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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매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벼 주위에서 자라며 벼의 성장을 막는 잡초를 뽑아주는 것입니다. 이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계속 자랍니다. 벼농사에서 가장 일손이 많이 가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제초제를 쓰기도 하지요. 독한 약으로 잡초를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한 농가에서는 이처럼 당연한 김매기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초제를 쓰지도 않고서 말입니다. 잡초를 벼 사이에 그냥 자라게 합니다. 좁은 곳에서 서로 부대끼면서 사는 것이지요. 그러면 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농가가 게을러서 그런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매년 품질 좋은 쌀을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 농법이야말로 건강한 쌀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니 놀랍습니다.


제초제의 유해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 김을 철저히 매서 잡초를 완전히 제거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벼에겐 그리 좋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짧게 본다면 벼에게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같은 흙에서 양분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없다보니 겉으로 보기엔 쑥쑥 자라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알곡도 많이 열리겠지요.


하지만 근본에서의 문제는 악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경쟁이 없으니 깊게 뿌리를 내릴 필요가 없게 되고, 결국 뿌리는 얕고 허약해 집니다. 병충해나 비바람에 취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비료나 농약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그러면서 더 저항력이 약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뿌리가 얕아 비료에 의존하는 벼는 사람으로 치면 비만아와 같다고 합니다. 과체중에 살이 많지만 면역력이 현격히 낮고 성인병을 달고 사는 그런 아이 말입니다. 이런 어린이가 병원을 자주 들락거려야 하듯이 내성이 사라져가는 벼들은 점점 더 약에 의존해 살아가야 합니다. 


단기간의 소출이야 적어질 수 있지만 몇 해 꾸준히 잡초들 틈에서 종자를 개량해 온 벼는 뿌리가 탄탄해 병충해에 내성이 강하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도 잡초들과 함께 경쟁하면서 땅속의 양분을 힘차게 흡수해 잘 자란다고 합니다. 높이 자란 잡초와 벼가 섞여있는 논이라니, 쉽게 상상할 수가 없네요. 


어떻습니까. 참 지혜롭습니다. 농사라는 게 한 두 해 하고 그만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긴 호흡으로 참 멀리 보았네요. 그렇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노하우를 배우고 싶습니다. 


2. 


대학입시를 정점으로 한방향 정렬이 이뤄진 교육 시스템 속에서 부모들은 지금도 열심히 김매기를 합니다. 초등학생교 고학년부터는 입시공부만을 시키고 그 외의 활동은 모두 제거합니다. 아이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무시하고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조금이라도 조기교육을 시켜 보겠다고 애를 씁니다. 방과 후에 다녀야 하는 학원은 십여 개에 이릅니다. 


키가 쑥쑥 자라듯, 열심히 외워서 문제 푸는 능력이 점점 향상되고, 알곡이 풍성히 열리듯 답이 정해진 시험에서 점수만 척척 받아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일까요? 과연 지금의 교육이 아이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변하는 환경에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내성을 길러주고 있는 것일까요? 


오리 농법이나 왕우렁이 농법 등이 최근 각광 받고 있습니다.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는 만큼 진일보한 농법이라고 하겠습니다. 내성과 생명력에 중심을 둔다면 이런 농법들도 새로운 수준으로 더욱 진화할 것입니다. 우리 교육도 그러했으면 합니다. 나만 살겠다는 이기심의 경쟁이 아니라 서로 부대끼며 조화를 찾아가는 그런 교육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연은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자연답고, 또 그래야 생명력도 살아나니까요.


글. 기업인재연구소 대표 김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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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삶의 자세
김태진의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없다면』



[책 소개]

당신은 자존계좌와 미래퍼즐, 그리고 맞춤열쇠를 가졌는가? 

교수들은 망설이는 젊음이 안타깝다. 도전에 나섰다가 상처 받고 돌아온 제자들이 눈에 밟힌다. 그래서 위로와 격려로 용기를 북돋아준다. 반면, 인사담당자들은 자신의 강점이 뭔지도 모르는 젊음이 답답하다. 뭐 하나 제대로 준비해 오지 못하는 지원자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래서 충고와 쓴소리를 하고 만다. 다 필요한 이야기지만 요즘은 그런 말들이 넘쳐난다. 어느새 '다 아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젠 실질적이고도 명쾌한 해법이 필요하다 

이 책은 불안해하는 젊음을 위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취업현장의 기준으로 손쉽게 쓴소리를 내뱉지도 않는다. 다만 차분히 해법만을 말할 뿐이다. 그 해법 속에 녹아 있는 저자의 경험이 신뢰감을 더한다. 10년 동안 직접 사람을 뽑고 인재를 키우다가, 그 뒤로 6년 동안 대학에서 상담과 코칭, 멘토링을 통해 학생들과 만나온 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많은 성공스토리들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 성공이 적절한 타협의 결과가 아닌 과감한 정면승부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답은 목표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납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 책이 제시하는 해법은 구체적이며 실천적이다. 의욕을 갉아먹는 스펙의 사다리에서 내려와 '자존계좌'를 통해 자존감을 채우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인생을 모두 걸어도 좋을 나만의 기준과 목표를 찾는 과정이 '미래퍼즐'이라는 결과물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바탕 위에서 취업의 문을 열기 위해 사용하게 될 '맞춤열쇠' 역시 명확한 매뉴얼로 제시되어 있다. 

저자와 함께 자신의 삶을 바꾸었던 이들이 '기적'이라고 불렀던 이 해법과 만나라. 이제 취업은 넘기 힘든 장애물이 아닌 진정한 삶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저자 ]

기업인재연구소의 대표. 커리어코치협회의 이사이며 여성가족부 위민넷의 멘토 코치이다. 젊음처럼 지치지 않는 열정과 꿈을 가르치는 명강의로 국민대에서 베스트티처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시립대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서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HR전문가로서 언론사 임원으로 재직하던 중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찾았다. 그 후, 젊음이 지닌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청년 멘토로서 현장에서 직접 인재를 육성하고, 기업에 인재경영을 전파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미래를 불안해하는 학생들의 멘토이자 커리어코치로서 놀라운 성공 사례를 일궈냈을 뿐 아니라, 대학이 학생들의 취업을 장려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오늘도 수많은 학생들과 만나 그들의 고민에 함께 공감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등 자신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는 한편, 자신이 미처 멘토가 되어주지 못하는 방황하는 젊음들을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젊음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기적과 만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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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은 '저 사람 재밌을 것 같다'였다. 얼굴에 '명랑'이 쓰여있었다.

사람 좋아보이는 동글동글한 인상이 특히 '문화 아이콘기획자'라는 이름과 잘 어울렸다. 
문화는 즐겁고 재밌어야 한다는 말을 온몸으로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 그와 만남을 준비하면서 '인터뷰이'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 좀 보내 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며칠 후 장장 67페이지짜리 PDF파일을 보내왔다. 
거기에는 인간 신영석을 소개하였으며 그가 하는 일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십 년의 세월을 기획자로 살아온 사람의 포트폴리오였다. 

새로 발견한 카페로 인터뷰 장소를 잡았다. 퇴근 무렵이라 차가 막힌다고 알려왔다. 약속시간보다 꽤 늦었다.  
'어우, 늦어서 미안해요.'라는 그에게서 상쾌한 민트향이 훅 뿜어나온다. 센스있는 향내다. 
인터뷰하러 나오기 전 자신을 점검했었음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첫 번째 기획 - 20대에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던 남자 
문화기획을 하게 된 계기가 뭐였나?

이십 년 전이다. 오륜교회의 오륜커뮤니케이션에서 문화전도사로서 사역했다.  
엄숙하고 경건하기만 한 교회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교회를 TV보다 재밌게 만들고 싶은 게 꿈이었다. 꿈을 밝혔는데 목사님도 깨인 분이었다. 그게 받아들여졌다.
당시만 해도 드럼만 쳐도 교회에서는 좋은 시선을 받지 못했던 분위기였다.
문화사역 전도사가 최초의 개념이었다. 지금 보니깐 나 같은 일을 하던 사람이 전국에 딱 두명있었다.  
올림픽경기장에서 지역주민 불러서 콘서트도 만들고 당시에 획기적인 일을 많이 했다.
20대를 고스란히 그렇게 보냈다. 
프로페셔널 전문가가 모인 교회인데 외부에서는 아마추어라 보는 시선이 화가 났다.
31살에 갈등이 왔다. 교회에 있으면 계속 있을 것이고.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선 나와야 한다. 이때 결정 안하면 안된다.
결국, 세상의 전문가들에게 프로로 인정받고 싶어서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나오는 것도 큰 결심이었지만 막상 나와보니 막막하더라. 

두 번째 기획 - 일주일에 4일은 책상 밑에서 잤다

이데아 인터렉티브라는 곳에서 프로모션 마케팅 경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주로 KFT 프로모션을 대행했는데 퀄리티 높은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처음 일 년 반은 인생 최고 몰입기였다. 뭘 모르니까, 무조건 죽자고 했다. 
책상 밑에 침낭을 하나 두고 일주일에 4일을 거기서 잤고, 욕도 많이 먹기도 했지만 실력도 엄청나게 늘었다. 
일 년 반이 지나고 월드컵 행사를 맡게 되면서 포트폴리오가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4년을 보내고 나니 도가 튼 것 같았다.  



결혼하고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사업을 하느냐 회사를 다니느냐는 고민이 찾아왔다. 
그리고 프리랜서를 거쳐 내 사업을 해보자는 결론에 이른다.
사업은 잘됐지만 운영과 세금 부분을 잘 다루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갔다. 엄청나게 바쁘게 살아냈다.
뒤돌아볼 새가 없었고, 걸어도 돌부리에 넘어지면 안된다. 무조건 실행, 무조건 설정.
쳇바퀴 돌듯 살아가면서 그 바쁜 것에 안도감을 느끼는 상태.
40 이후의 삶이 이렇게 빡빡하게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늘 꿈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꿈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큰 충격이었다.

이렇게 살다가 꿈도 없이 사는 데 바빠지는 삶을 살게 될까 두려웠다.
그리고 세 번째 인생기획을 하게 된다.



세 번째 기획 - 나도 즐겁고 너도 즐거운 기획으로 돌아가자 
홀로 섰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생활이 되었는데 오히려 불안했다.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놀 줄 모르는 상태가 되었더라.
남들 노는 것을 기획했는데 정작 내가 노는 법을 잊어버린 그 세월이 아까웠다. 
나부터 재밌자 싶어 남도 즐겁고 나도 즐거운 기획을 고민하다 보니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서 이미 기본기획을 끝낸 게 있다. 바로 본인과 같은 '아빠'를 위한 여행가이드북이다.
가족과 여행을 가고 싶어도 바쁜 아빠들이 정보를 다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또 어떻게 놀아야 할지도 어려워하는 아빠들이다. 
이들을 위해 감동 있게 노는 법, 가족과 돈독해지는 기획을 만들어낸다.  
이걸 아예 매뉴얼로 엮어 여행안내서를 만든다. 
가는 방법, 비용, 어디 가서 무얼 먹고 무얼 하고 이런 세세한 감동메뉴얼을 만든다.
돈 만 원 남짓에 좋은 아빠 되는 기획 메뉴얼 30개를 사는 거다. 

이걸 하기 위해서 본인이 직접 가족들과 주말마다 놀러 갈 거다.
그렇게 답사가고 직접 경험하고 기획해 내는 거면 나도 즐겁고 타인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기획자로 사는 삶의 프로세스를 '집중, 온유, 통합, 유통'이라고 했는데 좀 더 상세한 설명을 요청했다.

집중 - 새로운 것 낯선 것도 집중해서 보면 풀리더라. 그게 기획의 기본인 것 같다. 
온유 - 온유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 여유를 갖고 보면 주변의 모든 것.
통합 - 상상에 한계를 두면 안 된다. 경계 없이 상상할 수 있는 통합적 사고.
유통 - 지식 네트워크 아이디어를 유통한다. 

잘 된 기획은 아이디어라는 씨앗을 잘 성장시켜 열매를 맺어 세상에 환원하는 것으로 표현을 하는데 
'유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뜻밖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각인이 잘 되었기도 하고. 

문득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이디어를 잘 꿰어 유통하는 것이 기획이다. 
그래서 오늘의 미리 인터뷰 제목은 문화를 유통하는 남자, 신영석으로 정한다.

삶의 프로세스 외에 기획자는 무조건 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잘하는 것보다 착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기획자는 누구보다 착해야 해요. 
히틀러가 기획한 게 2차 세계대전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착한 기획을 꿈꿔요.




일과 인생의 이야기긴 했지만 대부분 기획에 관련한 이야기였다. 
기획을 정말 좋아하기도 하겠지만, 자기도 노는 기획을 정말 즐겁게 이야기 한다.
회사 생활하는 동안 내 생활의 좌우명이 되었던 것이 바로 '놀면서 일하자'였다. 
가장 행복한 단계의 일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계기였다. 




문화를 유통하는 남자, 
문화아이콘기획자 신영석의 쇼쇼쇼는
10월 24일 수요일 40라운드 정기모임에서 만날 수 있다.




ps. 
인터뷰하면서 3차까지 온 건 신 대표가 처음이다. 
카페 -수다 떨다 배고파서 식당 - 다시 카페
다섯 시간을 마시고 먹고 수다떨 고 이동하고 마셨다.



신 대표가 안내한 백반집은 무척 재밌는 곳이었다. 
돼지불백과 김치찌개 딱 두 개의 메뉴만 있다.
사람마다 열심히 자신의 레시피대로 볶아내고 있었다.
신 대표의 레시피는 자잘하게 고기를 잘라 볶고 잘게 썬 김치를 넣는다. 
밥을 넣고 고추장 두 숟가락을 넣어 마저 힘차게 볶아준다. 
소년 시절부터 이 집 단골이었다니 오랜 세월 숙달된 볶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마침 카페가 보여 들어갔더니 우연하게도 굳지않는 떡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굳떡 브랜드 런칭 행사를 기획했던 관계로 그 우연함이 더큰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인터뷰어인 나도 그의 포트폴리오중 하나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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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문화콘텐츠개발자.
식(食), 문화, 콘텐츠, 개발. 따로 분리되면 매우 일반적인 단어들인데 한데 묶으니 난해하다.
지식소통전문가, 포토테라피스트, 온라인브랜드디렉터, 여행문화기획자 등등...
이는 40라운드 멤버들 모두가 갖고 있는 특징이 아닐까한다.

처음부터 그녀가 하는 일이 이름만큼 나는 만남의 기회를 노렸으나
한 달의 반은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 그녀의 바쁜 스케줄로 인해 늘 불발로 그쳤다.
종편에서 살아남은 기념으로다 이번에야말로 냅다 그녀를 포섭했다.

서로 일정을 맞추다 맞추다 우리는 결국 부슬비가 내리는 일요일 아침 이태원에서 10시반에 만나고야 만다.
미리 온 이대표는 책보는데 집중하더니 나의 몰카짓을 발견하고 활짝 웃어준다.




식품영양, 요리강사, 컨설턴트, 식문화기획자 

현재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 
www.diaryr.com , 
요리전문사이트 쿠켄네트 www.cookand.net ,
파티케이터링 사계절만찬 www.partyplan.co.kr 을 운영하고 있다. 
음식이란 키워드로 일관된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먹는 시장과 먹는 것을 만드는 시장 그 사이에 있다.

프랑스에선 그 역할을 100년 전에 정의를 했어요. 가스트로놈(gastronome)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시장이 작아 그 개념이 확고하지는 않은데 점점 자리잡아 가고 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했고 식품회사에서 사무직으로 몇 년간 근무했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요리를 배웠다.  
자기만의 기술을 갖는게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단기간에 승부가 나지 않는 것이라 맘에 들었다고 한다. 승부사 기질은 타고나는 것인가.

요리실력을 갈고 닦았다길래 레스토랑 셰프라도 됐는가 싶었더니 요리강사가 된다. 
동양매직 요리강사로 4년간 재직한다.

몸을 담고 있던 쿠켄(㈜베스트홈)에서 닷컴 붐을 타고 2000년 새로운 쿠켄네트를 만든다.
프랑스의 미슐랭 가이드처럼 레스토랑 가이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요리강사로서 활동하며 강사 교육 등 여러 기획을 담당하던 이윤화 대표가 이 프로젝트의 메인으로 나서게 된다.
식품회사의 사무직에서 요리강사로 그리고 요리 콘텐츠 기획자로  포지션이 바뀌는 과정이었다.



콘텐츠 제작자에서 사장이 되다
우리나라의 콘텐츠 사업이 대개 그렇지만 저작권은 약하다.  
콘텐츠 제작에 온갖 에너지는 다 들어가지만 콘텐츠 자체는
비싼 값으로 팔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텐츠에 투자 해 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한다.  
유명 연예인이 내는 레스토랑 컨설팅등 많은 일을 처리하다가 잠시 매너리즘에 빠진다. 
돌연 일본으로 2년간 장기 휴식여행을 떠난다. 그게 2006년의 일이다.

휴식기간동안
요리의 총괄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것. 요리와 관련된 기획이 좋다는걸 다시금 확인했다. 
콘텐츠에 더큰 가치를 갖고 식문화콘텐츠 개발에 힘을 쏟는다.  

대표의 마음으로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자신의 업과 브랜드가 동일시 된다.
어느새 쿠켄네트=이윤화라는 공식이 생겼다.
2009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경제위기가 터지고 그간의 콘텐츠를 포기할수 없어 쿠켄네트을 인수하기에 이른다.  



추사 김정희의 밥상을 현대인에게 선물하다 
요즘은 지역음식문화 개발에 힘을 쏟는다.
지역컨설팅은 매우 힘이 드는 작업이지만 원석을 다듬어 보석으로 만드는 쾌감을 느끼는 일이다.

농민의 토마토가 어떤 요리에 어울릴지 찾아주는 작은 기쁨부터 일은 시작한다.
농업인과의 관계, 지역 담당자, 셰프와의 관계 등
하나하나 연결되어 새로운 지역상품이 만들어지고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최근엔 추사 밥상을 현대적으로 끌어내는 작업을 한다.
기획의 첫단계로 관련 문헌의 근거부터 찾아보는데 추사는 꽤나 까다로운 미식가였음을 알 수 있다.
제주유배중 아내한테 쓴 편지 중에 장조림을 보내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당시에 장조림이라면 매우 고급 음식이었다.

유배중 아내가 죽고 입맛에 맞는 음식을 보내줄 사람이 없자 서민적인 음식에 관심을 두게된다.
대표적인 서민음식인 두부의 진정한 맛을 느낀다는 내용이 문헌에 나온다.
또한 차를 즐기는 고급 취향으로 초이선사에게 차를 보내라는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한다. 
이 모든 작업을 거쳐 현대화한 추사밥상을 올 연말쯤이면 예산에서 받아볼 수 있을 거다.



그녀의 숨겨진 직업 맛가이드
요리사, 기획자를 거쳐 그녀의 숨겨진 직업이 또 있다.
바로 전국 방방곡곡 맛집을 찾아 여행으로 기획하는 일이다.
물론 기획자가 가이드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식품회사 농심에 종가음식 등 음식문화탐사 진행을 맡아 하고 있다.
기업이나 단체에서 종종 맛집투어 의뢰가 들어와
이태원 맛기행등도 진행한단다.

컬리너리 (culinary)투어는 음식의 투어라는 의미다.
영미권과 일본에서는 이미 컬리너리투어리즘이 자리 잡았다.
이미 발품팔아 만든 향토색 짙은 농업인이 식당을 하는 전국 농가맛집 70군데의 취재도 마쳤다.

맛의 기준이 바뀌었다. 그저 맛있는 음식에서 스토리가 있는 테마를 찾기 시작했다.
추사 밥상을 기획하게된 데도 그 이유다. 
추사고향을 방문해 주변 텃밭에서 나는 작물로 지은 밥을 추사의 고택에서 맛보는거다.

이쯤 되자 여행문화기획자이며 식탐도 제법있는 나는 눈을 반짝 빛낸다. 
여행과 음식. 인류사에 이 테마가 사라질날이 올까?
언젠가 여행문화기획자인 나와 식문화콘텐츠개발자 이윤화 대표와의 멋진 콜라보레이션이 탄생하길 기대한다.



▲ 농심 사보에 싣는 종가집 탐방에서 종가 음식 설명을 맡고 있다.

음식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본 이윤화 대표의 이력은
음식의 원초적인 영양을 다뤘다가
곧 그 재료를 잘 다듬어 요리하여 실체를 만들어내다가 
'먹는다'는 것의 본질적인 문화를 다루는 사람으로 끊임없이 진화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한 우물을 꾸준히 판 자의 통찰이 느껴지는 이력이었다. 

은퇴 후 꿈이 있다면 작은 비스트로를 내는 거라 한다.

컨셉이 뭐냐고 물었더니 단번에 컨셉같은거 없다는 답이 왔다.
하도 컨셉을 잡았더니 본인의 레스토랑은 그날 되는 음식제공, 격식도 없고 거창하지 않은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다고.
지 어제만든 카레에 조린 방울토마토가 얹어져 나올 것 같은 레스토랑이 떠올랐다.
오늘같이 비오는 날 우산을 접어 탁탁 털며 '어제만든 카레, 방울토마토 많이' 라고 주문할 사람이 몇 있다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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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망하는 거야 원래, 중소기업을 왜 정부에서 보호해 줘야 하는데?
얼굴 가득 사람 좋은 웃음선을 가진 남자의 독설. 
곧 있으면 1인창조기업의 저자로서 세상에 알려질 독서경영 전문가 안계환 대표가 하는 말이다.
이건 무슨... 창업자의 의지를 꺽는 말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이 까칠한 발언의 그의 다음 말을 들어보면 이해가 간다.
"실력없는 기업은 망하는게 맞죠. 맛없는 음식점이 망하는 것처럼. 
사업은 성공하려고 하는게 아니지. 망할 확율을 조금이라도 줄이는데 촛점을 맞춰야지요."
그러면 그렇지, 1인 창조기업에 무지하게 관심이 많은 나는 다시 인터뷰 할 의욕을 회복한다.
창업을 다루는 이 책, 1인 창조기업과 1인기업, 그리고 벤처나 스타트업과의 차이가 무엇일까?
 

일인 창조기업이란 부가가치가 있고 생산적인  남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

기업 형태에도 세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벤처기업. 이건 기술이 있어야 하거나, 기술기업이 아니라면 벤처투자사한테 투자를 받는 조건이거나, 혼자 하기엔 규모도 커야 하고 기술자를 비롯한 사람도 여러명 붙어야 하고, 투자자의 지분도 생각해야 하니 결국 엑시트(기업상장매각)하는게 목적일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보다는 돈이 되는 아이템을 잘 잡는게 중요하죠.
두번째는 생계형창업이죠. 이건 퇴직자들이 흔히 하는 프렌차이즈 매장 같은거예요.  
세번째는 1인(창조)기업. 원래는 1인 기업으로 불렸는데 정부에서 '창조'를 붙여서 지원사업을 하고 있죠.
여기서 말하는 창조라는 개념은 부가가치가 있고 생산적이고 남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하죠. 
유통기업 사업자. 이건 일인기업일뿐. 오래 해도 노하우가 안쌓이면 일인창조기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 책은 생존을 위한 창업노하우 92가지 메뉴얼인데 필요한 부분을 보면 되요.
다 내경험을 바탕으로 했죠. 직장을 다닌다면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창업을 이미 했다면 실제 법인 설립부터 회계 등의 운영 노하우, 
그리고 마케팅 기법, 퍼스널 브랜딩의 방법까지.  5단계로 구성했어요.  

  




창업에 관한 노하우를 담은 이 책을 쓰기까지 그의 이력을 정리해보자. 
대기업 삼성을 성실히 다니고, 회사를 나와 벤처기업창업을 한다. 
유통기업의 IT전산처리 시스템을 개발하는 기술사업이었다. 
뚜레주르, 파리바게트 등의 프렌차이즈 기업에 그 기술이 들어가 있다.  
그러기를 몇년 
조직의 알력관계에 의해 잠시 스티븐 잡스에 빙의 된다. 바로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난 것.

미련없이 벤처를 시작한다. 이번에는 기업경영컨설팅 사업. 이때도 1인 기업은 아니었고 세명이서 만든 회사다. 
물론 경험 전무한 컨설팅 분야에서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았다. 
컨설팅과 강의는 연결고리가 큰 편인데 우연히 하게된 강연에서 본인이 '무대체질'이라는 놀라운 천성을 발견한다.
그때까지만해도 강연을 할 것이란 걸 상상도 안했었다고. 
생각해보니 초등학교때 소풍을 가면 늘 나가서 노래를 했다는 기억을 꺼낸다. 
본격적인 강사경력을 쌓으면서 테스트 해본 3천명 앞에서 성가대 메인 싱어를 하면서도 전혀 안 떨린다는 점이 확신을 갖게 되는 계기였다.
무대체질과 더불어 가르치는 것의 적성도 찾아본다.
가르치는 것을 연관하자면 부모님이 집에서 하숙을 했는데 하숙생들이 주로 교사였다는 점. 
그 집에서 하숙했던 선생님이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었고 훗날 매형이 되는 인연까지라고 하며 교사와의 인연을 꺼낸다. 
또 초등학교 몇 년 간은  
반장이기에 바쁜 선생님을 대신해 교사용 강의교안을 받아 반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줬고 그걸 좋아했다고 한다. 

현재는 독서경영전문가가 되었고 1인창조기업가로서 살고 있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으나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식창조기업가로서 글쓰는 것이  필요했기에 
가장 즐겨했던 책읽기에서 확장한 독서리뷰를 하기 시작했다.

1인창조기업가로 살려면 어떤 태도와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를 물었다. 
자기만의 시각이 있어야 하고 사건을 자기식으로 해석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신문의 편집방식은 그 신문사의 데스트 몇몇의 의견일 뿐이고 그것과 별개로 현상을 꿰뚫어야 한다고 한다. 
본인이 대체 그런 방법은 무엇이냐는 눈빛을 강력히 보내자 정보를 본인의 능력으로 큐레이싱 할수 있는 즉석강연이 이뤄졌다. 


 



세상을 보는 방식은 사회, 경제, 기술, 환경, 정치, 영성으로 구문해 볼수 있고 이들이 서로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사태는 어느 영역의 문제일까?
경제? 정치? 심층을 들여다 보면 문화의 문제가 나온다. 유럽은 그리스를 버릴수 없다. 유럽의 모체는 그리스, 로마 아닌가. 
표면적인 이슈를 보지 말고 사건의 심층을 보는 눈을 기르고, 자신이 하는 일과 연관해 해설할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미니강연의 핵심이었다. 

1인창조기업가는 해야할 공부가 있고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 
독서 경영전문가 안계환 대표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역사공부에서 찾았고 그대로 인문학으로 넓힐계획이다. 
나 같은 경우는 예술과 문화쪽은 하고 싶은 공부는 계속하되 경제적인 현실감각이 부족하니 해야할 공부는 경제라고 짚어주었다.

역사학자가 년도멸로 나열된  횡적 역사를 다룬다면 나는 종의 주제를 다루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패자는 기록에서 사라진다. 나는 역사책의 역사보나는 삐딱함으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요즘 흥미가 가는 주제가 있는데 전쟁, 여성에게 휘둘린 지도자, 조운(곡식을 수도로 운반하는 국책 사업)이 있어요. 
백성들이 먹고 살아야 하자나.  그러면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옮겨야 하는데 도저히 산넘고 갈수는 없는거야. 
고려시대에  지금의 태안반도에 운하를 팠어요. 지금의 안면도야. 안면도가 원래 섬이 아니었어요. 




이렇게 독서경영이라는 그의 전문분야에 역사라는 인문학적 내용을 더하니 매우 풍성한 콘텐츠가 나온다.
운하이야기를 하다보니 중국의 사례를 말하다 삼국지 이야기로 빠진다. 
우리가 그토록 즐겨 입에 담던 삼국지의 군웅들이 장악하는 땅떵이를 제대로 집을수 있는 독자가 몇이나 될까.
지도 위에 당시의 시대상황과 지리적 특성을 파악해가며 들으니 이해가 더 쉬웠다. 
우리는 삼국지를 텍스트로만 읽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독서경영전문가로서 앞으로의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물었다.
최근에 정리한 독서경영 삼단계를 들려준다. 기업에서 독서를 통한 소통문화를 만들고 싶은 기업에 해당한다. 
첫째단계 독서로 소통하는 문화, 전 사원이 한달에 한 권 정도 읽는것을 목표로 삼고 
두번째 단계로 독서로 학습조직을 만들어 성과를 내는 것. 
세번째 단계는 인문학으로 창의와 혁신을 하는 것이다. 
이 말을 하는 그의 표정에서 평생 해야 할 일을 가진 자의 여유로운 확고함을 보았다.

그를 보며 느낀 것. 개인브랜드를 가진 일인기업가를 가름하는 가장 큰 조건은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성해 내는 것이다. 
그렇게 생성된 콘텐츠는 결국 원소스 멀티유즈에 종횡으로 확장되어 풍푸해져야 한다.


삼국지 국토지리적역사학습 강연을 듣고나니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인문학 선생으로 살고 싶다는데 그렇다면 필드테스트를 한번 해보는 것은 어떤가. 
마침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공유 플랫폼이 있는데 거기서 지식을 공유해봐도 본격콘텐츠를 내보내기 전 좋은 경험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 


삼국지. 그림으로 읽는 남자 
대학생이, 신입사원이 반드시 읽어야할 책에 늘 삼국지가 빠지지 않은 거 아시죠?
한 글 한다 하는 국내 작가들이 너도나도 삼국지를 써내려간걸 아시죠?
우리는 텍스트로만 삼국지를 배웠습니다.  
도원결의만 서너번 읽다가 끝나지 않으셨나요? 
삼국지 읽은 듯 착각하지만 지리를 모른다면 삼국지를 모르는 겁니다. 
여기 삼국지를 그림으로 읽어주는 남자가 있습니다. 

조만간 센티 컨셉기획의 안계환 대표의 지혜를 나누는 강의를 만나게 될거다. 


인문학으로 그림그리는 남자의 이야기는 
7월 17일 40라운드 7월 정기모임
박현진의 쇼쇼쇼 코너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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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인터뷰를 구상한 시각은 해가 남아 있을 무렵 시작해서 어둠속에서 헤어지는
즉, 낮과 밤 두 가지 버전의 시간을 보매며 꽤 긴 시간 인터뷰 했다는 보람찬 느낌을 심어주려는 전략이었다. 
허나 본인의 밥벌이인 직장에서의 칼퇴가 순탄치 않은데다 강북과 강동의 지리적 거리 조건과
방향치로서 코 앞에서 헤메고 다닌 나의 길감각이 더하여 김창화 대표를 만난 시간은 컴컴헌 어둠이 찾아온 8시가 넘어서였다.

 



이미 마인드 맵으로 뽑아놓았다. 인생이 아닌 사업의 터닝포인트로 정리한 이유를 물었다.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사업으로 풀거예요. 인생으로 풀자니까 너무 복잡해."
30여년 학원과 교육사업으로 정리한 터닝포인트를 들어보자. 

20대 초반부터 가장이었다. 어머님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산재장애로 오른팔을 잃으셨다.

그 당시는 제대로 된 보상도 못받던 시절이었다.
그러기에 군도 면제를 받았다. 병무청에서 조사나와서 생계유지자로 면제처리 했을정도니 그때의 상황이 짐작간다.
전산통계학을 전공하면서 학원 마케팅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28년 전은 유일하게 허가 난 학원이 바로 경리학원이었다.
일부러 나이들어보이게 외모를 만들고 기업, 학교의 단체에 들어가 발표도 하고 학무보 상담도 맡았다. 
내성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좋았다. 한달 하면 대학 등록금이 나올 정도다.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이럴거면 내가 알바를 할게 아니라 학원을 차리면 되겠네.'
그래서 스무살에 경리학원의 원장이 되었다. 교육사업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이루미 스쿨 곳곳에 독서성취표와 학생들이 받은 상장이 걸려있다.


25살에 결혼을 하고 영,수 전문학원으로 전향하기 시작한다. 십년 이상을 탄탄한 교육사업으로 확장한다. 
유치원, 외국어 전문, 일반 보습, 입시, 독서학원. 다양한 장르의 6개 학원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비결을 물었다. 마케팅 전략과 기획이 특징으로 꼽았다.

당시 최고를 달리던 구성애, 황수관 박사를 초빙해 교육 세미나를 열었다. 
이벤트를 통해 강좌를 제공하고 이렇게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학원 설명회를 열었다.
부산에서 IMF때 동아대 앞에서 10개 학원중 8개가 문을 닫았을 때 유일하게 원생이 줄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명상의 장점을 교육에 접목 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명상은 아이들이 하긴 어렵다. 그래서 고민끝에 독서로 교육을 접목시키기로 결심한다. 
돌연 부산의 학원을 모두 정리하고 서울로 상경한다. 본격적으로 독서교육사업이 시작된다. 



 

▲ 이루미 스쿨의 초등학생 5학년의 글. 일정수준이 되면 자기만의 문집을 갖을 수 있다. 동기부여 확실해진다. ^^



독서로 교육사업의 방향을 정하고, 독서 전도사가 되었는데 그만큼 책읽기를 좋아했냐는 물음에는
김대표도 어렸을 땐 책을 안 읽었다. 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쳐보니 독서능력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는건 읽기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설명을 해서 이해를 시킬순 있어도 이해력이 증가되는건 아니다. 
명서라고 하는 책을 읽으면 어렵더라 그건 내가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의 명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서는 좋은게 아니라 필요한거다. 라는 전제하에 무척 많은 연구를 거듭했다.
집중하는 법 연구도 많이 했고 학년별 독서수준에 맞는 텍스트 연구도 많았다.
일례로 연령대별로 집중하는 글자수가 다르다.
초등 1학년은 500자… 중고등은 2500~3000자가 적합하다.
그에 맞게 철저한 텍스트 작업이 이뤄진다.



 




교과별로 읽고 이해하기 훈련을 체계화 할 수 있고  결과도 볼수 있다.
독서 성취도를 평가 할 수 있는 이력제 등의 프로그램이 많다. 엔지니어 출신 답게 이 프로그램의 초기 기획을 만들었다.  
작곡가와 협업하여 집중하는 음악도 34곡이나 만들었다. 독서라는 분야에서 참 다양한 작업을 해서 놀라웠다.
 
책을 못 읽는 이유도 다양하더라. 본인 즉석에서 난독증 테스트 까지 받아봤다.
난독증은 글을 읽을 때 눈동자가 흔들리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증상이다.  
독서지도사는 책을 못 읽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눈의 기능인지 집중력 문제인지. 
배경지식이 없어서이라고 생각하고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활자의 원리, 가독성의 원리,  교육, 심리학, 뇌연구, 학습태도....심지어 음악과의 협업까지.
이 내용들을 들으면서 오랜 시간 독서학습 장르로 연구한 노력들이 감탄스러웠다. 
독서와 관련된 연구가 장르를 넘나든다 .독서의 애착과 집요함이 보인다.

 

 
 
 


▲ 틈틈히 집필한 독서교육 관련 김창화 대표의 저서들



그의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전 국민의 독서화 정도로 생각했는데 의외의 답이 왔다.
실버타운을 짓는 것이라고 한다. 늙을 때 안락하게 순수한 노인생활을 영위하게끔 만드는 것.  
명상센터,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이루는 케어 시스템. 요양원과는 다른차원의 실버천국.
독서교육이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케어다. 실버도 노년층의 케어다.
사람을 케어하는 서비스로 그의 사업 활동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오랜 기간 독서라는 키워드로 종횡무진 활약해온 김창화 대표의 교육인생 30년.
6월 20일 오후 7시에 만나보자.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

 

 

 

▲ 책욕심이 많은 나를 위해 특별히 저서 중 한권을 뽑아 저자싸인본을 준비중인 김창화 대표. 고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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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톡톡톡과 쇼쇼쇼에서는 약간의 진행에 변화를 주었다.
톡톡톡에서는 토크쇼 진행이 끝나고 질문을 받기로 했고, 쇼쇼쇼는 쇼를 마치고 이미지와 스피치 피드백을 받기로 한 것이다.
극작가 손현미 & 인상학전문가 김은주의 현장 컨설팅이 진행되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터닝포인틀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기회도 소중한데 두분의 전문가가 이미지와 스피치 피드백을 해준다니.
박현진의 쇼쇼쇼의 게스트는 무조건 지원하고 볼 일이다.
이 포스트는 두분의 피드백을 정리해둔다.




청바지에 하얀 재킷을 입고 발표시에는 초록 파일을 들었다.





인상학 전문가 김은주 대표의 전반적인 이미지& 인상 코멘트

자기만이 이야기할 스토리가 있다는것이 중요하다.
아직 다듬는 중이라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건강한 에너지가 넘치고 자연스러움이 매력이다.
강정은 다움은 자연스러움이다. 
외모를 엄청나게 꾸미거나 변신할 성향을 아니다.
과한 꾸밈은 본인이 어색해 할것이다. 수수 내추럴한 매력으로 가꿔 나가길 바란다.

다만 앞으로
강연할 때의 무대가 중요해지고 프로를 지향 해야 하므로. 
이미지는 현실보다 한발 앞서가야 한다. 
겸손함을 누르고 자신감을 팍팍 세워요. 목소리로. 무대에 섰을때 공적 사적 커뮤니케이션이 필요. 
조금씩 천천히 다듬어지는 스타일이니깐 조금씩 꾸며나가보면 좋을것 같다.

 




극작가겸 제작자 손현미 대표의 스피치&연기 코멘트

크고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하시며 요목조목 조언을 주셨다.

내가 아는 20대 중 가장 열정적이고 훌륭하다. 그 콘텐츠에에 관해서는 지적할게 없다.
다만 쇼를 하는 동안 연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바로 '연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대사와 연기의 기준이 천천히, 크게, 또박또박 말하는 것인데, 이는 연기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이를 물고 말하는 버릇이 있다. 세가지의 터닝 포인트에서 기승전결로 전달하는 것이 아쉽다.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기회'를 잡는 것이었다면 그 부분에 가장 힘이 실리고 그것으로 몰아가는 느낌이 나야한다.
도입부의 연기도 평이했다. 도입부 들어갈때의 연기력, 말투, 같은 특정한 나만의 패턴을 만들어 두면 좋겠다.
강사로서 자신감이 50%를 차지한다. 속도와 클라이막스를 조절하고 하이라이트를 강조하자.



누군가의 인생 터닝포인트 3가지를 듣고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하고, 그의 쇼를 감상하고,
전문가로부터 피드백까지 받고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과정.
나의 게스트를 위한 일련의 과정이지만 나의 성장이기도 하다.

내이름의 쇼를 걸고 진행한지 3회. 처음에는 도저히 내 역할을 찾지 못하고 헤메다가
이제는 미리 인터뷰를 통해 정리를 하고 쇼를 진행하고 피드백을 받아내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게스트만 덩그러니 놓는 일은 더 안하게 되었다. 이렇게 같이 성장해나가는 스텝 너무 즐겁다.

강정은양. 아주 훌륭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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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반항 청소녀였다.
인생을 바꾼 3가지 사건을 이야기하는 첫 스타트는 그녀의 학창시절이었다.
"중학교 때 공부를 엄청 안했어요. 선생님이 시키면 무조건 반대로 하고 샘하고 싸우는 그런애였죠. 숙제 안해서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고등하교 때 지각해서 손바닥 한 번 맞은 것이 학창시절 최대의 수치로 기억하는 나는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안맞기 위해서라도 대충 해가면 안댔나? 일단 맞으면 아프자나."
"몰라요 그냥 싫었어요. 선생님이 먼가를 하지마, 하면 저는 왜냐고 물었거든요. 근데 무조건 하지말래요. 그럼 하는거에요. 저는."
오, 그녀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좀더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그러다 그녀도 고교에 진학해야 했다. 공부를 안 한 그녀 실업계를 가느냐의 기로. 과감히 우겨서 인문계로 진학했다. 
고교로 진학해 첫날 반장선거를 하는데 성적순대로 예닐곱명이 후보로 선출됐고, 
가나다 순으로 지정되는 출석부 상 'ㄱ'이 제일 먼저 나온바 1번으로 서기를 맡게 되었다. 교실 앞으로 나온 반장 후보들과 정은양. 
"얜 아냐." 
담임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이 아이는 반장 후보 즉 순위 안에 든 성적 좋은 모범생 이 아니라는것을 지적했고,
이 말 한마디가 그녀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더구나 1학년 담임 선생은 매우 솔직한 자로 이른바 마방진 전략을 적절히 펼칠줄 아는 고도의 심리술사였다.
30여명의 정원에서 9명의 순위를 뽑아 한가운데 앉혀놓고 특별한 관심과 예쁨을 주는 거였다.
좀 유치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 마방진에 그녀도 걸려들었다.

 



 

 

 

얜 아냐 사건 이후 공부를 조금 하고 첫 중간고사에 저 핑크빛 자리에 앉고 부터는 공부를 잘하면 좋은거구나 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 공부와는 전혀 관계없이 사느라 저런 좋은 점은 느낄수조차 없었다니 굉장한 극적변화라 할수 있겠다.

그때부터 참으로 재밌는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회상한다. 
독거노인을 위한 밑반찬 만들기, 질서 지키기 캠페인 등등 다양한 봉사활동과 선도부 활동까지. 
무척 바쁘고 즐겁게 살았단다. 내신으로 수시까지 입학했다니 진정 모범생다운 학창시절이다.

그러다 대학 1학년  캘리포니아 오리곤 대학에서 대학 문화 교류 3주 과정을 마치고 나머지 2주동안 캘리포니아 곳곳을 여행했다.
세계가 넓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 다음해 휴학을 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를 떠났다.
향수병, 공부, 방황을 다 거쳐 돈벌고 여행가고 하기를 일년. 주키니 , 바질, 사과. 딸기. 포도농장 등 안가본 농장 없다는 그녀. 
막판에는 농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친구들과 친해서 매일 저녁 맛있는 밥먹고 지내느라 돌아올때는 오히려 10kg 찔 정도였다. 
혼자서 내 선택에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을 깨닫고 어렴풋하게 홀로서기의 맛을 본다.
지금도 후배들을 만나면 대학에서 스펙만 쌓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며 휴학하며 적극적으로 권한다.  

그 후 대학 특강으로 지금의 멘토 조연심 대표를 만났다.
공대생으로 컴퓨터와 씨름만 하며 살아온 그녀에게 이런 소프트한 멘토강좌는 큰 충격이 아닐수 없었다. 
자기 이름으로 산다는 것에 큰 자극을 받고 취업만이 능사는 아니란것을 다시금 절감.
열심히 조대표를 쫒아다니다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그 후의 그녀의 생활은 우리가 지켜보는 대로 온라인브랜딩디렉터 강정은으로서의 삶이다.

누구나 한번씩 일생의 사건들이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작은 말 한마디일 수 있고 정말 크나큰 충격일 수도 있다.  
어느날 듣게 된 말 한마디로부터 시작된 그녀의 변화.
17살 이후로 양껏 욕심부려가며 알차게 살아온 그녀의 이야기가 즐거웠다. 
오늘의 그녀를 있게한 키워드 3가지는 무엇일까?
이정도 힌트라면 다들 예감했을거라 믿는다. 그럼 5월 16일 오후 7시에 모여서 들어보기로 하자.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PS. 앞으로 남은 박현진의 쇼쇼쇼를 통해 허심탄회한 과거를 꺼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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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을 해봤어요. 내 인생의 이벤트 세가지. 오늘 새벽에...
특유의 코믹스러운 말투로 던진 첫마디다. 
오늘따라 더 꼬들하게 웨이브진 퍼머머리가 새벽의 고뇌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쇼를 맡았다. 나는 PD역할을 한다.  
쇼의 형식은 인생의 3가지 사건과 그로 인한 변화. 교훈, 그리고 현재의 영향이 미치기까지다.
생방송 쇼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사전에 무대에 설 배우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그 쇼를 펼치기 전 백승휴 작가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해서 찾았다.
미팅 전에 세가지 이야기를 생각해 오시라 했다. 
가볍게 만나는 자리여도 세가지 사건을 꼽기까지는 그간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필요했을것이다.  




▲ 토킹하면서 떠오르고 정리되는 생각들을 메모하랴, 와중에 걸려오는 전화 받으랴 바쁘다 바빠.



그의 전공은 놀랍게도 전자공학

사진을 매개로 활동하는 그의 전공은 의외로 전자공학!!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더니 4년간 벽을 보고 살았다고 한다. 하하. 
왜 적성도 안맞는 과를 갔냐고 했더니 취직 잘된다고 해서였단다. 
그때 깨달은 진리가 그 당시 잘되는 것은 선택하지 말자는 것이었단다. 
그러다 고모부가 운영하는 사진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접했고 즐거웠다는 그. 
알음알음 결혼식 사진 등의 부업을 했는데 졸업무렵 통장에 무려 2천만원이 쌓여있었다고.



즐거운 일을 찾아 즐기고 공부하자 

인생 별거 없다. 한 순간에 훅간다. 그러니 내가 좋은 일을 하자. 가치를 높이면 돈은 한방에 또 올 수 있다.  
내가 일을 선택하는 기준은 돈이 아닌 가치다. 즐거움에 가치를 둔다. 소모적인 일이면 안한다. 
공부가 가치가 부여된다면. 나만이 느낄수 있다는거.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프로이트의 심리학, 수집미학 이라는 책이다.

취미삼아 결혼식, 명함 사진을 찍던 사진가가 지금은
중년 여성들의 자신감을 깨우기도 하고
사춘기 소년의 인성를 키우는 전천후 선생이기도 하고
잃어버린 장년의 꿈을 끄집어 내기도 한다. 
사진을 매개로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 하고 있다. 



해보자 스스로 왕따
나도 왕따를 당해봤지만, 자아가 강한 사람들은 한번쯤 스스로 왕따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왕따로 외로우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아의 탐구가 이루어진다. 
자아를 깊게 탐구하면서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분야를 찾아 연구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바로 분산투자가 되겠다. 
한 분야를 넘어 다른 여러 분야를 접촉하게 되면 각분야의 사람들이 동시에 나를 왕따 시킬 수는 없으니까.
인생의 지혜란 결국 혼자이며 외롭다는걸 아는거다. 왕따 경험은 그래서 소중하다. 외로움에 대해 미리 예방주사를 맞는 셈이니까. 


 
사춘기의 자아찾기와 현재의 공간으로 이동하여 살아낸 삶, 그리고 미래의 시간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쇼의 제목을 정했다.
 

돈키호테의 서울유랑기 

그가 풀어낼 세가지 인생의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4월 18일 7시 30분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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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셋째주 수요일저녁 40라운드 정기모임에서 내 이름을 건 코너를 진행하게 되었다. 
조금 많은 사람들 앞에서서 자기 소개 하는것도 내심 벌벌 떠는 내가 코너진행이라니 싶지만 개인의 발전의 기회를 삼기로 한다.

36.5. 인간이 생리적, 심리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상태일 때의 체온이다. 이 숫자를 더해 14분. 
36.5도의 따뜻한 이야기를 14분간 들어보는 시간이다.
형식은 인생을 굵직하게 사건 3개를 잡아 풀어가기로 한다.  
 
내 역할은 일종의 PD로 그의 이야기를 같이 뽑고 어떻게 전달할지를 상의하고
행사 당일 그 사람의 쇼가 잘 진행되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행복 전도사 반경남. 
한 때 일 중독자였고 건강을 한 번 잃은 후 다시 얻은 삶으로 행복을 찾아 삶을 다시 산다는 그.
지금껏 이름 대신 불렸던 별명과 키워드 3가지를 들어 인생발자취를 살펴보기로 했다.




고교시절 별명이다. 공부하기보단 활동적인 응원의 세상이 좋았던 고등학생.
아버지의  기대와는 응원부에 응원단장으로서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응원의 힘으로 선수들이 힘을 내고 게임을 이끌어나가는 활기가 좋았다고. 





대학 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살집이 있었다고 한다. 
역시 응원단장으로 화려한 나날을 보내다,





ROTC로 군 복무를 하게 된다. 학연 지연 따지지 않고 ROTC기수로 묶이는 동질감. 
아직까지도 ROTC동문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다. 


양복입은 모습과 응원단장옷으로 무장한 그의 과거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오늘의 행복 전도사, 마당발 반경남이 있기까지는 저 세가지 키워드가 든든히 받쳐주었기 때문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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