살벌한 말이로다. ㅎㅎ


여조묘장의(予助苗長矣) - 벼이삭이 빨리자라도록 뽑아주다.

지금 이시대 모든분야에서 조장의 처세가 득세하고 있다. 즉시 즉각 바로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 같다. 그 중에도 백년대계라 할 교육의 조장(助長)을 염려한다. 현대의 ‘조장교육(助長敎育)’의 염려와 대안에 대해 의논(議論)이 필요하다.


현명한 군주와 신하의 관계에서 아첨과 칭찬, 직언과 조언을 듣는 방법은 있다.

1.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면책특권(license)을 주라
2. 오직 군주가 하문하는 국정사안에 대해서만 말하라.
3. 군주는 호 불호의 모든사안에 대해 끝까지 인내를 가지고 경청(敬聽)하라.
4. 최종판단은 군주가 내려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것을 세종은 실천에 옮겼다.


세종의 순행속 이야기

경남 울주군의 선비와 우연히 만나 응구첩대(應口輒對)한 후 과거에서 낸 답안이 장원을 했다는데 다음과 같다.
내용이 야시시 하다. 이 내용이 진짜로 과거답안인지는 확인불가다.

抱兒私娼弄未休(포아사창농미휴)
半含嬌態半含羞(반함교태반함수)
低聲暗聞相思否(저상암문상사부)
手正金簪小點頭(수정금잠소점두)

님 끌어안고 사창에서 밤새워 즐기는데
부끄러워 고개 떨구며 교태를 부리네
낮은소리 속삭임 서로 주고 받으니
머리끝 금비녀 만지며 미소짓네


임금노릇을 어렵게 여기다.

‘대개 일을 쉽게 여기고 하면 성공하지 못하나 그 일을 어렵게 여겨서 하는 이는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니 너는 그것에 힘쓰라’ 


즉 다스리는 것을 어렵게 여겨 신중하게 하면 성공한다는 말이다.

 然非知之艱 行之惟艱(연비지지간 행지유간)

이를 아는것이 어려움이 아니라 이를 실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한상경의 직언이 임금태종에게 고맙게 들린다.
결국 세종은 어렵게 하는 정치를 실천했다.


반드시 읽고 외워 마음과 몸에 가두어 두어야 할 어록이 있다.

凡事專治 則無不成(범사전치 즉무불성)

범사에 온 마음을 다해 다스리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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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 제목이다.
여성은 본래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어있다.
그것은 본능적이랄 만큼 원초적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넘어서란다. 아름다움, 그곳이 목적지가 아님을 깨달으란다.
맞다. 남성이 영역확보의 투쟁을 넘어서야 하듯이 여성은 아름다움을 넘어서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평행 아닌 평행선이다.
알 것 같다가도 모르겠고 모르지만 너무 끌리는 그런 양성간의 반복된 만남과 뒤돌아섬은 불가사의다.
그런데 요즘은 여성의 역할이 무척 강화됐다.


백년전만해도 소비는 악덕이었다. 이제는 소비가 사회경제를 지탱하는 미덕이자 핵심활동이 되었다.
이 소비를 주도하는 이들이 여성이다. 사실 가정을 가진 사람들 중 가정경제의 80% 이상은 여성의 결정하에 소비가 이루어진다. 이 수치도 아주 최소치로 잡았다. 거의 90%를 넘는다. 집도, 차도, 적금도, 외식도 모두 여성의 주문대로 움직인다. 처음에는 나만 그런가 했지만 알고 보니 남들도 거의 대부분 그런다고 고백한다.


남녀평등? 그거 이미 오래전에 물 건너간 얘기다. 지금은 누가 뭐래도 여성상위 시대다.
지금 남성들이 조금이라도 미래를 보장받으려면 단박에 여성편에 붙어야 한다.
여성의 주장에 옳다고 박수쳐야 한다. 고달프지 않으려면 말이다.


여성은 미래사회의 주도성(性)이다. 무엇보다 중심이 되는 각종 현안들이 여성들에 가깝다.
교육, 건강, 환경, 가족, 소비, 재테크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과 통찰력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여성특유의 보살핌과 조화, 그리고 네트워킹능력까지 갖추었다. 웹2.0은 그 인프라가 될 것이다.
이제 아름다움을 넘어서라고 한다. 그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3가지 리더십을 제시하며 아름다움(본연의 에고) 너머의 세상을 준비하라고 한다.


먼저 묻혀있어 발휘되지 않은 여성성의 리더십을 꺼내 무장하라 하고 남성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라 한다. 결국은 여성의 특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적극적 장점경영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그 여성성에 기초한 리더십은 남자들의 전유물인 정복하고 뛰어넘고자 하는 세상이 더 이상 없는 이때에 다듬고 보살피며 회복시키는 과제로 꽃피게 됨이 명백하다. 황폐해진 세상에 단비가 되고 먼지 나는 흙에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되라는 말이다. 지금 절실한 문제이다.


그리고 게으르지 말고, 열등감 갖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고 계발해서 전문성을 갖추라고 조언한다. 네트워킹의 폭과 질을 넓혀서 시너지를 만들라는 말을 곁들인다. 이제 더 이상 산사에서 고시공부 하듯 파대는 시대는 지났다. 조금씩 거들어서 결국 완성을 만드는 협업의 시대가 오는 이때 여성의 소통능력은 분명 엄청난 시너지의 창구가 될 것이다. 소통능력은 시너지의 핵심이고 이 핵심을 여성이 쥐고 있다. 참고로 남자는 하루 700단어가 한계용량이지만 여성은 2000단어를 사용해야 암 안 걸린단다. 누가 소통에 유리할지는 뻔한데 이것을 생산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남자들은 시어(詩語)들에 익숙해야 필적할 수 있다. 한 단어에 수많은 은유를 담아야 하니 말이다.


또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을 강화해서 미다스의 손이 아닌 마음을 갖추라고 한다. 무서운 주문이다. 세상의 절반은 여자라지만 아직은 세상의 절반 이상의 파워를 남자가 쥐고 있는데 이 사람들의 마음을 쥐고 흔들라는 주문이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미 이불아래 송사에 영향 받은 역사가 이제는 백주에도 미다스의 마음들에 부딪게 되었으니 게임 끝이다. 남자의 알량한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다만 기대함은 크다.


그동안 정복이란 파괴적 언어와 환상에 길들여진 우리는 파먹고, 깍아 내며, 베어내 왔다. 그러나 그 자리에 상생의 나무, 희망의 새싹을 여성들의 손으로 심기를 기대한다. 나는 밭 갈고, 물 나르고, 움막 치는 힘든 일을 해야 할 테니!


남자! 정복한 뒤에 여성을 초대하라. 다만 아름다움을 뛰어넘은 여자를!




Writer Profile
김태균  집단지성 네트워크 '더포티라운드 The 40 Round'

사람답게 사는것과 행복한 성공을 위해 자신을 찿아가는 여정을 고민함. 내일을 위해 오늘을 성실히 경영해야할 경영자로서 1인기업과 브랜드를 만들 자기경영플래너!
주니어리더십센터 및 미래형커리큘럼연구소 소장, 에너지큐브 이사
저서:지혜의 숲에서 길을 찾다,굿바이 딜레마. http://dreamerchan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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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역사소설을 읽듯 했다. 동시에 사실에 충실하여 더욱 실감나는 현장에 다녀온 느낌이다. 당대와 후대의 인물이 현장에서 그리고 기록을 통해 바라본 세종은 분명 실록밖으로 행차하여 지금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듯 하다. 덧붙여 ‘내가 바라본 세종과 명신들’을 한편 이어 쓰는 심정으로 후기를 적어본다.


세종은 주어진 소명(숙명)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최선을 다한 왕이다. 소명이 주어진다는 것은 한편으로 축복이다.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찾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죽은 범부들이 부지기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세종은 주어진 사명을 분명히 인식했다. 권력의 정점에서 휘두르고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역사적 소임을 분명히 인식한 왕이었다. 이에 반해 양녕은 그 ‘주어진’소명‘의 본분을 이해하지도 충실하지도 못한이의 표상이다.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스스로 그 소명을 회피한 것일까? 나에게 주어진 소명의 절실함이 과연 어떠한지를 되물어 볼 일이다.


태종은 ‘정권만 있고 국가는 없던’ 상황에서 아버지의 건국을 돕고 이를 이어받았다. 아니 쟁취해 냈다. 그리고 그는 국가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정리했다. 방법은 2순위였다. 그것이 폭력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 내는 것을 국가창업기의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사명은 시간의 굴레속에서 새로운 역할로 창조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한 것이리라. 그가 있던 시대의 사명과 오늘날 국가지도자의 사명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된 것은 시대적 소명을 명확히 인지해 내는 것이 최고 지도자의 첫 번째 필요조건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 이시대의 지도자의 사명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내가 해야 할 역사속의 소임은 무엇인가를 궁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황희는 ‘선왕이 그에게 넘기신 과업’을 ‘말이 두려워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정리했다. 그는 태종의 생각과 함께 세종의 생각을 분명히 읽었고 그 생각에 충실하고자 했던 명신(名臣)임을 자처했다. 많은 흠결속에서도 훗날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거듭나게 된 그에게 세종은 은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은혜를 갚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모든 재능을 쏟아 부었다. 조지 버나드쇼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써버리고 가지 못할까 두렵다고 했던 그 두려움을 느끼기나 했을까! 그는 한고조를 세종보다 아래에 두며 그 스스로 세종을 섬김에 깊은 자부심을 가졌다. 그런 류의 자부심을 갖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그는 행복했음에 틀림 없다.


섬김에 있어 최고의 주군을 모신다는 행복감은 특별한 자부심을 가져다 준다. 자신을 알아주고 덮어주는 주군에 대한 보답은 그 스스로 누가 되지 않으며 결국 성공하는 것이다. 자부심 어린 섬김과 역사적 성취를 일구어 낸 행복했던 재상 황희가 오늘 우리시대에는 어떤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궁금하다.



백성을 믿지 않았던 허조. 백성의 억울함을 듣는것과 유능한 관리를 보호하는 것 사이에서 대부분 후자를 선택한 명신.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넓힌다(人能弘道)’고 믿었던 사람. 그 때문에 세종치세에는 유능한 인재가 풍부했다. 그는 깐깐하고 원칙주의자였지만 그 때문에 세종의 치세가 가능하도록 주추(풍부한 인재풀)를 놓은 사람이었다. 세상의 평판보다는 본인의 처신을 엄격히 유지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를 바르게 세우는 일(修身)에 철저했기 때문이다. 기본에 충실한 것의 가치를 몸소 실천한 사람으로 결국 ‘선배들의 극기의 공력(克己之功)이 이와 같았다’는 조광조의 평을 듣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넘쳐나는 언로의 홍수속에서 수많은 평판의 회오리속에 살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 회오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어지러움을 경험하고 있다. 능력있는 사람이 사소한 잘못으로 옷을 벗어야 하고 마녀사냥의 제물이 되기도 한다. 우리시대에 허조가 있다면 이런 세간의 언로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까?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라 여겼던 그는 국가를 위해 아껴야 할 관료를 등 뒤에 두고 ‘차라리 나를 먼저 죽여라’고 외치며 유능한 관료들의 바람막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국가의 기둥과 서까래들을 지켜온 수문장이다.


세종은 박연에게 말했다. ‘너는 내가 아니었으면 음악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고 나도 네가 아니면 역시 음악을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인가! 완벽한 인간은 없음을, 그래서 서로를 격려하고 담금질하며 결국(結局)을 만들어 내는 관계는 상생을 위한 인간관계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서로의 필요를 알았고 그 필요에 충실했으며 자신을 불태우며 황종음(궁극의 도)을 찾아 냈다.

‘네가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너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있는가를 자문해 본다. 누구인가를 물어보아도 시원한 답변이 솟아나질 않는다. 지금부터 자문하기를 계속하여 이런 만남을 꿈꾼다. 내 인생의 행로 속에서 이런 만남을 꿈 꿀 것이다. 모두에게 특별한 희망을 품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지성, 요즘말로 하면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긴 정인지는 학자이자 외교관이었다. 학자이기에 독자적 지성의 중요성에 절실했고 외교관이기에 그런 세종의 뜻을 간명하게 파악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흐른 후 따로 모아 이루어 내고 싶은 독립의 생태웅덩이(국가)를 이해한 사람이다. 스스로를 존귀히 여기지 않는 것의 폐해를 분명히 알았기에 훈민정음 창제를 가장 헌신적으로 지원하며 세종정치의 중요한 학문적, 외교적 업적을 뒷받침한다.

국제적 힘의 현실(事大)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으려는(自主) 교묘한 균형감각은 근대 우리외교의 전범(典範)이 될 만한 사례이다. 이는 동시에 학문하는 자의 자세를 보여준다. 수많은 외국의 문물이 넘치는 때에 우리 것에 대한 억지스러운 존중으로 체면치레하려는 세태에 학문의 멋들어진 자기(自己)화를 보여준 선비이다.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優), 하늘이 나에게 맡긴 소명을 알고 즐기기에 근심이 없다는 것은 비단 국가중책을 맡은 자들만의 변은 아니다. 민주주의란 개인의 삶에 어느 누구도 예외없는 개별적 중요성을 부여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조건이 있다. 먼저 지명하는 것이다. 지명(知命)해야 낙천(樂天)이 된다.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깊은 이해를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종을 섬기며 함께 치세를 열어간 수많은 명신(名臣)과 재신(才臣)들은 이웃한 동료들과 군주로 인해 지명(知命)했고 결국 낙천(樂天)으로 마감했다. 이것은 백락과 천리마의 만남과 같은 것이다. 천리마는 이시대의 백락을 만나 맘껏 달리고 싶고 백락은 천리마를 만나 그를 뛰게 하는것이 최고의 보람일 것이다.


백락 세종은 600년을 뛰어넘어 이시대의 천리마를 깨워주시길 바란다.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을 현신한 백락의 상징이라 믿고 싶다. 그 앞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제각각의 분야에서 천리마로 변신시키는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하는 그런 실존의 백락으로 믿고 싶다.



Writer Profile
김태균  집단지성 네트워크 '더포티라운드 The 40 Round'

사람답게 사는것과 행복한 성공을 위해 자신을 찿아가는 여정을 고민함. 내일을 위해 오늘을 성실히 경영해야할 경영자로서 1인기업과 브랜드를 만들 자기경영플래너!
주니어리더십센터 및 미래형커리큘럼연구소 소장, 에너지큐브 이사
저서:지혜의 숲에서 길을 찾다,굿바이 딜레마. http://dreamerchan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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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도자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다.(不知)

먼저 지도자의 옹졸함을 꼽고 싶다. 간장종지는 대접의 크기를 가늠할 수도 없고 대접인지도 모른다. 그저 넉넉한 둥근 벽이 있을 뿐이다. 5척의 신장으로는 5척 이상의 키를 잴 수 없다. 지도자의 도량이 얼마나 넓은가에 따라 대사를 실행하는 인사들의 그릇과 역량이 결정된다.


둘째는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 것이다. 어느 곳에 누가 어떤 방면의 현자가 있는지를 찾는 노력을 지극히 하지 않으면 우연히 걸려드는 인재를 만나기를 기다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많은 그물을 던져 성과가 없더라도 한 두 번의 만선으로 빈 그물을 모두 감당하는 것이다. 권세의 정점에서는 세상과의 소통이 만만치 않다. 특별하고 지극한 노력이 없이는 인의 장막, 말의 커튼에 둘려있을 뿐이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통찰력의 부재를 들고 싶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익과 이해에 우선한다. 다만 그 이해의 우선순위가 각기 다를 뿐이다. 명예, 재물, 지식, 권력 등 각각의 우선하는 이해속에서 모자이크를 맞추듯,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듯 사람에 대한 통찰력으로 큰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단순히 청렴하다거나 전문성이 있다거나 하는 기계적 척도뿐만 아니라 완성된 인격의 됨됨이를 가늠하고 그것을 업무의 전문성과 합치하게 되는지의 여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는 단편만 보기보다 입체적 사고를 해야한다.


2. 인재를 절실히 찾지 않으며 활용하지 못한다.(不切)


첫째 이유는 사람의 장점을 먼저 보는 긍정의 태도가 부족한 경우다. 거꾸로 단점을 먼저 취하고 그래서 안 된다는 사고로 본다면 세종시대에도 써먹을 인재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단점이란 누구에게나 있고 또 엄밀히 따지만 단점이 아니라 다른 특성일 뿐인 경우가 많다. 자신과 다른 특성을 자신은 옳고 타인은 그르다고 주장하는 것으로는 인재를 모을 수 없다.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일컫는 것일까?


둘째는 전문업무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다. 지도자는 직접 수행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해당 업무의 성격과 목적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해야 한다. 예술기관이니 예술가가 수장이 되어야 하고 체육기관이니 체육인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관점에서는 일견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문제는 수장이 해야하는 것이 예술이나 체육은 아니지 않은가! 경영은 경영의 몫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처럼 특별한 분야에 특별한 직능을 위주로 편협하게 적용하는 것은 전문역량을 발휘 할 수 없게 만드는 일반적 사례이다.


셋째는 지도자의 그릇이다. 작은 그릇 일수록 큰 그릇을 못 본다. 아니 본다 하더라도 곁에 두고 함께 일할 수 없다. 남들의 시선이 두렵고 자기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는 경우인데 사실 이런 문제가 많지만 역으로 독선도 마찬가지다. 포용하지 못하면서 나는 옳고 그는 그르다고 주장한다. 강직하고 원칙분명하다는 것과 내 그릇이 그보다 작다는 변명과는 종이 한장 차이에 불과한 것 아닌가!


3. 인재가 지도자와 화합하지 못한다(不合)

첫째는 목표가 동일하지 않은 경우이다. 추구하는 바와 가치가 다른 경우 사실 함께 하기 어렵다. 지도자와 현신의 결합은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적 유대보다 목적의식의 공유가 중요하다. 그곳에 함께 가야할 필요를 같이 가져야 한다. 한사람은 가고 싶고 가야 하는데 또 한 사람은 가면 좋지만 안가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전력을 다한 자기 헌신이 나올 수 없다. 그곳에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함께 계속 길을 가겠는가? 혹 소통의 문제라면 설득하고 대화하고 이해시키며 가치를 새로 설정하고 목적을 공유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방향이 다른 경우라면 극복하기 어렵다.


둘째는 방법론의 차이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그 표현방식과 과정의 방법론에서는 많은 경우의 수가 있기 때문에 의견을 모으기가 힘들다. 그러나 목적이 같다면 이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고도의 정치활동으로 2인3각 할 수 있다고 본다. 비록 속도는 느리더라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협력하면 방법론의 차이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법의 차이를 인정하고 극복하는 것과 함께 서로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목적지에 함께 다다르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과정에 성실할 것을 신뢰해야 한다. 내 것을 양보하고 내 놓았는데 그것만 똑 따먹고 뒤 돌아 선다면 앞으로는 투쟁만 있고 비난만이 난무하지 않겠는가!


셋째는 조화를 이끌어 내는 지도자의 도량부족이다. 다른 것과 그른것의 차이를 모르는 것이다. 세종은 법가적인 허조, 도가적인 맹사성, 유가의 황희, 불가적인 변계량 등을 모두 함께 끌고 갔다고 한다. 인위(人爲)는 무위(無爲)를 헐뜯고 유가(儒家)는 석가를 공격하면서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三人行 必有我師라 했다. 분명 배울것이 있고 서로를 세울 수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결국 지도자의 조화로운 인재운용은 지도자의 품의 크기이다.


부지(不知), 부절(不切), 불합(不合) 이 3가지 인재를 모으지 못하는 문제의 공통점은 지도자의 자질문제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제도인 직접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경우 그의 도덕성도 검증해야 하지만 그 품의 넉넉한 수준을 판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평가 기준은 그 주위에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 오래 머물고 많이 모여드는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수시로 사람들이 바뀌고 물갈이가 되는 것은 그럴 듯 한데 겪어보니 아니라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국가의 장래는 개인의 장래보다 중요하다. 다수의 문제이고 자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백년대계의 지도자상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를 짊어지고 나갈 세계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청소년시절부터 인문학을 깊이 있게 접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강화해야 한다. 시카고 대학이 3류 대학에서 1류 대학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인문학의 강제적 도입이고 강화였다. 우리는 근래들어 점점 인문학을 약화시키고 응용학문만 성공을 위한 전가의 보도인양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 않았는가!

인문학은 그 자체로 인간에 대한 통찰의 크기와 개인의 도량을 넓혀주는 학문이다. 세종의 어린 시절 지독한 독서의 내용은 대부분 경(經)과 사(史)였을 것이다. 이 경사(經史)는 기본과 응용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아우르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사색하는 기초가 된다. 이 이해를 토대로 법학, 교육학, 의학, 신문방송학 등의 응용학문이 세워지는 것이 올바른 학문의 순서라고 생각한다.

청소년기에 권하고 싶은 방법이 있다면 독만권서(讀萬券書) 행만리로(行萬里路)의 방법이다. 독서력은 모든 배움에 우선하는 방법이다. 교과서를 외우게 하지 말고 독서력을 강화해야 한다. 정독, 숙독, 지독, 속독 등의 독서 방법과 체계적인 책의 공급등을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귀로하는 독서인 경청의 필요와 방법 또한 배워야 한다. 이런 기초방법을 숙달 한 뒤에 문사철-정경사-수물화생-기예악의 기초를 닦아나간다면 중고등학교 시절 능히 1천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사색하고 토론한다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남달라 질것이다.

이에 더해 기회를 자주 만들어 여행을 하게하고 봉사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예술을 접할 기회를 자꾸 만들어야 한다. 점수 따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식의 예술 활동이 아니라 클래식위주의 예술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다. 클래식은 세월의 풍파를 건너뛰어 살아남은 인류공통의 유산이자 자산이다. 이것은 시공간을 넘어서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감대를 쌓아온 것이다. 유행가와는 다르다. 동시에 가족의 가치를 재발견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가족은 언제나 내 편이다. 내가 실수하고 잘못해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 그 가족마저도 어려워진 배우자와 부모를 내버리고 떠나는 세태가 되었다. 지극히 염려스러운 사실이다. 이제는 믿고 의지하며 돌볼 가족마저도 별 볼일 없는 사건 때문에 갈라서는 평범한 관계로 하향 평준화 된 것이다. 위기의 시대이다.

백년대계를 세울 지도자를 위해 오래된 커리큘럼의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 세종께서 그 전형을 보여주셨다.




Writer Profile
김태균  집단지성 네트워크 '더포티라운드 The 40 Round'

사람답게 사는것과 행복한 성공을 위해 자신을 찿아가는 여정을 고민함. 내일을 위해 오늘을 성실히 경영해야할 경영자로서 1인기업과 브랜드를 만들 자기경영플래너!
주니어리더십센터 및 미래형커리큘럼연구소 소장, 에너지큐브 이사
저서:지혜의 숲에서 길을 찾다,굿바이 딜레마. http://dreamerchan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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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위기보다 강해져라

김형환 지음
팜파스
평점

 

 

"중요한 사람이 중요한 일을 한다."

"같은 그릇으로는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이 정해져 있다. ......

지금의 그릇을 깨지 않으면 새로운 그릇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1:10 이 아닌 1:1 대화를 하라"

"바쁘긴 하되 깨달음이 있는 분주함이어야 하고, 새로움이 있는 바쁨이어야 한다"

"회사의 역량은 핵심 가치에 집중되어야 하듯이 경영자의 시간은 미래에 집중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김형환 교수님으로부터 강의를 듣는 듯한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명쾌한 정리와 스피드한 진행 그리고 가끔씩 들려주시는 생생한 예화들...

 

현재 1인 기업으로 독립한 나에게는 마치 교과서와도 같은 책이었다.

내가 직원을 데리고 있을 때 미리 읽었더라면 보다 현명하게 대처했을 것이고, 덜 불안해해도 되었을 것을 ...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이라고 하는 것이 다른 책들을 일고 정리한 듯한 책은 그 깊이를 금방 들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 "CEO, 위기보다 강해져라"를 보면 그간의 경험들이 곳곳에 녹아 들어가있어서 현장에 바로 적용할 문구가 너무 많다.  아! 이런 것이 바로 고수가 말하는 바로 그 전략이구나를 실감한 책이었다.

 

해외 유명한 저자들이 쓴 위기의 CEO들에게 전하는 내용들은 거의 비슷하게 세계 경제의 흐름에 따라 비슷한 처방을 내놓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알면 알수로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한다.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해결책을 내놓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흔히 할 수 있는 아주 손쉬운 것에서부터 멀리 가기 위한 전략을 세울 때까지의 세세한 가이드라인이 정립되어 있다.

 

100년 이상 가는 아니 최소한 10년이라도 불황을 견디고 당당하게 경영을 해 나갈 의지가 있는 CEO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은 것이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연심  집단지성 네트워크 '더포티라운드 The 40 Round'

프로가 되게하는 아주 특별한 방법 M리더십, "여자, 아름다움을 넘어 세상의 중심에 서라" 출간. 지식소통 전문가로서 개인브랜드 구축을 위해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영향력, 그 중심이고 픈 로비스트랍니다. 
 www.mu-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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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친정기(親政期)의 시험대  - 기근(饑饉)구제를 통한 위기의 리더십


세종시대에도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다.

'이 임금 때문에 흉년이 들어 살기가 심히 어렵다. 내가 만약 임금이 된다면 반드시 풍년이 들 것이다(세종 5년)’ 강원도 고성의 이각(伊覺)이란 자의 말이다.


흔히 역사속의 태평시대에는 모두 평온했고 전쟁도 없었을 거란 일반의 인식을 뒤엎는 참변이다. 유언비어가 유포되면 곧 정권이 넘어가는 위기의 시대였다. 이러한 위기에서 세종은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하며 치세의 리더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는지가 자못 흥미롭다.


세종 친정기 초반에 굵직한 위기 2가지는 강원도의 기근과 도성의 대화재사건이다.


먼저 기근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강원도 인구의 27%인 2600여 호가 유리하여 사라지고 토지가 황폐화되었다. 종자가 썩고, 뿌린 씨앗을 다시 파내 주워 먹어야 했다.  흙을 파서 떡과 죽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처자식을 버리고 떠나거나 소리치고 울며 따라오는 자식을 나무에 묶어놓고 가기도 하는 비참한 지경에 내 몰렸다. 타 지역으로 먹을 것을 찾아 떠났지만 어느 지역인들 넉넉했을까!


세종은 다음과 같은 대책들을 지시한다.


 첫째는 현지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었다.

‘흉년을 구제하는 것은 결코 완만히 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정무의 제 1순위에 기근구제의 대책을 강구하는 일에 매달렸다. 이 가운데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실태파악을 괴롭히는 현지 수령방백들의 거짓보고를 엄벌하는 것이다. ‘백성을 위해 창고를 임의로 풀었거나 거둬야 할 곡식을 다 수납하지 못한 것은 지역수령의 관할에서 할 수 있는 일이나 그 형편을 사실대로 전계(보고)하지 아니한 것만큼은 죄를 주어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정리이다. 결국 문제에 대한 상황파악을 1순위로 둔 것은 현상에만 매달리지 않는 장기적인 계획과 대처를 가능하게 하는 첫 관문이라는 인식이 그의 리더십의 출발이다.


둘째는 기민(飢民)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했다.

‘기민들이 대규모로 이동하면 타 지역의 그나마 무사한 지역까지 함께 굶주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 됐지만 ‘한가한 관원의 불필요한 말’로 강행했다. 하지만 실은 이러한 문제가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떠도는 사람은 많았으나 굶주려 죽는 사람은 적었다’  응급처방과 십시일반의 정신까지 갖춘 방법이다.


셋째는 구휼방식의 변경을 꾀했다.

어디서 왔는지를 묻지 않았고, 구휼(救恤)하는 사람들을 관원에서 승려로 바꾸고 숙소를 마련해 주며 역질에 걸린 사람들을 별도 격리 하는 등의 과감한 조치들을 단행하면서 기근문제를 현장에서 처리하게 했다. 그리고 거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즉 자존감을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여 ‘많은 사람들이 와서 살아나게’되었다. 당시의 시대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혁신적인 구제방식의 변경은 강력한 왕의 의지와 충직한 신하들의 협조가 없이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통해 세종은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밥은 백성의 하늘이니(食爲民天) 농사는 늦출 수 없는 것(農事不可緩也)’이라


민생안정을 위해 세제개혁을 단행하여 국가재정을 만회했다. 신세제 도입, 불교종파의 통합과 노비혁파 등의 개혁 외에 국왕가족의 재산을 축소한 일은 특별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당시 선대왕으로부터 이루어진 가계의 인원수만 해도 대략 80명이 넘는 왕족이 정승(150결)보다 많은 300결의 토지를 분배받았는데 이를 각 50결씩 줄이는 방안을 실행했다. 요즘말로 하면 국왕의 재산헌납이다. 비록 신료들의 반대가 있다 하더라도 왕이 스스로 왕가의 재산을 줄이는 마당에 어찌 저항할 수 있겠는가? 리더의 솔선수범의 전형이다.


이후 간척지 개간 등 농지를 대폭 확대했다. ‘전라도에 황무지가 많더니...호수와 인구가 매우 번성하고 산림과 초목이 우거진 늪이 모두 개간 경작되었다’라는 보고가 올라올 정도로 간척개간의 진척을 많은 효과를 보았다. 특히 함경도 지역의 효과가 커서 국방강화와 함께 많은 유리민들이 모여 정착하게 했다.


조선의 기후 및 토양조건에 맞는 농법개량과 보급 등의 사업에 중점을 두었다.

‘하늘의 재변은 인력으로 어찌 할수 없으나 사람의 힘이 미치는 데까지는 심력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과 수전농법의 발전, 파종시기의 선택을 통해 논농사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 바람에 강한 볍씨의 보급, 구황작물의 식량대용화, 한해 두 번익는 올기장(早麥)의 보급등이 그것이다.


이런 정책의 꾸준한 추진으로 2배의 농지가 늘어나고 2배의 생산성증대를 가져왔다. 결국 4배의 농업생산력을 키운것이다. 밥은 백성의 하늘인데 그 하늘을 편하게 해 준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관리들이 국가시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한 일이다.

기민을 죽게 한자는 비록 공신의 자손이라도 모두 곤장을 쳤으며 돈을 내고 벌을 면제받는 것을 허락지 않는’ 왕의 의지를 표명하는 강제의 방법도 동원했지만 내가 하는 일이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라는 신념을 갖게 해준 세종의 통치리더십이 더욱 큰 빛을 내게 한 것이다.

이디오피아에서 한 어머니가 굶어죽은 아이를 묻으러 가고있다.
우린 너무 풍족하지 않은가!


세종은 자신의 본분에 대해 분명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달성하기 위한 세부목표와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론도 숙지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남다른 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능력이 탁월하다 할 것이다.


세종의 명연설 1 - 왕가의 재산헌납을 제안하며

하늘의 재앙(天災)과 땅의 이변(地異)의 있고 없는 것은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마는 배포조치(配布措置)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다 할수 있는 것이다. 내가 덕이 없는 사람으로 큰 기업을 이어받아 능히 치평(治平)을 하지 못해 아래 백성들이 굶어 죽게 되었으니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장차 깊은 못에 떨어질 것만 같다.

자손이 번성하고 많은 것이 경사라고는 하지만 한갓 국록(國祿)을 허비하고 건물이 또한 많아 그 때문에 재앙이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내가 심히 부끄럽다. 그 나머지 종성(宗姓)들의 과전은 갑자기 감할 수 없으므로 친아들 친손자의 과전(科田)을 감하려고 하는데 여러 사람의 뜻은 어떠 한가‘(세종실록 19/01/12)



Writer Profile
김태균  집단지성 네트워크 '더포티라운드 The 40 Round'

사람답게 사는것과 행복한 성공을 위해 자신을 찿아가는 여정을 고민함. 내일을 위해 오늘을 성실히 경영해야할 경영자로서 1인기업과 브랜드를 만들 자기경영플래너!
주니어리더십센터 및 미래형커리큘럼연구소 소장, 유엔젤문화재단 상임이사.
저서:지혜의 숲에서 길을 찾다,굿바이 딜레마. http://dreamerchan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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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아카데미 3- 세종의 정치비전과 민생경영



지난시간 요약


1. 세종이 개인적 취향과 가정관계등에 대한 개요


2. 세종시대가 가능하도록 만든 태종의 길닦기


태종은 2번의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정리하며 조선의 3대 왕에 올랐다. 이후 정치적 개혁과 민생개혁을 위해 온 힘을 쏟아 부으며 신생국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그 와중에 정적의 숙청과 친인척의 피를 부르는 정리를 하며 오명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세종이 있었던 것은 태종의 교통정리가 핵심이었다. 양녕에서 충녕(세종)으로 세자변경, 왕권강화를 위한 개국공신 중심의 신권견제와 숙청, 외척세력에 대한 불온가능성 엄단등은 모두 세종치세의 초석이 된 것이다.


몇가지를 요약해 본다.


1. 수성의 시기를 전환하기 위한 왕위계승의 정당성 확립


정종으로 이어지는 世弟(세제)가 아닌 태조로부터 이어지는 世子(세자)로서 왕위를 계승하게 된 점이 그렇다.


2. 국왕재량권의 확보와 국가관의 정립


국가란 여러가문들 중의 하나이거나 나라의 으뜸가문의 차원이 아니라 몇 개의 가문을 희생해서라도 지킬 가치가 있고 때로 왕 자신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다.


사실 고려시대만 해도 국가보다는 부족사회의 연합이란 성격이 강했고 치세의 역량은 무력이었다. 이제 조선에 들어와서 문치와 법치가 바로서는 근대국가의 개념이 정립되게 된다.


不忠(불충)과 不睦(불목)의 차이를 기억하라!


3. 대외적 불안정 요소를 최소화


정치적 정당성을 위한 명나라에 대한 至誠事大(지성사대)이다. 북방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강대국동맹노선을 취한다. 자진한 말1만마리 무역과 조선처녀 공헌, 명나라 사신의 온갖행패등도 모두 신생국가의 안정을 위해 인내력을 발휘한다.


4. 고려의 충신을 襃彰(포창)-아름다운 뜻을 기리고 선행을 드러냄-하여 체제를 공고히 함


고려말 고려충신으로 죽기를 자처했던 길재, 정몽주등을 복권시킨것은 신생국에 대한 절개와 충성을 요구하는 정치적 포석이다.


‘만일 이씨의 신하에 이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아름다운 일’이라 했다.







세종의 정치비전과 민생경영


1. 세종의 즉위와 정치비전 : 施仁發政(시인발정)- 어짐을 베풀어 정치를 일으킨다.


본디 시인발정이란 맹자와 제선왕의 대화에서 나오는 ‘發政施仁(발정시인)’에서 유래되었다. 세종은 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어짐 베품을 먼저로 본 것이다.


첫째, 선왕의 業(업)을 계승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정치보복 없을것을 천명

둘째, 사면령을 내려 화합을 도모

셋째, 모든 것의 위치를 바로잡고 시작을 조심해서 하겠다는 仁君(인군)정치로의 선언



2. 세종의 제 일성 : 서로 議論(의논)하자


‘내가 인물을 잘 알지 못하니 좌의정, 우의정과 이조 병조의 당상관과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제수하려 한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소통을 우선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들은 일제히 환영한다. 즉위 후 최초의 말이 의논하자라는 말은 모든 지혜를 수렴해 결정하는 매우 민주적인 운영방식이며 良才用賢(양재용현)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정조의 측위 후 첫마디는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했다. 두사람의 정치적 상황을 극명히 보여준다.


결국 세종의 정치적 일성은 신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동참을 촉구하는 말이자 정치란 혼자할 수 없음을 강조한 말이다.


우리시대 통합을 논하지만 정작 진실된 대화(의논)가 부족한 것은 바로 이런 정치철학의 부재가 불러온 것이 아닐까?



3. 세종의 효행과 태종의 행복


有錢難買子孫賢 억만금으로도 어진 후계자를 살 수 없다’ - 중국사신의 감화발언


‘자식이 왕이되어 지극한 정성으로 봉양하니 이와같은 일은 고금에 드문일이다’


‘주상이 현명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뛰어난 줄은 몰랐다. 현명하고 원숙함이 周文王(주문왕)과 같은 사람이다’


‘내가 나라를 부탁해 맡김에 사람을 잘 얻었으니 산수간에 한가로이 노니기를 이처럼 걱정없이 하는 자는 천하에 나 한 사람 뿐이다. 고금을 통틀어 나 한사람 뿐일 것이다’


태종의 세종에 대한 말이다.


지금시대 전임 대통령이 후임대통령에게 이와같은 심사를 표현할 수 있다면 온 국민이 행복하지 않겠는가?


周易(주역)에 樂天知命(낙천지명)이란 말이 있다. 하늘에 감사하고 즐기며 자신의 나아갈 바를 안다는 뜻이다. (원문은  樂天知命故不憂 - 하늘을 즐기고 명을 아니 근심이 없다)


주어진 조건, 상황 등에 감사하며 족한줄을 알고 기뻐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하늘의 命(명)을 안다는 것은 진실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다. 스스로 나아갈 바를 깨닫는일, 천직이라 하는 것, 자신의 직분을 최고로 여기는 자세, 그리고 그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역사고금을 통틀어 인간의 최고의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 자신의 달란트(재능)를 알고 이를 최선을 다해 기여(남김)하여 복을 받는일과 너무도 같지 않은가!



樂天하고 知命하라.

세종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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